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기계도 국산화 잰걸음…"국산 소재로 연구개발 계기"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2019.08.1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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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품목 자립전략]④배터리 소재·기초 화학소재·공작기계·탄소섬유 등 대체 수입처 찾고 국산화율 높여

SK이노베이션 서산 1공장에서 배터리 셀이 생산되는 모습/사진제공=SK이노베이션SK이노베이션 서산 1공장에서 배터리 셀이 생산되는 모습/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기업은 ‘소재 공급이 잘 안될 수 있는’ 상황을 처음 맞았다. 소재 구매처를 다양화해야겠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이것이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된다.” (화학·기계업계 관계자)



화학·기계업계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이후 한달여간 대체수입처를 발굴하거나 국산화율을 높이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화학 소재와 기계 부품이 일본산을 완전 대체하는 수준에 도달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국산 소재나 부품을 바탕으로 보다 많은 연구개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국산화에 성공한 소재의 경우, 강도 등 물성은 비슷하지만 소재를 화학 완제품에 적용하는 기술 노하우와 업력에서 한·일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은 그동안 일본 소재만 바탕으로 연구개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국산 소재를 갖고도 연구개발을 시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5일 정부의 100대 핵심품목은 업계 의견과 전문가 검토를 거쳐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대 분야에서 단기(1년) 20개, 중장기(5년) 80개 등으로 발표됐다. 정부는 보안을 이유로 구체적인 항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배터리 핵심소재 이미 국산화…비핵심소재 기술장벽 낮아=업계 반응을 종합하면 배터리 핵심 4개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의 일본 의존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해당 소재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업체들이 포진한 데다 양극재의 경우 LG화학과 삼성SDI는 자체 생산 능력을 갖췄다. 음극재는 포스코케미칼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중이다.

분리막은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일본 아사히카세이, 도레이와 함께 톱티어(1등 제품군)를 이루고 있다.


배터리 셀을 감싸는 파우치, 양극재와 음극재를 접착시키는 고품질 바인더, 전해액 첨가제 등 비핵심 소재는 DNP·쇼와덴코·쿠레하와 제온 등 일본 업체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이들 소재는 기술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빠른 시일 내 국산화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우치는 율촌화학, BTL첨단소재 등 국내업체가 국산화를 진행중이며, 바인더의 경우 한솔케미칼이 국산화에 성공해 내년부터 양산체제를 갖춘다.

다만 배터리는 전기차의 핵심부품으로 전기차의 ‘안전’을 결정하는 문제여서 기존 부품 공급체계에서 벗어나 새로 공급망을 설정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부품마다 고·저온, 높은 압력, 높은 습도, 낙하·충격실험 등 각종 테스트를 거쳐야 하고 완성차업체의 개별 컨펌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했다.

화학업계는 기초소재 및 스페셜티 케미컬(기능성 화학제품)을 생산할 때 일본산 원료를 사용하지만 중동, 미국, 중국 등에서 대체수입처 발굴이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 등 정유 5사는 탈황설비에서 일본산 촉매를 일부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유럽 국가에서도 생산중인 범용 촉매이므로 전량 대체가 가능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투명 PI 필름/사진=코오롱인더스트리코오롱인더스트리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성공한 투명 PI 필름/사진=코오롱인더스트리
◇공작기계 운영체제·탄소섬유·투명 PI필름 ‘대체’ 잰걸음=공작기계 분야는 ‘두뇌’ 역할을 하는 수치제어반(소프트웨어) 국산화가 숙제다. 현재 공작기계 업체 대부분이 일본 ‘화낙’의 수치제어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수치제어반을 개별허가 품목에 넣어 수출을 까다롭게 할 경우 국내 공작기계 업계는 타격이 예상되지만, 이 역시 국산이나 독일 지멘스 제품으로 완전 대체 가능하다. 국내 공작기계 1위 기업인 현대위아는 이미 ‘현대 아이트롤(HYUNDAI-iTROL)’이라는 독자 수치제어반 개발을 완료했다.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수소탱크용 탄소섬유는 일본 도레이 제품이 주로 쓰이고 있지만 올연말 이후 효성 제품도 투입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에 따르면 효성첨단소재는 현대차와 함께 수소전기차용 고강도 탄소섬유에 대한 인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전반적인 안전도 시험과 함께 해외 기관의 인증 절차도 진행중이며 연내 인증 완료가 목표다. 효성은 전주 탄소섬유 공장을 증설해 2020년 연 4000톤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또 하반기 출시되는 폴더블 스마트폰(폴더블폰)의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PI) 필름’은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 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국산화 품질을 높이고 있다. 일본 스미토모 제품을 대체하는 것이 목표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경북 구미공장에 투명 PI 필름 양산체제(연산 100만㎡·폴더블폰 3000만대 분량)를 구축했다. 스미토모도 파일럿 공장이 있을 뿐 대규모 생산체제를 아직 갖추지 못했다. SKC는 투명 PI 필름 사업화에 850억을 투자하며 오는 10월 충북 진천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

투명 PI 필름은 일본 정부가 지난달 4일부터 한국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 중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관련이 있는 신소재다. 유리처럼 표면이 딱딱하면서도 수십만 번 접었다 펴도 흠집이 남지 않아 차세대 폴더블폰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이밖에 로봇 감속기의 핵심 부품인 베어링도 국산화가 많이 이뤄졌으며 유럽산 등으로 대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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