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역단에 '호랑이'…박운서 前 산업부 차관 별세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19.07.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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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역단에 '호랑이'…박운서 前 산업부 차관 별세


일본과의 무역협상에서 호랑이로 통한 '타이거박'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별세했다.

25일 뉴스1에 따르면, 박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지난 24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 병원에서 향년 80세 나이로 별세했다. 관료에서 기업 전문경영인(CEO)으로 활동하다가 해외 오지 원주민을 돕는 봉사자로 살아온 고인은 2015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투병 생활을 해왔다.

1939년 경북 의성 출신인 고인은 대구 계성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6회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8년 옛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청와대 경제비서관, 상공부(현 산업부) 제1차관보, 통상산업부 초대 차관 등을 역임했다.



관가에서 그는 '타이거 박'으로 통했다. 1983년 상공부 통상진흥국장 시절 도쿄에서 일본대표단과 무역협상을 벌일 때 재떨이를 깨뜨릴 정도로 격론을 벌인 그를 보고 일본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차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기업인으로 변신해 당시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사장과 민간기업인 LG상사 부회장, 데이콤 부회장을 잇달아 맡았다. 당시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라 불리던 데이콤을 파산 위기에서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키며 관료 출신으로서 성공한 CEO라는 평가를 받았다.



LG그룹 내에는 박 전 차관이 이동통신사업을 진두지휘하던 당시 뚝심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LG텔레콤 통신 사업이 10년간 위기를 겪을 때마다 회사 내에선 박 전 차관의 강단있는 업무 추진과 선견지명을 그리워하는 직원들이 많았다는 후문이다.

박 전 차관을 생생히 기억하는 현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타이거 박의 계획대로 LG텔레콤이 비동기 방식의 망을 구축하고 3G 때부터 2강(SKT, KT)과 경쟁했다면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구도가 이렇게 오랫동안 고착화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타이거 박은 업무에 대한 깊은 전문성과 소신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우고, 이를 밀어붙임에 있어 전혀 흔들림이 없는 강단이 있는 인물이었다"고 회고했다.

박 전 차관은 장관 후보자로 하마평에 꾸준히 올랐으나 모든 걸 내려놓고 2005년 필리핀 오리엔탈 민도로섬에 사는 원주민인 망얀족 봉사에 투신했다.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이제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지만 남은 인생은 남을 위해 살겠다"고 말했다.


그 후 10여년을 필리핀 밀림에서 원주민들과 지내며 교회를 세워 선교활동을 하고 벼농사법 등을 가르쳤다. 하지만 2015년 필리핀 현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부서졌고 발가락을 절단하는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고인이 이사장으로 일했던 모리아자립선교재단은 24일 홈페이지에 고인의 부고를 알리면서 "오늘 새벽 5시40분 박운서 장로님께서 필리핀에서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라고 전했다.

고인과 함께 일한 적 있던 산업부 관료들은 고인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박건수 산업혁신성장실장은 "고인께서 차관보로 계실 때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며 "통상의 달인이셨고, 한 번 물면 놔주지 않는다고 해서 타이거박이라는 별명을 갖고 계셨는데 미국과의 협상 등에서 우리 입장을 충분히 관철시키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셨다"고 회고했다.

최근 무역투자실장직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김선민 전 실장은 "당시 공보관실에서 일할 때 고인께서 장관으로 온다는 설이 돌면서 '돌아온 타이거박'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 작성을 준비했던 게 생각난다"며 "협상에선 엄격하셨지만 후배들에겐 따뜻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김에스더씨와 아들 찬준·찬훈·찬모씨가 있다. 빈소는 고인의 유해가 국내로 운구되는 대로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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