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에 감정이입하는 사람들

박진영(‘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작가) ize 기자 2019.07.24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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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를 둘러싼 반응들은 대체로 모순적이다.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으므로 남성은 기본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고 하는 동시에, 남성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리 없다고, 여성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한다. "앞날이 창창한데 한 순간의 실수로……."라며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입을 손해에 더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른 범죄들보다 유독 성폭력 사건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반응들이다. 왜, 어떤 사람들이 성폭력 사건에 있어 유독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하게 되는 걸까?



성폭력에 대한 오랜 연구 끝에 내려진 큰 결론은 성폭력은 결코 ‘한 순간의 실수’ 같이 비의도적인 것이거나 ‘자연재해’ 같이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폭력범들은 다른 범죄자들이나 일반인들에 비해 깊은 성차별 의식과 왜곡된 여성관을 가지고 있다. 여성과 남성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여성은 절대 남성과 같은 위치에 올라올 수 없다는 차별적 인식,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것이며 여성은 남성의 성욕 해소에 봉사하는 도구적인 존재라는 인식, 여성은 남성을 속이려 드는 기만적이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여성의 YES는 NO라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 성폭력범은 남성이 도구일 뿐인 여성을 사용해서 성욕을 해소하는 것은 남성의 당연한 ‘권리’이므로 여성의 의사에 반한 성적 행동(곧 성폭력의 정의이다)을 해도 그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여성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죄를 저질러 놓고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뉘우치지 않고 범행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꼿꼿이 키워온 성범죄자적 사고방식이 성범죄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는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즉 성범죄는 다른 범죄들보다 비슷한 일을 저지를 잠재성을 가지고 있거나 ‘동조자’가 많은 범죄인 것이다. 이들이 함께 성범죄를 옹호하며 성범죄에 온건한 환경을 만든다.



미국 테네시 대학의 심리학자 Colin Key의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본인이 성범죄 잠재성이 높은 경우, 즉 가해자의 잘못이 잘못으로 인정될 경우 본인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가해자의 입장에 잘 이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남성들에게 직장 내 성희롱 사례를 보여주며 1) 자신이 가해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지, 2) 가해자가 자신과 얼마나 비슷한 것 같은지, 3) 이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얼마나 잘못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우선 성차별 의식과 왜곡된 성관념을 가진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이 비해 자신이 가해자와 많이 닮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도가 클수록 가해자의 잘못은 적게 평가하는 반면 피해자의 잘못이 크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렇게 비슷한 성범죄자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옹호하는 현상에 더해, 영국의 심리학자 토마스 페이지(Thomas Page)는 남성 집단에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성범죄를 남성적인 일이라며 옹호하고 가해자의 입장에 이입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남성 집단과 정체성 융합 정도가 큰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엄연한 성범죄에 대해 ‘남자라면 다 그런다’, ‘그냥 장난일 뿐이다’, ‘여자들도 괜히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오버하지 말아야 한다’, ‘여자가 먼저 꼬리쳤을 것’ 같은 사고방식을 보이며 성범죄를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 성폭력 사례를 보여주고 나서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이 사건을 보고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이 드는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등에 대해 물었을 때, 성범죄 정당화적 사고방식이 강한 남성들은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사건의 심각성을 평가절하하고, 기분이 나빠지기보다 좋아진 편이었으며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도 적게 느끼는 편이었다. 또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결국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지켜지는 남성성이라는 것이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라서, 그런 남성성으로 주변 남성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그런 나의 욕구를 범죄로 규정해버리면 곧 내가, 또 내 주변 남성들이 범죄자가 되기 때문에 자신을 옹호하는 마음으로 가해자를 옹호한다는 얘기다. 이런 사소한 동기로 범죄를 옹호하다니 허탈하기도 하다. 한편 ‘남성 집단’에 인정받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한 가지 중요한 이유라면 사회에서 남성성을 뿌리부터 다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Key, C. W., & Ridge, R. D. (2011). Guys like us: The link between sexual harassment proclivity and blame.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 Relationships, 28, 1093-1103.
Page, T. E., Pina, A., & Giner‐Sorolla, R. (2016). “It was only harmless banter!” The development and preliminary validation of the moral disengagement in sexual harassment scale. Aggressive Behavior, 42, 254-273.
Polaschek, D. L., & Gannon, T. A. (2004). The implicit theories of rapists: What convicted offenders tell us. Sexual Abuse, 16, 299-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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