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서 나눠주는 전단지…"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9.07.1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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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박기자]전단지 배포에 불편함 느끼는 시민들…"자정 노력 필요"

지난 11일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입구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모습./사진=박가영 기자지난 11일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입구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모습./사진=박가영 기자


거리서 나눠주는 전단지…"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거리 위 '전단지 전쟁'이 한창이다. 거리 곳곳에선 전단지를 건네는 이들과 행인들의 눈치싸움이 펼쳐진다. 전단지를 순순히 건네 받는 이들도 이 상황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고 입을 모은다. 누군가에겐 생계 수단인 전단지가 받는 이들에겐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 전단지가 공해(公害)로 인식되며 상인들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받거나 거절하거나…전단지에 대처하는 행인들의 자세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 11일 12시쯤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식당가 앞에서 중년 여성 3명이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들의 주 타깃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인 이들. 휴대전화를 보거나 대화 중인 행인들에게 성큼 다가가 전단지를 손에 쥐여준다. 신호가 바뀌면 건너오는 이들에게도 잽싸게 전단지를 돌린다.

손에 대여섯 장의 전단지를 들고 있던 직장인 김모씨(28)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오늘은 좀 적은 편"이라며 "거절하는 것도 일이라 주는 대로 받는다. 점심 먹고 사무실 돌아오면 전단지, 물티슈, 부채, 심지어는 머리빗까지 홍보물로 손이 가득찬 날도 있다"고 말했다.



전단지 배포에 대처하는 행인들의 자세는 2가지다. 받거나, 거절하거나. 두 경우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직장인 이동빈씨(30)는 "전단지 돌리는 것 자체가 환경 공해처럼 느껴진다"며 "예전엔 그냥 받아서 버렸는데 언젠가 한 번 '대신 버려주는 것과 다름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후로는 안 받고 있다"고 전했다.

직장인 김희원씨(27)도 "길 막고 배포하거나 '언니' '아가씨'라고 부르며 막무가내로 전단지를 주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안 받는다. 어쩌다 한 번 받으면 주변에 있던 다른 전단지까지 다 받아야 해 최대한 피한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홍대 거리 곳곳에 놓인 전단지 쓰레기들./사진=박가영 기자홍대 거리 곳곳에 놓인 전단지 쓰레기들./사진=박가영 기자
거부감 없이 전단지를 받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거절하는 사람보다 전단지를 받아 가는 행인의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오후 3시쯤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60대 여성 A씨를 관찰한 결과, 10명 중 7명은 A씨가 주는 전단지를 묵묵히 챙겼다.

대학생 고은빛씨(22)는 "전단지 배포하시는 분들이 주어진 양을 다 돌려야 퇴근하실 수 있다고 들었다"면서 "종이 몇 장 받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니 손 비어 있으면 받는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혜진씨(23)는 "쓰레기 걱정이 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주면 퇴근 빨리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받긴 한다"고 전했다.

광화문 인근에서 전단지를 배포하는 70대 여성 B씨는 "오전 11시에 나와서 2~3시간 동안 400장을 돌린다. 빨리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길을 막는 때가 많아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가끔 여성분들이 와서 전단지를 달라며 받아가기도 한다. 요즘같이 더울 땐 '전단지 달라'는 한 마디가 정말 고맙다"라고 했다.

그러나 거절 않고 받는 이들에게도 전단지는 '스트레스'다. 직장인 김상원씨(34)는 "종교, 정치 관련 전단지 빼고 다 받는데, 받는 즉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대체 요즘 누가 전단지 보고 음식점을 찾나 의문이 든다. 결국 쓰레기만 양산하는 꼴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지자체, 전단지 배포 단속 나섰지만…"상인들 자정 노력 필요"

전단지는 환경미화원에게도 골칫거리다. 특히 홍대, 강남 등 번화가에선 밤사이 수많은 전단지가 거리로 쏟아진다. 대부분 유흥업소 전단지다.

홍대 거리에서 만난 한 환경미화원은 "전날 뿌려진 전단지를 치우는 게 새벽 시간 주 업무다. 주말에는 100L 쓰레기봉투가 유흥업소 전단지로 가득할 때도 있다. 전단지 치우는 것도 진짜 보통 일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홍대 거리 청소 중인 환경미화원의 모습,/사진=박가영 기자홍대 거리 청소 중인 환경미화원의 모습,/사진=박가영 기자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상인들은 전단지 공해를 인식하고 있지만 영업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신촌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김모씨(42)는 "전단지 홍보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주변 식당에서 다들 하니까 안 하면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라며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인건비 부담도 크지 않아 계속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단지 문제가 하루이틀일이 아니다보니 각 지자체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유흥업소가 모여 있는 부산 일부 지역에서는 인근 거주자를 대상으로 '수거 보상제'를 운영 중이다. 수거 보상제는 유흥업소 등의 불법 전단지를 수거해 구청 등에 가져다 주면 일정 액수의 보상금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제도다. 최근 동대문구도 '전단지 등 불법광고물 수거 보상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배달업체간 치열한 전단지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강공원 내에서도 지난 4월부터 전단지 무단배포가 금지됐다. 서울시는 지정게시판을 설치하고 게시판에만 전단지를 부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단지가 배포되고 있는 실정낮다.

이에 전단지 배포를 금지하는 조처보다 상인들의 자정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직장인 박모씨(29)는 "전단지 문제 책임은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들이 아닌 이들을 고용하는 상인들에게 있다고 본다"며 "무분별한 전단지 홍보로 더 이상 불쾌감을 느끼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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