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최진철씨(55)와 폐지를 함께 모았다. 그와 헤어지며 부디 삶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길 바랐었다. 7개월만에 만난 그는 조금 더 앙상해져 있었고, 발가락 하나를 잘랐다고 했고, 암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갤 숙이고 말았다./사진=남형도 기자
어렵게, 또 오래 붙잡았던 기사가 나갔다. 그를 돕고 싶어 댓글을 남겼다. 처음으로 부탁을 했다. 치아가 많이 안 좋은데 식사라도 제대로 하게 도와달라고. 치료해줄 분을 찾는 거였는데, 메일이 200통이나 쏟아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단돈 몇 만원이라도 보태겠단다. 월급쟁이라, 주부라, 야간 편의점 알바라 넉넉지 않아 미안하다며. 그의 계좌번호를 대신 알려줬다. 먹먹하고 맘이 저려서, 그날 하루는 도통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해피엔딩'인줄 알았다
지난해 12월 영하 날씨에 최진철씨와 폐지를 함께 주웠던 기자. 기우뚱하는 손수레를 함께 부여잡고 갔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지탱해줄 이도 없는 삶이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힘을 더 줬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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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내겐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삶을 더 지탱해야 할 그에겐 그러지 못했다.
오랜만에 목소릴 들려준 그는 웬일인지 또 울고 있었다. 감정이 북받쳐 뭔가를 호소했다.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심상찮단 걸 직감했다. 일단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한 뒤 전화를 끊었다. 네 모서리가 조금씩 깨진, 핸드폰 액정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7일 오전, 최씨를 만나러 갔다. 좁고 허름한 집 한편에 앉아 있었다. 팔과 다리가 앙상하게 더 말라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를 처음 만나 폐지를 주웠고, 기사가 나갔던 지난해 12월 얘기부터 했다. 감사하게도 후원금이 꽤 들어왔단다. 치과치료를 무상으로 해주겠단 의사도 있었단다(서대문구 홍제동의 road치과, 영어 해석 필요, 좋은 곳은 꼭 알리고 싶어서). 덕분에 틀니도 했고, 식사도 잘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재차 "너무 감사했던 일"이라고 울먹이며 회상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터라, 후원금은 부족한 생활비에 보태서 썼다. 자녀들에게도 용돈을 주며 모처럼 아빠 노릇도 했단다.
발가락 절단, 뇌경색 재발, 간암 판정…한 달새 벌어진 일
최진철씨의 얘길 듣다가, 좁다란 집안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그를 바라보는 신의 뜻이 대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벼랑 끝에서 버티는 삶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사진=남형도 기자
회복한 뒤 어떻게든 걸어보려 했다. 여느 때처럼 폐지를 줍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그만 쓰러졌다. 뇌경색이 재발한 것이다. 그게 지난달 말이었다. 병원에 실려갔다.
뇌경색으로 병원에 5일간 입원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더 알게 됐다. 간암이라고 했다. 몇 기냐고 했다. 경황이 없어 못 물어봤단다. 22일에 간암 수술을 받는다고 했다. 간암이면 위험하다고 알고 있어서, 아는 내과 의사에게 물어봤더니 "그래도 수술을 하는 건 기수로 3기 이내, 적어도 재발 위험성이 적다고 판단되는 경우"라고 했다.
여하튼 믿기 좀 힘들었다.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단 게. 그래서 확인하고 싶었다. 발가락은 눈으로 직접 봤다.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가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게 됐단다. 병원에 입원했던 서류도 다 확인했다. 기록이 다 있었다. 사실이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어요"
최진철씨의 폐지 손수레가 묶여 있던 자리엔 아무 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제대로 걷기 힘든 그는 이제 폐지도 편히 주을 수 없다./사진=남형도 기자
"혹시 병원비를 못 내면 붙잡아 가느냐"는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걱정돼 송파구청에 문의하니, 산정특례로 병원비 지원이 거의 된단다. '거의'가 어느 정도냐고 재차 캐물으니, 입원비와 식대 지원이 된단다. 그래도 부족하면 긴급 의료비 지원이 있고, 그래도 안 되면 모금 성금도 한단다. 의심이 많은 터라, 계속해서 지켜볼 예정이다.
답답해서 연락했단 그의 손을 말 없이 잡았다. 뭐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뭐라도 하겠다고, 맘 단단히 먹으라 했다. 하지만 최씨를 바라보고 얘길 듣는 동안, 실상 내 맘도 이미 무너졌었다. 벼랑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이젠 곧 떨어질 것 같은 그의 삶을 짐작했다. 듣는 것만으로 버겁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집안 한편에 걸려 있는 교회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 더 가혹한 시련을 주는 신의 뜻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어떤 때는 울음도 안 나와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싶어요.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걸음을 절다 울먹이다, 그리 어렵게 문 앞까지 배웅하던 최씨의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