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D램을 개발한 최초의 국가가 아니다. 미국이 D램을 최초로 개발했으며, 1980년대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1위로 올라섰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일본의 NEC·도시바·히타치가 세계 1~3위를 차지했다. 이후 미국 레이건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는 등 양국이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의 반도체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한국이 1980년대 초 D램을 시작해 20년 넘게 1위를 유지한 것은 그간 우리를 쫓아오는 경쟁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우리의 모든 해외 파트너는 우리보다 자본력과 시장이 우수한 경쟁국(중국)의 더 친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얼마 전부터 중국이 D램 메모리 시장에 들어왔는데 우리가 지식과 기술과 부품, 재료, 장비를 돈으로 사면서 여기까지 왔듯 중국은 우리보다 더 많은 자본을 들여 우리를 추격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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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거 일본이 우리보다 기술력도 좋고 인프라도 좋은데 우리가 일본을 이겼듯 중국이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법이 없다"며 "중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해외에서 사들이는 부품·장비·재료를 사겠다고 하면 거래처 입장에서는 구매물량이 많은 중국이랑 더 친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79,900원 ▲1,000 +1.27%)와 SK하이닉스 (180,000원 ▲1,300 +0.73%)의 경쟁력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소재는 50.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갈수록 격화되는 국가간 통상 전쟁은 한국 반도체 경쟁력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황 회장은 "ICT(정보기술) 혁명 이후엔 각국이 국수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며 "지식과 기술, 정보, 통계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중국 가서 돈 많이 벌어오면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표심과 직결되기 때문에 갈수록 각국의 정부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장도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대외무역 의존도가 110%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철저히 자유무역주의를 실천하고 해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일본의 소재산업에 의존했던 것에서 탈피해 조달을 다변화하고 산업 자립을 이루는 게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이나 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소재·장비·부품 관련 가격 협상 측면에서 일본 업체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국내에 다양한 업체가 생기는 것이 좋다"며 "지금까지 D램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소재·장비·부품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산업 측면에서도 큰 기회요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