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한복판에서 '아이스크림'을 닦았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19.08.0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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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하겠지' 방관했던 일들, 아무도 안 하던 일들, '내가' 직접 해보니…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보이지 않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명동 한복판에 널브러진 아이스크림. 외국인 관광객이 바닥에 떨어뜨린 뒤 치우지 않고 사라졌다. 아이스크림은 빠른 속도로 녹아가고 있었다. 당신이 이걸 본다면 어떻게 했을까./사진=남형도 기자명동 한복판에 널브러진 아이스크림. 외국인 관광객이 바닥에 떨어뜨린 뒤 치우지 않고 사라졌다. 아이스크림은 빠른 속도로 녹아가고 있었다. 당신이 이걸 본다면 어떻게 했을까./사진=남형도 기자






명동 한복판에서 '아이스크림'을 닦았다[남기자의 체헐리즘]
깔깔거리는 소리에 고갤 돌렸다. 시선 끝엔 외국인 두 명과 한국인 한 명이 서 있었다. 둘은 콘 아이스크림을, 나머지 하나는 콘만 덜렁 들고 있었다. 바닥을 보니 새 것이나 다름없는 아이스크림 덩어리 하나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 실수로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그게 재밌는지 셋은 서성이며 웃더니, 명동성당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냥 가면 어떡하나' 생각하는 찰나, 이미 그들은 인파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눈길은 다시 아까 그 아이스크림 쪽으로 향했다.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 잔뜩 익어버린 아스팔트 위였다. 하필 떨어진 곳도 명동 한복판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은 한 번 쳐다봤다가, 밟을까 싶어 잽싸게 발걸음을 피했다. "누가 이래놨어"하는 핀잔도 들렸다. 순식간에 30여명이 지나갔다. 그새 아이스크림은 빠르게 녹아갔다. 세 가지 맛이 한데 섞여 우윳빛 액체가 됐고, 도로에 스르르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그대로 두면, 사람들 발에도 끈적끈적하게 묻어버릴 터였다.



평소 같음 나도 그냥 무심(無心)히 스쳐갔을 것이다. “누가 치우겠지” 하면서. 근데 그날은 달랐다. 용기를 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휴지와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다. 휴지를 빼서 손 안쪽에 대고, 아이스크림을 크게 집었다.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자마자 비닐봉지 안에 잽싸게 던졌다. 반려견 똘이(5살, 몰티즈) 응아를 치울 때와 비슷했다. 그리고 바닥에 흐른 아이스크림 액체를 벅벅 닦았다.

명동 한복판에 떨어져 있던 아이스크림을 휴지에 감싸서 비닐봉지에 넣어 치웠다. 거리가 깨끗해졌다. 사람들이 편히 다녔다. 내가 직접 나서서 치운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꽤 괜찮았다./사진=남형도 기자명동 한복판에 떨어져 있던 아이스크림을 휴지에 감싸서 비닐봉지에 넣어 치웠다. 거리가 깨끗해졌다. 사람들이 편히 다녔다. 내가 직접 나서서 치운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꽤 괜찮았다./사진=남형도 기자
길이 다시 깨끗해지자, 사람들은 편히 다녔다. 단 1분이면 될 일이었다.


누군가 했으면 싶었던 일, 그러나 누구도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긴 싫어 모른 채 넘겼고, 다들 같은 맘이라 방치됐지만, 하면 분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

뭐라 딱 잡아 말하긴 어려우니, 계절(여름)에 맞는 사례를 들어볼까. 어느 더운 날, 햇볕에 쏟아지는 정류장서 5분간 기다렸다 버스를 탔다. 그런데 아뿔싸, 에어컨이 안 나오는 게 아닌가. 다른 승객들을 보니 모두가 더워서 창문 열고 부채질. 그렇지만 내가 말하긴 좀 뻘쭘해서 그저 침묵만. 누가 좀 말해줬으면, 기사님이 알아서 틀어줬으면, 다들 그런 맘으로 기다리는 새 이마에선 땀줄기가 더 세차게 흐른다. 그 때 누군가 이렇게 외친다면 어떨까. "기사님, 더운데 에어컨 좀 틀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 누군가가 내가 돼야 한단 생각은 못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안 했었다. '내가 왜? 누군가 하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괜히 나서면 손해 본다는 생각도 했다. 마음의 선을 긋고, 눈을 딱 감고, 잠시 시간을 흐르게 놔두면 될 일이었다.

단단히 지키고 살았던 그 맘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바뀌었다. 내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던, 어느 우아한 시민 한 분 덕분이다. 그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려 한다('뒤로 가기' 누르지 말고 기사 고정!).

이른바 '아무도 안 하는 일 하기' 체험을 했다. 다음은 일상에서 마음가짐을 그리 바꿨을 때 벌어진 일들의 기록이다. 7월22일부터 8월1일까지 약 2주 동안 해봤다.





동네 헬스 기구에 묻은, 누군가의 땀을 닦았다
동네에 패여 있었던 도로. 누군가 신고하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다. 여기도 그랬다. 몇 달 동안 그대로였다. 그래서 신고했다./사진=남형도 기자동네에 패여 있었던 도로. 누군가 신고하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다. 여기도 그랬다. 몇 달 동안 그대로였다. 그래서 신고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가까운 곳에서부터 해보기로 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을 천천히 돌아봤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스티커 하나가 붙어 있었다. 서울시가 제작한 캠페인이었다. '관리비 거품 빼고 갈등은 줄이는 맑은 아파트 만들기'라 쓰여 있었는데, 찢어진 종이 조각에 가려 '관리비 O품 빼고, 갈등O O이는 맑은 아파트 만들기'로 보였다. 제대로 안 보였다. 아마 이 위에 안내문을 붙였다 뗐는데, 그 과정에서 남은 모양이었다. 좋은 글인데 더 많은 주민들이 봤으면 하는 맘이 들어 종이 조각을 제거했다. 시원스레 보여 좋았다.

움푹 꺼진 채 방치돼 있던 동네 도로로 향했다. 과속 방지턱을 넘자마자 푹 패여 있어서, 항상 차(車) 왼쪽 바퀴가 쿵 하고 들어갔다. 넘을 때마다 엉덩이가 쓰렸다. '누군가 얘기해 조치하겠지' 했는데, 그 상태로 몇 달 째 달라진 게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고, 관리 사무소에 가서 직접 수리해달라고 신고했다. 직원은 "빠른 시일 내에 조치하겠다"며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퇴근하고 동네 헬스장 기구엔, 누군가 쓰고 그냥 떠난 흔적들이 있었다. 운동 후엔 정리하는 게 매너다. 가슴 운동을 하는 기구엔, 15kg이 넘는 바벨 원판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걸 하나씩 빼서 정리해뒀다. 직각으로 세워져 있는 의자도 수평으로 눕혀 놓았다. 잠시 뒤, 그 자리엔 60대쯤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와서 운동을 했다. 의자에 누군가 흥건히 묻힌 땀도 뽀송뽀송하게 닦았다. 수건을 깔고 운동하지 않은 탓이었다.

길가엔 나무 하나가 고개를 못 펴고 있었다. 빗물을 막기 위한 지붕에 막혀 있었다. 햇빛을 향해 자라다, 그만 길을 잘못 든 모양이었다. 나무를 바깥으로 빼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가지엔 뾰족한 가시가 돋쳐 있었다. 조심조심 가지를 잡고, 지붕 위로 쭉 빼줬다. 잔뜩 움츠리고 있다 오랜만에 기지개를 켠 듯, 가슴이 시원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길, 햇빛도 많이 받기를.



화장실 변기 물을 대신 내렸다
홍대입구 화장실에 누군가 남기고 간 강렬한 그것을 처리하고 있는 기자. 물을 안 내리는 심리는 뭘까, 그것이 알고 싶다./사진=괴로운 남기자홍대입구 화장실에 누군가 남기고 간 강렬한 그것을 처리하고 있는 기자. 물을 안 내리는 심리는 뭘까, 그것이 알고 싶다./사진=괴로운 남기자
깨끗하지 않으면 피해 갔었다. 본능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내가 하긴 싫었다. 반응은 다들 비슷했다. 그 다음 사람도, 뒤 따르는 또 다른 사람도. 그래서 피하지 않고, 내가 먼저 해보기로 했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연트럴파크'에 갔다. 날씨가 좋아 산책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유독 발걸음을 피하는 곳이 있기에 눈 여겨 봤다. 역시나 그 자리엔 '강아지 똥' 세 덩어리(TMI)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미 누군가 한 번 밟은 모양인지 위쪽이 살짝 눌려 있었다. 인근엔 파리가 꼬였다. 다들 피해서 가기 바빴다. 강아지 똥 치우는 건 또 내가 전문가 아닌가, 똘이(5살 반려견, 몰티즈) 형이니까. 무른 변까지 깔끔하게 치우는 달인이 됐다. 인근 편의점에서 휴지를 하나 사서, 강아지 똥을 하나씩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똥을 피해서 가느라 좁아졌던 도로가 한층 넓어진 걸 보니 좋았다.

강아지 똥은 상태 확인 했으면 바로바로 치웁시다. 연트럴파크에 있던 응아 세 덩어리를 치웠다./사진=남형도 기자강아지 똥은 상태 확인 했으면 바로바로 치웁시다. 연트럴파크에 있던 응아 세 덩어리를 치웠다./사진=남형도 기자
빨강, 분홍 꽃이 핀 큰 화분 밑엔 노란색 '컵밥 포장지'가 끼워져 있었다. 차라리 도로에 버리면 환경 미화원이 치우기라도 할 텐데, 좀 악질이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 좀 부끄러웠다. 민낯을 보인 것 같아서. 쭈그리고 앉아 포장지를 잡았다. 빗물에 좀 젖어 있었다. 그걸 들고 다섯 걸음 정도 발을 떼니 쓰레기통이 있었다. 그게 귀찮아서, 여기 끼워둔 거였다. 치우고 나니 꽃 화분이 더 예뻐 보였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공중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한 칸만 유독 비어 있었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거기에 왜 사람들이 안 들어가는지.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다. 머리가 쭈뼛 섰다. 무서웠다. 마음을 다시 굳게 먹었다. 실눈을 뜨고 문을 슬며시 열었다. 상상 이상의 광경에 말초 신경이 폭주해 가슴이 뛰었다. 나도 모르게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욕 아님, 견종)"를 외치고, 뚜껑을 재빨리 닫았다. 그리고 물을 내렸다. 밖에 나와 똘이 사진을 보며 뇌리에 남은 잔상을 정리했다. 그제야 사람들이 그 칸에 들어갔다. 큰일을 해냈다.



비상용 모래함에 붙은 '테이프'를 뗐다
명동역에 있던 비상용 모래함. 이건 테이프로 밀봉하는 게 아니다. 하나하나 다 떼어버렸다./사진=남형도 기자명동역에 있던 비상용 모래함. 이건 테이프로 밀봉하는 게 아니다. 하나하나 다 떼어버렸다./사진=남형도 기자
누군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꼭 해야 할 일도 있었다. 당장 내게 피해가 오는 게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할 순 없는.

우연히 명동역 계단에 비치돼 있는 ‘비상용 모래함’을 봤다. 화재가 났을 때 가져다 뿌리면, 산소를 차단해 불을 빨리 끌 수 있다. 그런데 5번 출구 쪽 비상용 모래함을 보니, 두꺼운 테이프가 사방에 잔뜩 붙어 있었다. 뚜껑이 꽉 붙어 들리지 않았다. 만약 위급 상황에 여기 달려왔다면 얼마나 당황할까. 이 테이프를 일일이 다 떼는 동안 불이 얼마나 번질까. 그런 생각에 꽉 붙은 테이프를 하나씩 뜯어 놓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사람 뭐 하나’ 쳐다봤지만 괜찮았다.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 때 준비하면 이미 늦는 거니까.

홍대 한 인도엔 플라스틱으로 된 '주차금지' 표지판이 쓰러져 있었다. 두 개가 넘어져 있었는데, 바람에 쓰러졌거나 사람이 친 것 같았다.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보며 지나가다 거기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는 "아이씨"하고 짜증을 내며 그냥 지나갔다. 뒤따르던 행인 여럿도 이를 피하거나 넘어서 지나갔다. 가만히 두면 또 누군가 걸릴까, 넘어질까, 심하면 다칠까 싶었다. 그래서 다가가 표지판을 모두 일으켜 세웠다. 잠깐이면 될 일이었다.

연트럴파크 중심서 인근 상점으로 향하는 길. 사람들이 오가는 진입로 오른편에 가게 광고 입간판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크기가 꽤 커서, 통로 절반 정도를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사람이 많이 오가는 주말엔 좁은 틈으로 지나다 서로 부딪치거나, 간판을 넘어뜨릴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입간판들을 오른쪽으로 조금씩 밀어 통로를 확보해뒀다. 차마 너무 많이 밀진 못했다. 손님들이 더 많이 왔으면 하는, 자영업자들 맘도 잘 알 것 같아서.



버스 안내판에 '방향'을 표시했다
동네 버스정류장에 방향 표시가 없길래, 네임펜으로 그려봤다./사진=남형도 기자동네 버스정류장에 방향 표시가 없길래, 네임펜으로 그려봤다./사진=남형도 기자
눈길이 닿는 곳에도 관심이 필요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쩌면 필요하다 여기는 것들에 저절로 손길이 갔다.

버스정류장 안내판엔 어느 쪽으로 가는지, '방향'이 표시돼 있다. 거꾸로 버스를 타지 않도록, 누군가 해놓은 따뜻한 배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버스마다 다 표시가 돼 있는 건 아녔다. 일부 표시가 안 된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 검은색 유성 매직으로 표시가 안 된 것들까지 방향을 그렸다. 현재 정류장이 어딘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동네 인근 정류장을 다 표시해보니 한 10개 정도 됐다. 누군가 집을 잘 찾아가길 바라는 맘으로.

연남동 공원 안내판엔 인근 역, 학교, 주민센터 등이 안내돼 있었다. 방향이 어딘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그런데 '가좌역'이 왼쪽 방향이라 적혀있고, 거리가 11km라 돼 있었다. 이상해서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왜 그런지 알았다. 원래 1.1km인데, 점(.)을 찍어 놓은 흰색 페인트가 벗겨져 있어 그리 보였다. 종이를 살짝 찢어 동그랗게 돌돌 만 뒤, 1과 1 사이에 테이프로 붙였다. 그러니 다시 1.1km로 보였다. 주민들은 그렇게 안 해도 다 알겠지만, 혹시나 헷갈려 당황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거였다.

강아지를 찾는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진다. 그런데 잘 안 보이는 곳에 있길래, 눈에 잘 띄게 글을 써봤다./사진=남형도 기자강아지를 찾는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느껴진다. 그런데 잘 안 보이는 곳에 있길래, 눈에 잘 띄게 글을 써봤다./사진=남형도 기자
한 횡단보도 인근엔 진돗개를 찾는단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이름은 산이고, 수컷이고, 몸무게는 20kg이라 했다. 다른 진돗개와 달리 키가 작고 꼬리가 펴져 있단다. 지난 6월18일 천둥과 번개가 치던 새벽에 실종됐단다.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사진을 보니, 주인 맘이 느껴져 함께 속상했다. 그런데 전단지가 오래돼 색이 바랜데다, 시야에서 낮은 위치에 있어 많이 못 볼 것 같았다. 그래서 흰색 메모지에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적은 뒤, 그보다 높은 위치에 테이프로 붙였다. 5분 뒤, 지나가던 시민 한 명이 전단지를 봤다. 날이 뜨거워지는데, 빨리 찾기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오지랖
고생하시는 환경미화원님께 차가운 물 한 통을 드렸다. 고맙다고 하셨다. /사진=남형도 기자고생하시는 환경미화원님께 차가운 물 한 통을 드렸다. 고맙다고 하셨다. /사진=남형도 기자
사람에 대해서도 평소 안 부리던, '오지랖'을 부렸다. 그리고 상반된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때론 따뜻하게, 그렇지만 때론 차갑게 다가가야 했다. 상황에 따라 달랐다.

섭씨 3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홍대 거릴 걸었다. 목이 타서 편의점에 들러 물 한 병을 샀다. 벌컥벌컥 마시다,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을 봤다. 노고를 잘 알았다, 지난해 체험해 본 적이 있어서. 홍대 번화가서 구토물까지 치워봤었다. 땡볕에 서 있는 걸 보니 그 힘듦이 느껴졌다. 편의점에 다시 들어가 차가운 생수 한 병을 더 샀다. 가로수 옆에 쭈그리고 앉은 환경미화원에게 다가가 건넸다. 그는 "아이고, 감사합니다"하고 웃으며 받아 들었다. 평소 하고 싶었지만, 쑥스러워 못했던 일이었다.

횡단보도에 섰을 땐 시각장애인을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언제 건너야 할지 모른다. 그 때 도움을 주는 게 시각장애인 음성안내신호기다. 신호가 바뀌면 "건너가도 좋습니다"라고 친절히 안내해주는, 그 기계 말이다. 횡단보도마다 다니며 버튼을 누르며, 제대로 작동되는지 확인했다. 고장 난 것들이 실제 보며 확인한 것만 총 3개, 생각보다 꽤 많았다. 120 다산콜센터에 전화해 고장 신고를 접수했다. 어느 위치, 어떤 방향인지 일일이 설명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쉽게 신고하고 처리할 수 있게, 신호기마다 번호가 부여돼 있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비가 꽤 많이 오던 날, 동네에서 한 할머니가 할아버지 휠체어를 밀면서 가는 걸 봤다. 노부부였다. 할머니는 우산도 못 쓴 채 비를 맞으며, 낑낑 거리며 오르막길을 가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재빨리 뛰어가 할머니께 "제가 도와 드리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탄 휠체어 손잡이를 쥐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조심조심 밀어드렸다. 중절모를 쓴 뒷모습을 보다,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아이고, 젊은 총각 참 고맙다”고 했다(전 이미 유부초밥인데요, 씨익).



사람에 대한 '차가운' 오지랖
길거리 흡연은 늘 얘기하고 싶었었다. 누군가는 당신의 담배 연기를 맡고 있다고./사진=머니투데이db길거리 흡연은 늘 얘기하고 싶었었다. 누군가는 당신의 담배 연기를 맡고 있다고./사진=머니투데이db


따뜻한 오지랖보다 더 힘든 건 '쓴 소리'를 하는 거였다. 다수가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아무도 못 나설 때, 홀로 나서는 것 말이다. 평소 무시하는 편이었으나,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 또한 아무도 쉬이 못하는 일이었기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 횡단보도서 신호를 기다릴 때, 쓴 냄새가 몰려왔다. 바로 뒤쪽에서 한 중년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은 자릴 멀찌감치 피했고, 다른 젊은 남성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인상을 썼다. 다들 불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신호가 빨리 바뀌길 기다리는 듯 했다. 그에게 다가가 "담배 냄새 때문에 그런데, 저쪽에 가서 피우던지 꺼 달라"고 정중히 얘기했다. 그는 날 슬쩍 쳐다보더니, 횡단보도서 먼 쪽으로 자릴 옮겼다.

지하철에선 한 아주머니가 목소릴 높여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같은 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전화 내용을 공유할 정도였다. 무슨 자격증을 땄다는 아들 얘길 하더니, 뒤이어 집을 비운 남편 얘기로 수다를 떨었다. 난 그 아주머니 옆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5분 정도 듣다가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공공장소인데 통화 좀 조용히 해달라"고 예의 바르게 얘기했다. 다행히 그는 "죄송하다"고 한 뒤 목소릴 낮췄다. 누군가 얘기하면 될 일이었다.

정체가 심한 차도에서도 참견할 일이 생겼다. 평소 자주 지나다니던 도로였다. 1차로(직진 차로)에선 차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항상 10분 넘게 기다려야 했고, 2차로(우회전 차로)는 잘 빠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2차로에 진입한 뒤, 맨 앞쪽에서 얌체 같이 끼곤 했다. 그래서 정체가 더 심화됐다. 한 15분 정도 기다려 앞쪽까지 왔더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한 대가 2차로에서 끼려고 했다. 그래서 조수석 창문을 내린 뒤 "다들 낄 줄 몰라서 줄서서 기다리는 것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해당 차량 운전자는 묵묵부답이었지만, 속은 시원했다. 모두가 하고픈 말을 대신한 기분이었다.



비가 퍼붓던 날, '우산'을 나눠줬다
비가 쏟아지던 지난달 31일 광화문 사거리 양산 꽂이에 일회용 우산 두 개를 꽂아 놓았다. 다시 돌려달란 문구와 함께. 안타깝게도, 우산은 아직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비를 피했으리라 생각하며./사진=남형도 기자비가 쏟아지던 지난달 31일 광화문 사거리 양산 꽂이에 일회용 우산 두 개를 꽂아 놓았다. 다시 돌려달란 문구와 함께. 안타깝게도, 우산은 아직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비를 피했으리라 생각하며./사진=남형도 기자
'아무도 안 하는 일 하기'는 조금씩 발전해갔다.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더 섬세하게. 체험하기로 맘먹은 2주가 다 지나갈 무렵엔, 좀 더 많은 일에 용기를 내게 됐다. 기억에 남을 만한 기록을 할 수 있었다.

어느 출근길이었다. 광화문에 도착하니 비가 갑작스레 퍼부었다. 우산을 쓰고도 신발이며, 바지가 흠뻑 젖을 정도였다. 우산을 미처 못 챙긴 이들은 가방을 머리에 올리고, 황급히 뛰어다녔다. 가뜩이나 출근길은 몸이 무거울 텐데, 축축하게 젖은 채 하루를 시작할 이들이 안타까웠다. 그 때 회사에 쌓아뒀던 '일회용 우산' 생각이 났다. 비가 올 때마다 샀다가, 미처 집에 못 가져간 것들이었다.

회사에 들어가, 유성매직으로 흰 종이에 이렇게 썼다. '우산 쓰시고 다시 돌려놓아 주세요. 비 맞지 마세요. 파이팅!' 그리고 일회용 우산 두 개를 챙겨서 다시 바깥에 나갔다. 빗속에 뛰어들었다. 광화문 사거리 횡단보도에 있는 ‘양산걸이’에 일회용 우산 두 개를 걸었다. 그리고 아까 쓴 종이를 테이프로 붙였다. 정오에, 비가 그친 뒤 다시 와 보니 우산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급한 누군가가, 덕분에 비를 피한 것이리라. 그리 상상하니 뿌듯해졌다.

비가 그치고 눈에 띄는 것들이 더 있었다. 서울역 인근 횡단보도에 설치된 '철제 의자'가 그랬다. 임산부나 노인이 앉도록 세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실제 앉을 수 있는 건 두 자리 뿐이었다. 나머지 한 자리엔 빗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래서 휴지를 꺼내 의자 위에 있던 빗물을 깨끗이 닦았다. 축축하지 않은 지 마지막으로 한 번 앉아봤다. 뽀송뽀송했다. 그리고 잠시 뒤 횡단보도 반대쪽으로 갔다. 뒤돌아보니, 이번엔 의자에 세 명이 모두 앉아 있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어느 역에서 내릴지 알려주는 실험을 해봤다. 지하철에서도 두 차례 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좀 많이 부끄러운 게 함정. 아내가 아는척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사진은 잘 찍어줬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어느 역에서 내릴지 알려주는 실험을 해봤다. 지하철에서도 두 차례 했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좀 많이 부끄러운 게 함정. 아내가 아는척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사진은 잘 찍어줬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좀 쑥스러웠던 일, 그렇지만 해보고 싶었던 일도 했다. 만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서 서서갈 때 떠올렸던 아이디어다. 서 있을 때, 앞쪽에 앉은 사람이 대체 어디서 내릴까 궁금했었다. 그 자리에 앉고 싶으니까. 퇴근길에 피곤할 땐 더 그랬다. 그 정보를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 사람은 시청역에서 내리는구나, 조금만 참자'라거나, '아, 김포공항까지 가네. 다른 데 서야지', 이렇게 짐작할 수 있으니.

지하철 2호선을 탈 때 기회가 찾아왔다. 운 좋게 자리에 빨리 앉게 됐다. 흰 종이에 유성 매직으로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립니다. 앞에 서실 때 참고하세요!'라고 썼다. 그걸 가방 앞주머니에 꽂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했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 시선이 종이에 한 번, 내 얼굴에 한 번 꽂혔다. 화끈거려서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효과는 있었다. 시청역에서 탑승한 한 아저씨가, 종이를 보더니 내 앞에 섰다. 물어보니 "다음에 내린다고 쓰여 있어서 여기로 왔다"며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까마득히 몰랐다, 그냥 내가 하면 된단 걸
누군가 빗방울이 묻은 벤치를 닦으면, 또 다른 누군가 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누군가 빗방울이 묻은 벤치를 닦으면, 또 다른 누군가 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렇게 2주간 체험이 끝났다. 모아놓고, 돌이켜보니 어찌 보면 참 소소한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 살면서 잘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이라 공유하고 싶다.

내가 하면 된단 생각을 왜 못 했을까 싶었다. 아마 방관이란 말이 적당할 것 같다. 직접 하기보단 '누군가 하겠지'란 맘이 앞섰다. '뭘', '굳이', '귀찮게'란 세 단어로 압축될 것 같다. 거기에 덧붙이면 '괜히 나섰다 손해볼까봐', '그냥 조용히 있자'는 정도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결국 누군가 나서기도 하고, 변하지 않고 방치돼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굳이 아무도 안 하는 걸 하긴 싫었다. 그런 맘이 컸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별 거 아녔다. 시작하기까진 큰 결심이 필요 했는데, 해보니 의외로 간단한 거였다. 길 한가운데 널브러진 돌 하나를 치우는데 걸린 시간은 30초도 채 안 됐다. 쓰러져 있는 광고판을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 지하철 의자에 버려진 일회용 커피 컵을, 인근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불과 스무 걸음 밖에 안 됐다. 비에 젖은 의자를 닦는데 휴지 세 장이면 충분했다. 큰 노력이 필요한 건 아녔다. 근데 왜 그리 힘들었을까. 맘을 들여다봤다. '내 일이 아니니까'란 생각이 있었다. 어렵게 나선 덕분에 그 생각을 깰 수 있었다. 몸이 먼저 움직이게 됐다.

같은 맘으로 다들 지켜보기만 하진 않았을지. 그걸 나무랄 순 없다. 어쩌면 살면서 깨닫는 본능 같은 것일 테니까. 나서면 손해 볼 수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최소 손해는 보지 않으니까 말이다. 한 발 자국만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모두가 그런 맘을 먹고 있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냥 방치돼 있을지. 그리고 그건 결국 내게 돌아오는 건 아닐지. 기꺼이 용기를 내어 나선 고마운 누군가 덕분에, 조금씩이라도 나아졌었다. 그렇게 보니, 남 얘기라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 내 얘기였다. 그 사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나도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직접 나서서 좋았던 게 있다. 무관심하지 않았던 덕분에 얻게 된 것들이다. '나로 인해 이게 달라졌구나, 나아졌구나, 바뀌었구나', 그런 기분이 좋았다. 맘 먹고 나서니, 그 순간을 마주할 수 있어 또 좋았다. 쓰레기가 사라진 거리가 보기 뿌듯했고, 장애물을 치우니 편한 도로가 됐고, 남는 우산을 나누니 누군가 비를 덜 맞게 되어서. 그 모든 게 내 작은 결심에서 시작됐고, 생각을 넘어 행동했고, 이 팍팍한 세상이 단 1g 만큼이라도 나아질 수 있단 것. 그게 자꾸 또 다른 오지랖을 부리게끔 했다.

그러니 기억할 게 있다. 살면서 '기적'이라 불리는 것들은, 대개 이런 사소한 관심에서 출발한단 것을. 부딪치고, 치이고, 싸우고, 징글징글하더라도 함께 살아가게끔 돼 있는 이유란 것도. 이번 체험은 홀로 했지만, 이 글을 보는 독자들이 맘을 조금만 바꾸면, 크게 욕심내지 않고 주위에서 아무도 안 하던 것들을 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질 거라는 것도. 그걸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가우디의 작품 구엘공원. 그 곳도 마냥 좋았지만, 조금이나마 더 편한 길을 안내해줬던 스페인 시민 한 명이 더 기억에 남는다./사진=남형도 기자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가우디의 작품 구엘공원. 그 곳도 마냥 좋았지만, 조금이나마 더 편한 길을 안내해줬던 스페인 시민 한 명이 더 기억에 남는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지난해 겨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걸작도, 맛난 음식도 좋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건 따로 있었다. 거기서 잠깐 만났던, 한 스페인 시민이었다.

'구엘공원'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역 출구로 나와 걸어갔다. 구글맵 안내에 따라, 좌측 계단으로 오르려 했다. 개수가 꽤 많아 까마득했다. 고생하겠다 싶었다.

그 때, 중년쯤 돼 보이는 여성이 아내와 내 앞에 나타났다. 여행자의 본능인지라, 나도 모르게 경계를 했다. 가방을 오른손으로 움켜 쥐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쪽 계단으로 오르지 말고, 조금만 더 직진해서 가라고. 그럼 에스컬레이터 하나가 나온다고. 그 길이 더 편할 거라고.

고맙다고 하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고, 안 알려줘도 그만 아닌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심지어 그는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웃으며 그리 안내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그 마음이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막연히 따라해보고 싶었다.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가 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편한 길을 안내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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