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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귀국 늦춘 이유…"삼성 목덜미 노리는 칼날은 불화수소"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9.07.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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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전략물자 유출 논란으로 명분쌓기 돌입…삼성 D램·낸드 주력 생산 차질 초읽기





일본 정부가 1995년 사린가스 테러의 트라우마를 자극, 한국 내 전략물자 유출 논란을 키우는 것과 일본에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대응방안을 찾느라 분주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귀국을 늦춘 데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불화수소와 관련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한 이 소재는 부식성 등의 이유로 오래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필요할 때마다 주문, 공급받아 왔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11일 "삼성전자에게 지금 제일 급한 것은 불화수소"라며 "반도체 공정상 불화수소가 없으면 D램도, 낸드플래시도, EUV(극자외선) 파운드리(위탁생산)도 모두 안 돌아가기 때문에 '목에 칼이 들어왔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화수소는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가리지 않고 반도체 공정 전반에 폭넓게 쓰이는 필수소재다. 금이나 백금을 제외한 금속 대부분을 녹일 정도로 부식성이 강하기 때문에 반도체 기판을 회로 설계대로 깎아내는 데 쓴다. 반도체 회로 크기가 머리카락 굵기(약 0.1㎜)의 7만분의 1 수준까지 파고들면서 불화수소의 순도가 기판을 얼마나 정밀하게 깎아낼 수 있느냐의 척도가 됐다.

고순도 불화수소만 있다고 해서 기판을 정확하게 깎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화수소의 순도는 이 작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기본이 되는 셈이다.

삼성전자 (46,400원 900 -1.9%)SK하이닉스 (77,600원 1200 -1.5%)처럼 글로벌 최고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가 그동안 전적으로 의존했던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의 순도는 99.9999999999% 수준이다. 이 분야 최고 기술력을 다투는 일본 스텔라케미파는 이를 '9가 12개'라는 의미로 '12N'(12nine)으로 표기한다. 불순물 함량이 '0'에 가깝다는 얘기다. 일본은 전세계 고순도 불화수소의 70%를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솔브레인 등 국내 소재업체들이 원재료를 수입해 만드는 저순도 불화수소의 순도는 97% 안팎에 그친다. 반도체 기판을 정밀하게 깎아내는 식각 공정보다는 기판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세정 공정에 투입된다.

국내 소재업체를 포함해 중국, 대만 등에서도 고순도 불화수소를 정제, 생산하지만 일본산에 비하면 기술력에서 순도가 떨어진다. 이를 식각 공정에 사용할 경우 완제품의 생산수율(합격품 비율)이나 품질 저하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 반도체업체 인사는 "일본산 고순도 불화수소 수입이 문제가 되면 다른 업체에서 만든 소재를 쓰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이건 사실상 수익성을 포기하라는 말이나 같다"며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가진 국제적인 경쟁력도 내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나마 국내에서 생산하는 고순도 불화수소는 양이 많지 않다는 것도 현실적인 문제다. 대부분 순도가 높은 일본산을 쓰다보니 국내 소재업체들이 그동안 생산시설을 증설할 이유가 없었다. 이 시설을 새로 지으려면 1년이 걸린다.

이 부회장이 일본에서 현지 기업인 등을 상대로 중점적으로 논의한 것도 고순도 불화수소 확보 방안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불소 함유량이 전체 중량의 30% 이상인 불화수소 △불소 함유량이 전체 중량의 10% 이상인 플루오린폴리이미드 △1나노(㎚, 1㎚는 10억분의 1m) 초과 193나노 미만 파장의 노광장비(반도체 기판에 회로를 그리는 장비)에 쓰이는 포토레지스트(감광제) 등을 지난 4일부터 수출규제 중이다.

일각에서 메모리반도체용 포토레지스트는 여전히 수입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이 차질을 빚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하지만 업계에선 "속 모르는 얘기"라는 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용 레지스트는 애초부터 규제품목이 아니라서 업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며 "문제는 반도체 공정상 수백종의 화학소재 중 하나만 부족해도 메모리는 물론 파운드리까지 모든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기 때문에 규제품목에 해당하는 고순도 불화수소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전날부터 한국에 '불화수소를 포함한 전략물자 밀수출과 불법유통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것도 고순도 불화수소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반도체 업계와 통상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이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규제에 대한 명분 쌓기에 돌입했다는 얘기다.


시장 관계자는 "양국의 갈등이 강제징용 배상을 둘러싼 정치문제에서 전략물자 유출 논란 등 안보 논쟁으로 확전하면서 기업인들이 개입할 여지가 더 줄었다"며 "이 부회장의 귀국이 늦어지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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