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겐 "예예"하더니… 간호사에겐 "야야"?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19.07.0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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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박기자]아가씨·언니·어이…호칭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간호사들

편집자주 출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잠들기 전 눌러본 SNS에서…. 당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상 속 불편한 이야기들, 프로불편러 박기자가 매주 일요일 전해드립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기요", "언니"…. L씨(29)의 직업은 '간호사'. 그러나 그를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개다. 5년간 간호사로 일하면서 갖가지 호칭을 들었지만 가장 불쾌한 호칭은 '아가씨'. L씨는 "한번은 '아가씨'란 말이 너무 기분 나빠 환자에게 '아가씨라 부르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그 환자가 비웃으면서 '그럼 아줌마냐'고 되물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에겐 "예예"하더니… 간호사에겐 "야야"?

간호사들이 '호칭'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 의료인임에도 의사와 달리 환자들로부터 '언니', '아가씨', 심지어는 '야' 소리를 듣는 게 일반적이다. 간호사를 서비스직으로 여겨 무리한 요구를 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간호사들은 '간호사'란 직업에 대한 인식 개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약 30년 전까지 간호사는 '간호원'으로 불렸다. 더 이전엔 '간호부'로 불리기도 했다. 1987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의사(醫師)'와 같이 끝에 '스승 사(師)'가 붙어 '간호사'가 됐다. 처우 개선과 호칭 변경을 원하던 '간호원'들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였다.



간호사는 의료법에서 정한 전문 교육을 받고 국가고시에 응시해 면허를 취득한 전문 직업인. '스승 사'자를 써 호칭을 변경한 것은 의사와 같이 전문직으로 인식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호칭이 변경되고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됐지만, 간호사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호칭으로 불리지 못한다. 5년 차 간호사 P씨(29)는 "간호사도 의사처럼 전문직인데 대중의 인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간호사가 전문직 수준의 학벌과 학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인 것 같다. 간호사 호칭 문제도 이 같은 인식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L씨(27)는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면서 "진료실에선 의사 말에 '예'라고 하던 할아버지가 간호사 선생님을 '야'라고 불러서 당황했다"고 전했다.

대형병원 간호사 K씨(30)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봤더니 환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아니, 선생님은 아니지.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나?'라고 말해 황당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아가씨'는 간호사들이 가장 꺼리는 호칭 중 하나다. 간호사 L씨(28)는 "'언니', '저기요'까진 이해한다. '아가씨'란 호칭은 정말 듣고 싶지 않다. 아가씨라고 할 때마다 아가씨 아니라고 해도 '옛날 사람이라 그렇다. 이해하라'고 한다. 이걸 내가 왜 이해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 내과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J씨(31)는 "얼마 전 환자 한 분이 내게 '아가씨, 의사 선생님이 다음에 검사 결과 보러 오는 날 예약하라는데?'라고 말했다. 의사는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대하는데 간호사인 나에겐 '아가씨'라며 반말한 거다. 자주 겪는 일이지만 그날은 유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간호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비단 호칭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환자들이 간호사를 서비스직으로 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간호사 H씨(30)는 "ATM 가서 돈 뽑아달라고 하고, 콜벨 여러 번 눌러서 가보면 리모컨 떨어졌다고 주워달라는 요구도 받았다. 의료인이 아닌 심부름꾼이 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이란 호칭을 두고 누리꾼 사이에서 이따금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선 "간호사를 '선생님'이라고 하는 거 웃기다. 간호사님 정도로 호칭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글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를 본 누리꾼 A씨는 "맞다. 진짜 선생님도 아닌데 선생님 호칭은 어색하다"고 동조하며 "어떻게 불러야 할 지 사실 잘 모르겠다. 간호사에게 호칭을 쓰는 대신 '저기 죄송한데요'라면서 말을 붙인다"고 전했다.

누리꾼 B씨는 "간호사가 왜 선생님이냐고 고집부리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서 의사는 꼭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단순히 스승의 의미가 아닌 존중의 의미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간호사 P씨(28)는 "간호사도 전문직이고 의료인인데 너무 저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며 "'선생님'이란 호칭이 듣고 싶은 게 아니다. '간호사님' 정도도 괜찮다. 제대로 된 호칭으로 간호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표현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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