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극일 컨센서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19.07.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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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文정부 핵심인사들의 공통분모…日 미래-과거 연계에 증폭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 2019.07.15.   pak7130@newsis.com【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 2019.07.15. [email protected]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와 관련해 '강대응'을 천명한 가운데, 상황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절대 밀릴 수 없다"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핵심 인사들이 일본을 일종의 '극복 대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현재 한일 간 문제의 시발점이 된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시작점부터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은 법무법인 '부산'의 변호사 시절인 2000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원고 측 대리인으로 활약했다. 소송에 관련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연락사무소가 부산에 있었고, 문 대통령 본인부터 역사 문제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내는 와중에 이 사건에서 멀어졌다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다시 관련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임기 첫 해 광복절 당시 문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다"고 천명했다.

2017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일본 기자가 "강제징용 문제는 해결된 문제"라고 주장하자 직접 마이크를 잡고 "양국 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징용자, 강제 징용당한 개인이 미쓰비시 등 상대 회사에 가지는 민사 권리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한국 헌재나 대법원 판례"라고 맞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도 "우리 대법원은 피해자와 회사(미쓰비시 등) 사이의 개인적 청구권까지는 해결이 안 됐다고 판결했다"고 강조했다. 양국 사이에 여전히 극복해야 하는 과거사 문제가 남아있고, 이를 위해 일본이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기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 문제의 1인자로 꼽히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한국의 일본 산업 종속을 우려했던 인물이다. 참여정부의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활약했던 그는 2004년 한일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포기했을 장본인이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한일 FTA가 제2의 한일합방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우려 지점은 증폭되고 있는 대일 무역적자, 부품 소재 산업의 일본 의존도 확대 등이었다. 한일 FTA가 발효된다면, 이같은 추세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그리고 2019년 일본은 김 차장이 우려했던 지점으로 정확하게 경제보복 조치를 가했다.


일본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성향은 일종의 컨센서스로 청와대 내부에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남북 화해 국면에서도 이같은 경향들이 포착됐었다. 당시 청와대 안팎과 여권에서는 "남북 간 평화만 제대로 정착된다면 일본을 충분히 앞지를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들이 연거푸 나왔었다.

일본의 강대응에는 강대응으로 맞서기도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자 "일본이 강경 대응을 계속 한다면, 우리 정부도 상응하는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일본의 보복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에 연달아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사실상의 '탈 일본'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특정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며 부품 소재의 국산화에 드라이브를 걸 것임을 분명히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부품·소재 산업 독립선언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고, 김 차장은 최근 일본 문제 협의를 위해 미국을 다녀온 후 자신의 트위터에 "이번 일로 우리나라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글을 남겼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힘을 줘 왔다. 과거 문제와 미래 문제는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경제 보복으로 과거와 미래 문제를 연계하자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해졌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핵심 인사들의 '극일(克日)' 성향에 일본이 기름을 부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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