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하나가 꿈…이젠 너무 큰 농장 갖게 됐네요"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2019.07.29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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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고추 모종 개발에 30년 투자한 최순호 농우바이오 R&D본부장 인터뷰

최순호 농우바이오 R&D본부장최순호 농우바이오 R&D본부장


‘마니따’, ‘배로따’, ‘빅스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고추 모종 이름이다. 마니따와 배로따는 말 그대로 수확량이 많은 모종이고, 빅스타는 크기가 크고 병충해에 강한 고추 모종 이름이다. 모두 최순호 농우바이오 R&D (연구·개발) 본부장의 손에서 탄생했다.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고, 맛이 좋아지거나 병충해에 강해지는 만큼 농가들은 새로운 모종에 관심이 많다. 최 본부장은 1988년 입사해 약 30여년간 고추 모종 개발에 힘을 쏟다가 2017년 R&D본부장으로 취임, 이제는 회사의 모든 종자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농우바이오는 고추 뿐만 아니라 각종 야채, 과일의 종자를 개발한다. 껍질이 검은 수박, 대추 모양의 방울토마토 등이 모두 농우바이오 작품이다.



최 본부장은 30여년간 한우물을 팠는데도 여전히 배울게 많다고 한다. 그는 “배로따라는 품종을 개발했을 때 수확량만 늘어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종자로 농사를 지은 농부가 ‘수확할 때 떼내기가 어렵다’고 항의를 했다”며 “이미 20년 넘게 종자 개발을 했을 때인데 처음으로 수확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최 본부장은 이 일을 겪고 난 뒤 종자개발을 하면 과실을 모두 직접 한번씩 따 본다.

농가가 선호하는 종자의 유행도 계속 변하는 중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 먹을 것이 부족해 가장 첫번째 목표가 수확량이었다면 1990년대에는 내병성을 가진 품종이 선호됐다. 최 본부장은 “내병성을 강화하려고 다른 품종을 섞다 보니까 품질이나 맛이 하락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2010년까지는 내병성과 맛, 광택 등 품질 측면으로 유행이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2010년 이후 트렌드는 ‘기능’이다. 도시에 있는 최종 소비자들이 채소나 과일의 몸에 좋은 성분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 본부장의 배움은 그래서 끝이 없다. 최 본부장은 이같은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품종 개발을 위해 지금도 공부를 꾸준히 하는 중이다.

그는 “우리가 개발한 품종을 심어서 수익이 늘어난 농가에서는 지나가던 나를 불러 막걸리 한잔 하고 가라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성과가 좋지 않으면 멱살을 잡는 경우도 있다”며 “아무래도 신품종의 경우 가격이 있으니까 농부들의 기대가 있는데 이를 맞춰줄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다만 “품종 하나를 개발하는데 최종 결과물을 보려면 12~13년이 걸린다”며 “많은 노력과 투자가 들어가는데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정부 등에서 종자산업이 좀더 경쟁력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농우바이오는 미국,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도 진출해있다. 해외 연구 역시 최 본부장이 총괄한다. 공기, 물 등 재배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종자 역시 현지에 맞게 개발하는데 힘쏟고 있다. 미국법인은 중남미 할라피뇨 고추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는 등 성과가 나오고 있으며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는 산동에 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 꿈이 농장 하나 가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너무 큰 농장을 갖게 됐다”고 웃었다. 이어 “국내 농업은 점점 축소되는 만큼 회사의 미래가 해외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며 “종자개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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