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국산화' 급물살…업계 "예산 나눠먹기시 필패"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19.07.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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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성공 전제조건은…장기적·집중지원, 중소업체 상생방안 뒤따라야

'반도체 소재 국산화' 급물살…업계 "예산 나눠먹기시 필패"


일본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계기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 국산화 논의가 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의욕만 앞선 정책을 경계하면서, 실제 기술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연구개발(R&D) 지원과 중소기업 상생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관련 국산화 기술개발을 위해 연구개발(R&D)·시설투자 등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세제·금융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추가경정예산에 소재·부품 예산 포함을 논의 중이다.



전자업계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환영하면서도 장밋빛 전망은 경계하는 분위기다. 장비 및 소재·부품산업 육성은 20년 이상 제기돼온 과제지만 그간 실패해온 원인을 냉정히 분석해야 한단 것이다.

정부는 2010년 5년 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을 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시스템반도체 및 장비산업 육성전략'을 발표하는 등 그간 다수의 국산화 정책을 발표했으나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들은 예산 투입 규모보다 집행 방식이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나눠먹기식' 예산 편성으로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단 것이다. 과거 정부의 소재·부품 국산화 R&D 예산은 산자부와 과기부에서 국가 연구과제, 산학협력 등의 방식으로 편성했는데 형평성 문제로 예산이 쪼개져 집중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일본이 우위에 있는 핵심 원천기술의 경우 10년 이상 연구가 필요한 경우가 많고, 인력과 예산을 집중해야만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정부가 될 만한 프로젝트를 선별해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78,400원 ▲2,900 +3.84%)SK하이닉스 (179,900원 ▲8,900 +5.20%)는 자체적으로 협력사와의 공동기술 개발과 이를 위한 팹 개방 등 국산화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국산화 구매연계금액, 패턴웨이퍼 지원, 펀드 등 협력사 지원금액 등을 합한 동반성장 지원 총액이 2017년 1년에만 1593억원 규모다.


그러나 각 업체가 비밀리에 개별적인 연구인력을 꾸려 대응하는 수준이라 국가 차원의 기술개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차원에서 투입할 수 있는 수백억원 단위 예산으로 가능한 기술개발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집중 지원과제를 선정하고 수천억원 단위의 예산을 투입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소재·부품업체가 개발한 기술을 대기업과 함께 점검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갖춘 '종합연구소'를 정부가 설립해 지원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밖에 소재·부품 업체가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 마련도 필수적이다. 산자부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업체(10인 이상 고용) 수는 2908개, 반도체 부품·소재 업체 수는 2만5288개에 이른다.

이중 연간 매출액이 1조원에 가까운 업체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3000억원 이하의 매출에 불과하다. 이들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양대 반도체 대기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현실적으로 해외 업체와의 거래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소재·부품 산업 육성 차원에서 진행하는 '국가핵심기술 지정' 정책이 오히려 관련 기업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해외 업체와의 거래 내용을 정부에 일일이 신고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 업체가 규모를 키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도록 인수합병(M&A)을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규모의 경제 실현이 필수적"이라며 "삼성전자, 하이닉스와 소재·부품업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장기적인 청사진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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