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회장은 "지금 한일 갈등 사안인 일본의 불화수소(에칭가스)가 대표적인 예다. (고순도 가스라는 첨단 소재 하나가 한국 반도체 라인 전부를 좌우할 변수가 되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남들은 못 만드는 특수 제품을 만드는 데 굉장히 강하다. 반드시 브랜드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니다. 영원무역은 해외 유명 브랜드(노스페이스, 스콧 등)를 인수해서도 잘 (경영)하고 있다. OEM(주문자제품수주생산) 납품 사업도 잘하면 브랜드 사업보다 더 잘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영원무역 현지 생산기지에서 만난 성기학 회장은 현지 진출 39년 만에 한국 국무총리 방문을 받는 대표기업이 됐다.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해 세계 최빈국 수준이던 이 나라의 저력을 눈여겨보고 1980년 아무도 상상조차 못할 당시 현지에 진출해 한우물만 판 결과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서만 현재 종업원 6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최대 기업으로 이 나라 국가 수출 80%를 차지하는 섬유산업 성장의 주축이 됐다. 섬유 수출 세계 2위인 방글라데시 수출액 약 25%를 영원무역이 담당하는 것이다. 39년전 미국과 유럽의 쿼터제(수출 할당제)와 한국 대기업들의 견제를 피해 서남아시아 뱅골만을 개척한 성기학 회장은 이제 방글라데시는 물론 한국에서도 '봉제왕'으로 불린다. 그룹 연결매출액(영원무역홀딩스 기준)이 2조5187억원, 영업이익이 2549억원으로 2위(휠라)를 두 배 가량 압도적인 차이로 앞서고 있다.
성기학 회장은 "현재 6만4000명 수준인 방글라데시 인력을 5만명 더 늘려 치타공(현지 남부 항구도시)에서의 직접 고용을 10만 명까지 하는 게 목표"라며 "중국에서 주문하던 사람들이 방글라데시로 생산지를 옮기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치타공 KEPZ(한국수출가공공단)에 생산 설비를 늘릴 공간이 많다"고 강조했다.
황무지 316만평 20년 만에 친환경 생산기지로
영원무역은 1999년 황무지였던 치타공에 316만평 규모 부지를 매입해 지난 20년간 나무 600만 그루를 심고 땅을 가꿔 수출가공지역(Export processing zone)을 만들었다. 이중 절반 가량 토지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일부에 관한 소유권 이전을 방글라데시 정부로부터 10년간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에 위치한 현지 진출 한국기업 영원무역 생산기지를 정부 관계자와 둘러보고 있다. 이낙연 총리(정면 가운데) 오른편 뒤로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과 기업인 출신으로 방글라데시 국토부 장관에 오른 세이푸자만 쵸두리가 얘기하고 있다. /사진 = 박준식 기자
성 회장은 이와 관련해 "(한국기업 특화 수출단지는 물론) 치타공을 섬유 패션 분야에 특화된 도시로 만들고 싶다"며 "초중고 사립학교도 만들어 자녀 교육문제를 해결해 더 우수한 직원들을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KEPZ와 학교설립 등은) 돈벌이를 위한 사업이 아니다"며 "패션 섬유 디자인 분야에 특화된 대학도 세우고 싶은데, 한국 교민들도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다면 사람들이 우리 공장에서 얼마나 일하고 싶어하겠냐"고 부푼 표정을 내보였다.
해외생산 노하우 갖춰 한국전 참전국 에티오피아까지 진출
영원무역의 현지화는 치타공을 제외한 수도 다카 공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성 회장은 "다카 공장에 한국인 직원이 딱 한 명 있다"며 "중요한 투자결정은 본사에서 하지만 현지 직원 수준이 높아 외국 거래선들이 방글라데시에 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현지 직원들이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해외생산기지 노하우를 갖춘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를 거점으로 엘살바도르(2001년)와 베트남(2004년), 우즈베키스탄(2014년), 에티오피아(2016년) 등에도 진출했다. 성 회장은 "에티오피아에는 3500평 규모 공장을 한 유니트만 마련해 절반 정도 가동률로 돌리고 있다"며 "에티오피아 대통령이 방한해 공장 설립을 요청했고 지금은 직원들 근태 등 수준을 올리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성기학 회장은 "에티오피아는 6·25 참전국으로 생명을 걸고 한국을 도왔던 나라"라며 "대통령 요청이 있기 전부터 늘 거기서 뭔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자연 친화적인 대규모 생산 환경을 조성하고 공급사슬 전략을 활용해 원가를 관리해 이익을 내는 게 그가 추구하는 경영전략이다.
성 회장은 의류OEM 업체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가 어렵다는 편견을 불식시켰다. 고어텍스나 테플론 같은 신소재 특수섬유제품을 개발하고 기술적인 부분에 투자한다면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스포츠브랜드는 물론 영원무역이 성공시킨 노스페이스와 같은 사례가 얼마든지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지난해 영원무역 제조OEM 사업부문 매출액은 2조3420억원, 영업이익은 1613억원으로 브랜드 유통(매출액 8887억원)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국내에서 노스페이스로 유명한 영원무역은 한때 비싼 겨울점퍼로 학생들에게 유명해 부모들의 재정을 어렵게 하는 이른바 '등골 브레이커'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600만 장 가량 주로 어린이 동절복을 기부(시장가 약 1000억원)한 사회적 기업 면모도 갖췄다. 성 회장은 "OEM 사업도 브랜드 보다 더 잘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