아베, '피해자 일본' 내세우다 [日산지석]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9.08.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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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히로시마 원폭 74주기 행사서
"유일 피폭국" 2회 언급, 피해 강조
日여론 79% "원폭 투하 결정 부당"
'소녀상' 막는 등 침략 역사는 가려
日교수 "타인 관점서도 역사 배워야"

편집자주 고령화 등 문제를 앞서 겪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타산지석' 삼기 위해 시작한 연재물입니다. 당분간 '지피지기'를 위해 일본에 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지난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린 '평화기념행사'에 참석한 아베 총리. /사진=AFP지난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린 '평화기념행사'에 참석한 아베 총리. /사진=AFP


아베, '피해자 일본' 내세우다 [日산지석]
이달 초 일본의 한 예술제에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되면서 일본이 시끄러웠습니다. 정치인이 직접 나서 "일본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며 논란을 만들자 여론이 들끓었고, 전시회 측은 안전을 이유로 3일 오후 전시를 중단했습니다. 이러한 일의 배경에는 위안부 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의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지난 6일과 9일 아베 신조 총리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정확히 74년 전 이들 두 곳엔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20만명가량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며칠 뒤 일본의 항복으로 세계대전이 끝이 나면서,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도 광복을 맞습니다.



9일 아베 총리는 나가사키 '평화기념행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핵무기로 인해 초래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참화를 결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중략)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핵무기의 비인도성을 세대나 국경을 넘어 계속 전할 의무가 있다."



그는 젊은층과 방일외국인들에게도 원폭이 빚은 참상을 잘 전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날 인사말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표현은 2번 나왔습니다. 반면 자신들의 침략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8일 저녁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 아이들이 초를 켜고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AFP8일 저녁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서 아이들이 초를 켜고 평화를 기원하고 있다. /사진=AFP
원자폭탄을 비롯한 전쟁의 참상은 재현되지 않아야 하는 게 분명합니다. 이날 85세의 나가사키 피폭자 대표는 자신이 11살일 때 아버지가 원폭으로 사망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형제들이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하려 현장에 갔지만 두개골에서 뇌가 흘러나오는 모습에 어린 형제들은 도망치듯 나왔다고 합니다. 이 대표와 형제 2명은 이후 암 등 원폭 후유증을 겪었습니다. 그는 아베 총리를 향해 "피폭자가 살아 있는 동안 모든 핵보유국에 '핵무기를 없애자'고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원자폭탄 투하를 앞선 침략과 전쟁의 과정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9일 버즈피드재팬에는 미국에 유학 떠난 일본 고교생이 현지 다큐멘터리를 보다 충격을 받았다는 본인의 글이 게재됐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영상물이었는데 자막에는 '세계대전은 마침내 2개의 원자폭탄에 의해 끝났다'고 나왔습니다. 글쓴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전쟁의 피해를 배우고 평화 교육을 받아 온 일본인 학생에게는 충격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지난 6월 공영방송 NHK 다른 일본인 유학생이 미국 고등학교 로고에 문제 제기한 것을 기사로 전했습니다. 워싱턴주의 리치랜드는 원자력 관련 산업이 번성한 곳으로 과거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플루토늄을 생산한 곳으로 알려집니다. 이곳 리치랜드 고등학교는 학교 로고에는 버섯구름이 들어갑니다. 이 일본 학생은 동영상을 만들어 "당시 원폭으로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 희생됐다. 버섯구름에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고 로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리치랜드 고등학교'의 로고.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리치랜드 고등학교'의 로고.
미국에서는 원폭을 통해 전쟁을 끝내 더 큰 인명피해를 줄였다는 생각이 있지만 일본인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미국의 원폭 투하 결정은 정당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지난 1991년 여론조사(미국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에서 일본인의 64%가, 2015년에는(미국 퓨 리서치 센터) 79%가 "부당했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63%(1991)와 56%(2015)가 "정당했다"고 답한 미국과는 크게 다릅니다.

또 한국을 강제합병한 것이 불법이 아니고 오히려 한국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식의 일본 우익의 주장과 비교하면 자신들의 피해에만 예민해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일 일본 역사교육자협의회 야마다 아키라 메이지대학교 교수가 도쿄신문에 한 얘기가 눈길을 끕니다. 그는 "일본은 (역사에 대해) 내향적인 인식이 주류를 이뤄왔다"면서 "타인의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역사를 배워야 한다. 전쟁에 대해서도 '당시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만 생각해선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이는)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74년 전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진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AWC(아시아공동행동)한국위원회·AWC일본연락회의 등 10개 단체는 한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 전쟁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 △전세계의 핵 폐기 △핵발전 중단 등을 촉구했습니다.

+덧붙임. 일본에 원폭이 투하될 당시 한국인 피해자도 많았습니다. 강제징용 등으로 현지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정부가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를 한 결과 당시 한국인 피폭자는 7만∼10만명, 이중 4만∼5만명이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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