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소녀상 머리에 봉지 씌운 '혐한'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8.0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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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동대문의 한 유명 식당을 찾았다. 외국인 관광객도 제법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일본어로 대화하는 종업원과 손님의 테이블에 주변 시선이 꽂혔다. 밥을 먹던 일부 손님은 "어느 시국인데 일본인들이 관광와서 밥을 먹지?"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던지며 혀를 찼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한달째를 맞았다. 한국에선 이에 반발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빗나간 불매운동도 보인다. 최근들어 등장한 일본인에게 여객선 요금을 815만원을 받겠다는 울산의 현수막이, 지난달 한 공연장에서 일본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밴드에게 한 관객이 ‘쪽바리’라고 외치고 나가버렸던 일 등이 그렇다.



일본 나고야시에서 열린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전시된 위안부 소녀상은 전시 사흘만에 일본 정부의 압박과 혐한 여론에 밀려 철거됐다. 아사히신문이 전한 전시 마지막날 풍경은 '혐한' 그 자체였다. 혐한 세력은 전시장에서 “역대 최악의 전시”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소녀상의 머리에 봉지를 씌워 다른 관람객이 이를 벗기는 촌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쇼와 천왕을 상징하는 한 전시 앞에서는 극우 관람객이 한참을 우는 등 소란을 피우다가 주최측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다. 소녀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자녀의 교육상 전시장을 찾은 평범한 일본인들은 전시 조기종료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불매운동 뉴스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인터넷에선 혐한 누리꾼이 남긴 "한국은 도쿄올림픽에 제발 오지 말아달라"는 의견에 수많은 공감이 달리기도 한다. 동대문의 한 식당에서 손님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일본 관광객은 집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느낀 불쾌감을 주변에 풀어놓을 지 모른다. 빗나간 불매운동은 혐한세력에게 명분만 안길 수 있다. 민간교류도 파탄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그들과 비슷한 '혐일'을 할 필요는 없다.



[기자수첩]소녀상 머리에 봉지 씌운 '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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