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은행도 불매한다고요?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2019.08.0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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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악화된 국면에서 일본계 자금의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글로벌 개방 경제에서 자본은 쉼없이 국경을 넘나들지만 여전히 국적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자본 역시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자국 정부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민족자본’의 성격을 지닌 셈이다.

국내 은행들도 ‘민족자본’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영문명에는 ‘KOREA’가 포함돼 있으며 민간 시중은행도 한국의 정체성을 내세운다.



우리은행은 1899년 고종황제의 내탕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을 뿌리로 뒀으며, NH농협은행은 농민 출자로 이뤄진 농협중앙회가 지분 전량을 소유한 ‘100% 순수 국내자본’이라고 강조한다. KB국민은행은 은행명에 ‘국민’을 넣었다.

신한은행의 출발은 특별하다. 국내 최고(最古)의 한성은행(1897년 설립)을 모태로 한 조흥은행을 2006년 인수하면서 민족자본의 역사성을 더했지만, 신한은행의 출발은 재일동포들의 자금이었다.



당시 재일동포 주주들은 '금융으로 모국의 발전을 돕겠다'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당시 재일동포들이 여행가방에 엔화 지폐를 가득 채워서 몰래 한국으로 들여왔다는 ‘미확인 소문’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많은 재일동포 1세대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재일동포 주주의 신한은행에 대한 애정은 상당하다. 매년 3월 신한금융지주 주주총회에는 재일동포 주주들이 대거 서울을 찾는다. 이들은 해마다 신한금융과 모국의 발전상을 마주하며 자부심을 느끼며 배당금 못잖은 돈을 한국에서 쓰고 간다.
최근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일각에선 금융권의 불매 대상으로 신한은행이 거론되고 있다. '많은 주주가 재일동포인 만큼 배당금이 일본으로 넘어가지 않겠나'라는 이유다.

[기자수첩]은행도 불매한다고요?


진정한 민족자본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한 은행 임원은 "역사성과 주주의 국적도 중요하지만, 그 은행이 지금 국내 금융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국민은행과 함께 국내 금융시장을 이끌고 있는 리딩뱅크일 뿐만 아니라 활발히 해외에 진출하고 있는 은행 중 하나다. 신한은행 '불매'를 고민하고 있다면 꼽씹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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