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수출규제의 교훈.."中추격에 삼성·SK 경쟁력 사라질 수도…"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9.07.2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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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반도체 분업 파트너 日의 변심…'보호무역주의 반도체 경쟁력 위기요인"

日수출규제의 교훈.."中추격에 삼성·SK 경쟁력 사라질 수도…"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규제에 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시 허가를 간소화해주는 우방국)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국내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의 흐름 속에서 20년 넘게 글로벌 1위 자리를 지켜온 한국 메모리반도체의 경쟁력이 급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4일 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63.7%(D램 72.3%, 낸드플래시 49.5%)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980년대 초반 D램 개발에 뛰어들어 1992년 D램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한 이후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를 26년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업계와 전문가 사이에 팽배한 상황이다.

한국은 D램을 개발한 최초의 국가가 아니다. 미국이 D램을 최초로 개발했으며, 1980년대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1위로 올라섰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일본의 NEC·도시바·히타치가 세계 1~3위를 차지했다. 이후 미국 레이건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는 등 양국이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의 반도체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빼앗아온 중심에는 자유무역과 글로벌 분업구조가 있다.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이미 개발된 일본의 우수한 소재·부품·장비의 경쟁력에 기대 빠르게 성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본 업체와의 파트너십과 신뢰가 깨지면서 협업체제에 균열이 생겼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한국이 1980년대 초 D램을 시작해 20년 넘게 1위를 유지한 것은 그간 우리를 쫓아오는 경쟁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모든 해외 파트너는 우리보다 자본력과 시장이 우수한 경쟁국(중국)의 더 친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얼마 전부터 중국이 D램 메모리 시장에 들어왔는데 우리가 지식과 기술과 부품, 재료, 장비를 돈으로 사면서 여기까지 왔듯 중국은 우리보다 더 많은 자본을 들여 우리를 추격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과거 일본이 우리보다 기술력도 좋고 인프라도 좋은데 우리가 일본을 이겼듯 중국이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법이 없다"며 "중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해외에서 사들이는 부품·장비·재료를 사겠다고 하면 거래처 입장에서는 구매물량이 많은 중국이랑 더 친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79,900원 ▲1,000 +1.27%)SK하이닉스 (180,000원 ▲1,300 +0.73%)의 경쟁력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소재는 50.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갈수록 격화되는 국가간 통상 전쟁은 한국 반도체 경쟁력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황 회장은 "ICT(정보기술) 혁명 이후엔 각국이 국수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며 "지식과 기술, 정보, 통계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중국 가서 돈 많이 벌어오면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표심과 직결되기 때문에 갈수록 각국의 정부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도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대외무역 의존도가 110%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철저히 자유무역주의를 실천하고 해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일본의 소재산업에 의존했던 것에서 탈피해 조달을 다변화하고 산업 자립을 이루는 게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이나 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소재·장비·부품 관련 가격 협상 측면에서 일본 업체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국내에 다양한 업체가 생기는 것이 좋다"며 "지금까지 D램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소재·장비·부품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산업 측면에서도 큰 기회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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