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외방송 송출 20년째를 맞은 아리랑TV에서 메인 뉴스를 담당하는 미국 출신 데빈 화이팅(왼쪽)과 마크 브룸 앵커. /사진=아리랑TV 이정인
입 무겁고 유머도 가급적 배제한 재미없는(?) 두 사람에겐 의외의 반전 매력이 물씬 풍겼다. ‘언어’로는 그렇게 안 드러내려고 애쓰는데, ‘몸’은 이미 체화된 느낌이랄까. 바로 ‘한국 사랑’이다.
이들의 한국사랑은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서부터 진가를 드러낸다. “김치볶음밥과 삼겹살은 너무 좋아하는데, 닭발이나 청국장은 아직…”하며 손사래를 치던 마크와 달리, 데빈은 “한식하면 역시 찌개류지”하고 상대방의 기를 죽였다.
마크 브룸 앵커. /사진=아리랑TV 이정인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외국인 앵커의 장점은 객관적이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뉴스를 전달한다는 거예요. 특히 이번 정상 만남에서 온라인 댓글이 CNN이나 BBC보다 더 많고 뜨거웠던 이유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깊이 있는 정보를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되도록 자극적인 뉴스로 포장하지 않고 ‘긍정적 해석, 비판적 해석’ 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하죠.”(마크 브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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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은 주로 표면적인 걸 많이 다루잖아요. 정말 작은 것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건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CNN보다 더 촘촘한 뉴스를 전달한다고 할까요? 하하.”(데빈 화이팅)
올해 8년째 뉴스를 진행하는 마크의 한국 정착기는 ‘우연’이었다. 2004년 휴가차 여행 올 때만 하더라도 한국은 그에게 덥고 습기 찬 나라로 기억될 뿐이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뉴질랜드에서 만난 캐나다 커플에게 “한국이 너무 좋다”는 말을 듣고 2년 뒤 다시 찾았을 때 그는 홍익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으로 남아있었다.
“대학 졸업 후 영국의 한 은행에서 오전 6시부터 밤 9시까지 근무하다 ‘이보다 더 나은 인생이 있지 않을까’ 싶어 무작정 세계 여행에 나섰어요. 그때 한국을 방문하며 정이 들었죠. 영국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소속감도 잘 느껴지지 않는데, 한국은 친절하고 공동체적 문화가 배어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이웃 간 유대감이 특히 좋았죠. 아, 가장 좋았던 건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이미지였어요.”
데빈 화이팅 앵커. /사진=아리랑TV 이정인
데빈의 경우는 ‘필연’이었다. 그는 “운명이 이끌리듯 한국에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여서 어릴 때부터 한국을 알고 있었어요. 게다가 제가 다니던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땐 주변에 한국 학생들이 많았죠. 2007년 대학 졸업 1년을 남겨두고 결국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으니, 이 정도면 운명이겠죠?”
그가 본 한국은 미국과 정반대였다. 무엇보다 삶을 사는 속도가 엄청 빨랐다. “모든 사람이 바쁘고. 변화도 빨리 일어났어요. 어제 있던 빌딩이 오늘 없어지고….”
그런 변화를 그는 불편해 하지 않고 흥미롭게 지켜봤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면 자신의 인생도 달라질 거라는 기대, 속도는 빠르지만 상냥한 사람들과 안전한 사회에 대한 신뢰가 그의 정착을 부추겼다.
“한국에 오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래서 처음 아리랑TV에 1년 있다가 중국 신화통신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는데, 이곳이 고향 같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더라고요. 먼저 정착한 곳이 제 자신의 한 부분이 된다는 점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이제 4년 됐는데, 앞으로 40년 더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뉴스 전 다양한 기사를 훑어보는 아리랑TV 데빈 화이팅(왼쪽)과 마크 브룸. /사진=아리랑TV 이정인
아리랑TV가 CNN보다 더 영향력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 매체로 이름을 날린다면 두 사람의 이름과 역할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