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Eat]안 먹는데… 日 31년 만의 '고래사냥' 왜?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7.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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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인싸'되는 '먹는(Eat)' 이야기]
400년 넘는 고래고기 문화, 인기는 싸늘
국제사회 관심 줄자 아베 '정치적 승부수'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지난 1일 일본이 31년 만에 상업 고래잡이(포경)을 재개했습니다. 이날 홋카이도 남동부의 구시로시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선 포경선의 출항식이 열렸습니다. 이중 구시로항에만 일본 수산청 장관을 비롯한 내빈 100여명이 참석했고, 미국의 CNN과 프랑스 AFP통신 등 외신 기자들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카이 요시후미 일본소형포경협회 회장은 "드디어 31년 만에 상업포경 재개된다"면서 "가슴이 떨릴 정도로 기쁘고 감개무량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구시로항에선 포경선 5척이 한조를 이뤄 출항해 첫날부터 밍크고래 두마리를 잡아 돌아왔습니다. 의외의 수확을 거두자 선원들은 종이컵으로 고래에 일본 전통주를 붓는 의식을 치르는 등 1988년 이후 첫 상업 포경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국제사회와 고래잡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어오다가 지난해 말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공식 탈퇴를 선언했고, 지난달 30일부터 탈퇴가 발효됐습니다. 일본 수산청은 이날 "상업포경은 일본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한정해 재개된다"면서 "올해 말까지 포획량을 227마리로 확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은 연구 목적이라며 남극해와 서북 태평양 등지에서 지난해 637마리의 고래를 사냥하는 등 연간 1000마리 안팎의 고래를 사냥했는데, 이보다 훨씬 적은 규모와 한정된 지역에서 고래잡이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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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고래사냥에 목을 매는 이유 중 하나는 고유의 식문화라는 전통과 자부심 때문입니다.



고래잡이 거점인 시모노세키는 포경 역사만 120여년이 넘습니다. 일부 어촌의 포경 역사는 400여년에 달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 고래고기가 대중적으로 떠오른건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난에 처하면서 입니다. 당시 학교 급식 메뉴에도 고래고기가 나올 만큼 흔했고, 고래고기는 주요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노년층에겐 추억의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요미우리신문은 1962년엔 고래고기 연간 소비량만 약 23만톤으로 절정에 달했지만, 이후 다른 고기로 급격히 대체됐고 IWC에 의해 상업포경이 중단되기 직전인 1986년 고래고기 수요는 6000톤까지 떨어졌다고 전했습니다. 일본 수산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론 일본의 고래고기 소비량이 약 3000톤으로 전체 육류 소비량의 0.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CNN은 이같은 규모는 성인 1명이 연간 2티스푼 정도의 고래고기를 먹는 셈이라고 비교했습니다. 이미 일본인들 사이에선 고래고기의 존재감이 미미한 수준인 것입니다. 이미 지난 4월 기준으로도 일본 내 고래고기 재고는 3500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본이 상업포경을 재개했지만 과연 누가 고래고기를 먹을지 의문"이라고 했고, 포경 재개 후에도 자민당 내 포경 연맹 의원들은 고래고기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자위대에 먹이면 좋다"라든지 "급식으로 부활시키면 된다" 등을 주장을 펼칠 정도로 수요처 찾기에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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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일본이 상업포경을 재개한 같은날 영국에서는 환경운동가들이 일본 대사관 앞에서 상업 포경 반대 시위를 펼쳤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이 이번에 기존의 연구목적 포획보다도 훨씬 적은 연간 227마리로 포획량을 제한하고, 조업 지역도 대폭 줄인 것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반대를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는 연간 포획량 발표마저 지난달 28~29일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로 잡아 조용히 발표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올들어 호주 총리 등 각국 정상들을 만나 상업포경에 대한 로비전을 펼쳐왔습니다. 태평양 등에서 조업을 안할 테니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상업포경 재개를 강행하는 데에는 정치적 목적도 숨어있다는 분석입니다.

2021년 9월이면 아베 총리의 임기가 끝납니다. 아베 총리는 당장 오는 21일 열리는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내부적으론 그동안 끊이지 않았던 각종 개인 스캔들에 더해, 최근에는 노후자금으로 연금 외에도 약 2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금융보고서로 여론의 반발을 사면서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빈약한 외교력 논란이 문제입니다. 그동안 보수층 표심 모으기에 효과적이었던 북한 문제는 북미정상회담이 지난해부터 열리면서 무용지물이 됐고, G20 의장국인 일본은 정작 이번 행사에서도 미중 무역협상 결과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인 시모노세키의 거점 사업인 고래잡이를 허용하는 정치적인 승부수를 띄운 것입니다. 미국의 시사잡지 뉴스테이츠맨는 "아베 총리가 2021년 재선(총리 4연임)을 위해 자신의 지역구인 시모노세키에 상업포경이라는 선물을 안겼다"고 분석했습니다.

또, 여기에 상업포경 강행이 최근 국제 외교무대에서 일본의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정면 반박하기엔 절호의 찬스였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전세계에서 예전만큼 고래잡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2013~2014년에 걸쳐 환경단체와 한바탕 고래잡이를 놓고 충돌을 벌였고, 환경단체들의 관심은 이후 뜸해졌습니다. 여기에 미국은 상업포경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도 예전보단 덜하다는 것입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선 IWC 같이 커다란 규모의 국제 단체를 탈퇴하면서 자신의 리더십을 지지층에게 과시하는 한편, 그에 따른 역풍도 최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적 카드였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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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구시로시 도매시장에서 첫 고래고기 경매가 열렸습니다. 어부들은 31년 만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띈 고래고기 가격이 특별하기를 바랐지만, 일부 비싸게 팔린 좋은 부위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가격은 예년 연구용 고래와 비슷한 수준에 결정됐습니다. 시장 관계자는 "가격이 너무 높으면 수요가 없을까 우려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일본 정부도 고래고기 인기가 없는 걸 아는지, 한국 등지에 고래고기를 수출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합니다. 한일 관계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연일 악화하는 가운데, 고래가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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