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신흥무관학교·이회영 일가의 교훈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19.08.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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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탄생한 ‘신흥무관학교’는 빼놓을 수 없는 항일투쟁의 역사다. 3·1운동 이후 들불처럼 번진 청년들의 독립의지를 조직화했고 이후 독립군의 근간이 됐다.



신흥무관학교는 항일 비밀결사조직 신민회 회원인 우당 이회영 선생 등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군사학교다. 이회영 일가는 8대에 걸쳐 정승·판서를 배출한 명문가문이었다. 명동 땅이 대부분 6형제 소유였을 정도로 재산도 상당했다. 이회영을 비롯한 6형제는 이런 재산을 팔아 마련한 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후 이곳 출신들은 항일 무장독립 투쟁을 이어갔고 광복의 주춧돌이 됐다.

지난 4일 당정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에 ‘기술무관학교’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운동의 핵심인재를 키운 것처럼 ‘기술무관학교’를 통해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항하는 기술기업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기술무관학교’의 핵심 정책은 부품·소재·장비 전문기업 100개사 육성이다. 정부는 핵심 소재·부품·장비 R&D(연구·개발) 등에 7년간 7조원 이상 투입하는 등 배수진을 쳤다. 여기에는 대·중소기업상생협의회 설치와 대·중소기업 상생품목 지정 등도 포함돼 있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 제품을 대기업이 지속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판로를 마련하는 한편 필요 품목을 개발하는 기업에 R&D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관건은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여부다. 당장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한 불화수소(에칭가스)와 관련, “중소기업 제품을 대기업이 안 사준다”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품질의 문제”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발언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시각차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기업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코스피 2000선이 붕괴되면서 불안감이 가중된다. 스스로 힘을 기르는 ‘기술자립’은 일본의 이런 위협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대안이다.


100년 전 전국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나선 민중은 현재 일본여행 자제나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항하는 대일투쟁을 벌인다. 이회영 일가의 신흥무관학교 지원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 사례로 칭송받는 것처럼 이번 기회에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한편 상생경영을 실천하는 존경받는 대기업이 잇따르길 기대해본다.
[우보세]신흥무관학교·이회영 일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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