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자' 단물에 취했던 상장사, 유동성 위기 오나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김도윤 기자 2019.08.08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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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설정 전환가액 대비 84% 폭락한 곳도 있어…조기상환 압박 ↑… 작년 코스닥서 무이자로 발행된 CB 등 1.5조, 전년비 73%↑…당분가 주가 회복 어려워 대규모 이탈 가능성 우려

지난해 ‘무이자 CB(전환사채)’ 등으로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던 코스닥 상장사들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코스닥시장의 극심한 침체로 주가가 전환가액을 한참 밑도는 기업일수록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코스닥에 상장된 모바일 게임업체 T사는 지난해 3월 운영자금 조달 목적으로 만기 3년짜리 300억원 규모의 CB를 라임테티스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2호, 키움증권 등을 상대로 사모방식으로 발행했다. 눈에 띄는 것은 이 CB의 표면금리와 만기금리가 모두 ‘0%’, 즉 무이자였다는 점이다.



CB는 채권과 주식전환권이 결합된 형태로 주식형사채의 대표적 형태다. CB투자자는 △만기까지 정해진 기간에 미리 약정한 원리금 수익을 얻거나 △투자 종목의 주가가 오를 때 약정된 전환가액으로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도 있다. 일정 기간 이상 주가가 전환가액을 웃돌지 못하면 풋옵션(Put Option) 조항에 따라 자금을 만기 이전에라도 회수할 수 있다.

T사가 지난해 3월 최초 발행을 결정했을 당시 전환가액은 4455원이었지만, 현재 주가(7일 종가 기준)는 545원이다. 지난해 3월만 하더라도 5600원을 웃돌았지만 잇따른 주가폭락 등으로 현재 주가가 발행 당시 전환가액대비 84% 하락했다.



'무이자' 단물에 취했던 상장사, 유동성 위기 오나


‘전환가액 조정조항’도 무용지물이다. 당시 T사와 투자자들은 발행일로부터 6개월 후 시점(2018년 9월)부터 매 3개월간 주가 흐름을 반영해 주가가 오르거나 하락할 때 전환가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하되 최초 결정된 전환가액(4455원)의 80%인 3564원을 밑돌 수 없도록 했다.

최초로 전환가액 변경을 결정할 수 있었던 지난해 9월 이후 현재까지 CB 전환가액의 하향 조정은 모두 4차례 있었지만 그 금액은 3564원으로 고정됐다. 300억원을 CB로 투자한 투자자들이 시세 713원짜리 주식을 5배 가량의 전환가액(3564원)으로 받아갈 이유는 사실상 없다.

당분간 주가가 전환가액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올 1분기 말 기준 자산총계는 383억원인데 부채가 323억원에 달하고 자본총계는 61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적자였다. 올 1분기도 매출 성격의 영업수익은 15억원에 불과했고 영업이익, 당기순이익도 각각 -31억원이었다.


이 CB는 발행일로부터 1년 6개월 시점부터 매 3개월마다 투자자가 원리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풋옵션 조항을 두고 있다. 최초 자금상환 요구가 가능한 시점은 올 9월 하순부터다. T사는 올 1분기 정기보고서에서 지난해 조달한 300억원 CB발행자금에 대해 “정기예금 등 상품에 가입해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무이자' 단물에 취했던 상장사, 유동성 위기 오나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코스닥시장에서 상장사들이 이처럼 사모 방식으로 CB, BW(신주인수권부사채), EB(교환사채) 등 주식형사채로 조달한 자금의 규모는 5조8600억원으로 2017년 3조5520억원에 비해 약 65% 늘었다.

이 중 표면금리와 만기금리 모두 ‘0%’인 조건으로 발행된 주식형사채의 규모는 2017년 8647억원에서 2018년 1조4959억원으로 73% 증가했다. 일부는 전환가액 조정시 하한선을 ‘액면가’로 하거나 별다른 하한선을 두고 있지 않지만 상당 수가 최초 약정한 전환가액의 70~80% 선으로 하한선을 설정했다. 대외 경제여건 악화에 코스닥시장 폭락 등으로 실적·주가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유동성 위기에 맞닥뜨리는 종목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조건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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