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영화사, 책 ‘원안’ 인정하고도 왜 계약서 파기했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7.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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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출판사 가처분 소송 뒤에 남은 얘기들…“자문료 받고 신뢰했더니, 비수 꽂아” VS “도움 많이 안 받아”

‘나랏말싸미’ 영화사, 책 ‘원안’ 인정하고도 왜 계약서 파기했나


출판사 나녹이 제기한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 23일 기각되면서 영화 '나랏말싸미'는 예정대로 개봉한다. 하지만 영화와 책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영화가 이 책을 ‘원안’으로 삼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진실공방 게임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 제작 과정에 이들에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이 책의 출판사 나녹과 저자 박해진 작가는 “영화사가 ‘원안’을 인정하고도 자문료만 지불하고 결국 (원안)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영화사 두둥은 “출판사가 ‘반성문’ 같은 전제 조건을 달아 계약이 파기된 것”이라고 맞섰다.



박 작가가 쓴 책은 81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핵심 인물로 떠오른 신미 스님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밝힌 평전이다. 그간 추론이나 추측으로만 떠돌았던 인물의 존재를 개인 문집, 훈민정음 연구서와 논문, 현장 답사를 통해 확인하고 검증해 낸 실증적 자료인 셈이다. 주석만 1374개에 이를 정도로 검증에 힘을 싣기도 했다.

‘원안’ 논란은 지난해 4월 23일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영화사 대표, 출판사 대표, 영화 감독, 작가, 동출 스님이 참여한 이 회의에선 영화사가 출판사와 계약하지 않고 박 작가 개인과 먼저 계약하려 한 점에 대한 섣부른 결정을 정리하는 얘기를 시작으로, ‘원안’ 인정에 대한 결론까지 가닥을 잡았다.

두 회사의 중재자로 나선 동출 스님은 “박 작가가 10년 넘게 전설로 남은 신미 스님의 출생부터 업적까지 모두 밝혀냈다는 점에서 책은 양념이 아니고 뼈대고 골격”이라며 “모티브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원안’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안에 대한 문제는 작가와 감독, 영화사 대표도 모두 인정하면서 정리되고 있었다.


조철현 감독은 “박 선생에게 원안이라고 먼저 제안했다”고 했고, 박 자가는 “원안이라고 해서 적극 참여했다”고 말했다. 영화사 오승현 대표 역시 “10년간 너무 고생하고 만든 소중한 책에 대해 회사 입장에서 원안계약을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느냐? 원안으로 해서 제안드리겠다”고 마무리했다.

다만 중재인인 동출 스님의 제안으로 계약서 작성 전 개인 대 회사가 아닌, 회사 대 회사로 하지 않은 미숙한 대응을 바로잡는 문구도 넣기로 했다. 동출 스님은 “서로의 관계를 정립하려면 이 과정의 불찰에 대해 영화사 대표로서 안으로라도 과정의 미숙함이 있었다고 밝혀달라. 가닥을 잡아야 다음 단계가 성숙된다”고 하자, 오승현 영화사 대표는 “메일로 드리겠다”고 했다.

문제의 발단은 이 미숙한 대응에 대한 ‘문서’였다. 오 대표는 이후 ‘원안계약서’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형난옥 출판사 대표가 “회의에서 나온 ‘미숙함’에 대한 문서도 같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회의 결과를 제대로 따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1주일 뒤 오 대표는 “투자자가 그 ‘문서’를 원치 않아서 원안계약서를 쓸 수 없다”고 뜬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오 대표는 “그 문서 요구가 마치 ‘반성문’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투자자에게 ‘반성문을 계약서와 같이 달라고 한다’고 말했더니, ‘그럼 계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형 대표는 “어찌 우리가 반성문을 요구할 수 있느냐”며 “중요한 건 ‘원안’을 인정한 만큼 그 절차를 지키자는 것”이라고 했다.

원안계약서가 파기되면서 법정 다툼도 저작권의 주체가 출판사인지, 영화사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원안’을 놓고 영화 제작 과정에 개입한 각자의 ‘공’도 옥신각신이다.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낸 박해진 작가. 그는 "영화사가 내 작품을 '원안'으로 인정하면서도 결국 '원안 계약서'를 파기했다"며 "10년 넘게 파헤친 내 열정과 에너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고 분개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br>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낸 박해진 작가. 그는 "영화사가 내 작품을 '원안'으로 인정하면서도 결국 '원안 계약서'를 파기했다"며 "10년 넘게 파헤친 내 열정과 에너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고 분개했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박 작가는 “영화 메인 작가가 시퀀스를 만들기 위해 우리 집을 8번이나 찾아와 참여를 간곡히 부탁했다”며 “‘신미 스님’ 얘기는 내가 쓴 책이 유일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다른 곁가지 책도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또 “시나리오 구축 과정에 대한 메모가 있는데, 32회나 참석해 조언하고 밑그림을 그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작가는 자신이 직접 회의에 참석하며 깨알같이 메모한 노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 대표의 주장은 다르다. 그는 “박 작가가 시나리오 쓰는 데 한두 번 와서 술 한잔 하며 했던 얘기가 전부”라며 “영화에 나온 주제나 설정, 사건이나 공간이 같다고 해서 책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면 저작권 침해에서 피해갈 역사물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따졌다.

오 대표는 이와 함께 박 작가 작품 외에 수많은 작품을 참고했다며 신미 스님 얘기가 최초는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를테면 신미 스님의 스승인 함허 스님에 대한 얘기, 책 ‘청강에 비친 달’의 내용, 한 스님이 박 작가에게 준 자료의 보편성 등을 근거로 들었다.

박 작가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박 작가는 “스님들한테 받은 자료는 단 한 개도 없다”며 “오히려 스님들이 내가 발굴한 신미 스님의 출가부터 업적을 조사한 노고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했다. 또 “함허 스님 역시 내가 처음 얘기한 것이고 심지어 정광 교수가 2016년 발표한 논문에도 내 책 내용을 5쪽에 걸쳐 소개하면서 재야학자의 글이라고 인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이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말했던 내용에 대해서도 박 작가는 반론을 제기했다. “신미 스님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언어학자, 한글학자 등 만나 자문을 받았다”(조 감독) “신미가 함허당의 상수 제자라는 것은 이 책에서 최초로 밝힌 것이다. 조 감독은 2015년 저자를 만나 책의 존재를 알게 됐고 관련 교수도 저자가 소개해 준 것이다.”(박 작가)

실제 지난해 4월 회의에서도 박 작가가 주장한 것과 비슷한 대화가 나온다. 조 감독은 “이 책을 읽어보고 신미를 알았다. 그전에는 몰랐다”고 말한 부분이 그것.

시나리오 작업에 32회 참가했다는 박해진 작가의 제작노트. 시나리오 작업에 32회 참가했다는 박해진 작가의 제작노트.
시나리오 작업에 32회 참가했다는 박해진 작가의 제작노트. 시나리오 작업에 32회 참가했다는 박해진 작가의 제작노트.
시나리오 작업에 32회 참가했다는 박해진 작가의 제작노트. 시나리오 작업에 32회 참가했다는 박해진 작가의 제작노트.
시나리오에서도 책의 내용을 차용한 듯한 흔적도 적지 않다. “밥은 빌어먹어도 진리는 빌어먹을 수 없다”는 신미의 말씀은 ‘훈민정음의 길 : ‘능엄경’의 다라니‘에서 인용했고, 세종이 “나는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너는 부처를 내려놓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신미가 “저는 부처를 타고 가겠습니다. 전하는 공자를 타고 오십시오.”하는 대목은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와의 대화 638쪽’에서 인용했다는 것이다.

책에 기댄 흔적이 적지 않아서인지, 영화사와 조 감독은 처음부터 ‘원안’ 계약을 염두에 뒀다. 오 대표는 “조 감독 성격이 책이 좀 잘 팔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원안’을 승인한 것이다. 처음엔 박 작가도 ‘내가 원안이 아닌데 해주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 자가는 “그런 억측이 세상에 어디있느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하면서 자문료까지 주니 ‘원안’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결과적으로 보니, ‘원안’ 계약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단 생각밖에 안 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훈민정음해례본’에는 너무 간단명료하게 요약돼 창제 초기의 비밀을 풀 수 없으며 정인지의 서문에는 신미의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다. 박 작가의 열정으로 밝혀낸 신미의 구체적 존재로 불교계에서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동출 스님은 “사학자들도 밝혀내지 못한 큰 얼개를 박 작가가 만들었다”면서 “보석을 자갈로 취급하며 숟가락 하나 얹는 행태가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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