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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이 출판사를 차리기까지

최영미(시인) ize 기자 2019.07.2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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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음을 싫어했는데, 주문을 알리는 서점의 팩스 소리가 사랑스럽게 들린다.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기계 싫어하고 컴퓨터 싫어하고, 숫자 세기 싫어하던 내가 매일 내 손으로 수량과 비율을 입력해 거래명세서를 작성한다. 인터넷뱅킹도 하지 않던 기계치가 홈택스에 접속해 계산서를 발행하다니. 전자계산서를 처음 발행한 날, 믿기지 않아 보고 또 보았다. 0이 제대로 붙었나를 확인하느라 뒤에서부터 ‘일 십 백 천 만’을 셌다.

내가 처음 발행한 계산서의 ‘공급받는 자’는 집 근처의 작은 책방 ㄱ이다. 1쇄를 받은 다음날 저녁,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 10부를 들고 가 5부를 팔았다. 디자이너가 이메일로 보낸 본문 1교지를 인쇄하지 못해 속을 태우다(한글도 PDF도 아닌, 이상하게 생긴 파일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걸 잘할 텐데 누구 없을까?’ 퍼뜩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동네서점이 떠올라 노트북을 들고 가서 긴급도움을 청했고, 5분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교정지를 출력하지 못하면 책이 나올 수 없으니, 책방은 내겐 너무나 고마운 곳.

맑은 얼굴의 책방지기에게 거래명세표를 내밀며 공급률을 말하던, 나는 이미 사업자였다. 동네의 책방 2곳에만 직접 책을 배달하고, 다른 서점들에는 배본사를 통해 책을 보낸다.



배본사가 깔아준 프로그램에 들어가 출고 접수하기가 물론 쉽지 않았다. 처음 일주일은 아침마다 프로그램 기사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했는데,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친절히 응해준 기사님이 어찌나 고맙던지. 남들은 5분이면 할 일을 나는 50분 걸려 겨우 해냈다. 남들은 은퇴를 앞둔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나를 말리며, "언니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하는데 출판사를 운영하면 시를 못 쓰지 않나?" 걱정하던 지인도 있었다. 내 몸의 피를 전부 바꾸는 듯한 고통을 견디며 나는 시인에서 사업자로 변모했다.

구청에 가서 출판사 이름을 등록하고 신청서를 채우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 Imi books. 종업원 1명. 이렇게 간단할 수가……. 이렇게 쉬운데 그리 오래 고민했나. 10년 전부터 ‘출판사를 차릴까’가 내 머리를 들락날락, 1인 출판을 하는 선배에게 전화질하다, 실무를 처리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었다.

드디어 오늘 출판사 등록을 한다! 흥분한 나머지 구청으로 가는 길에 발목을 삐었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도 직업인이 되었네! 이제 여행 가서 호텔 체크인하며 출판업자라고 쓸 수 있겠네. 직업란에 시인이라고 썼더니 날 수상한 눈으로 보며 "너 진짜 직업이 뭐니?"라고 물어본 유럽의 어느 호텔 직원도 있었다. 직업란에 시인이라고 쓰기 창피해, 작가라고 업그레이드하며 왠지 모를 불편함을 삼켜야 했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1992년 등단한 뒤 나는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5권의 시집을 펴냈다. 누군가에게 내 책을 사서 주고 싶은데, 시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서점에서 내 책을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출판사를 차리면 시집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지 않나.

2018년의 ‘미투’ 이후, 내 이름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새 시집을 내고 싶은데,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었다. 2018년 여름에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에 시집 출간을 제안했는데 답이 없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못 내주겠다는 말도 없이……. 뒤늦게 나는 사태를 파악했다. 문단권력을 비판한 나를 그들은 좋아하지 않으며, 나와 싸우는 원로시인의 책을 펴낸 출판사는 내 시집을 내기가 부담스러운 게다.

그럼 내가 내야겠네. 그래서 출판사 등록을 하게 되었다. 내 책을 내가 만들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내 맘대로 제목을 정하고, 편집과 디자인은 물론 신간 안내도 내가 원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고, 내 시를 고치고 싶으면 출판사에 부탁하지 않아도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 배송이나 영업이 걱정되었지만 닥치면 하겠지, 믿고 일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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