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보다 50년 늦었는데"…갈길 먼 소재·장비 국산화

머니투데이 최석환 기자, 심재현 기자 2019.07.0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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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장비 국산화율 50%·20% 수준…과감한 투자-정·학·산, 긴밀한 공조체제 필요해

"일본은 70년 전에 시작했다. 우린 50년이나 늦게 시작했는데 쉽게 따라잡을 수 있겠나."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2일 반도체 소재·장비의 국산화 비중이 낮은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일본 업체들이 그간 쌓아온 업력으로 발생한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히는 건 쉽지 않다는 얘기다.

"日보다 50년 늦었는데"…갈길 먼 소재·장비 국산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산업 국산화율(2017년 매출액 기준)은 소재의 경우 50%, 장비는 20% 내외로 추정된다. 평균 35% 수준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정도의 국산화율을 이뤄냈다는 게 대단한 것"이라며 "산업 특성상 오랜 기간동안 과감하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그렇게 못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등 해외 업체들은 소재·장비 업체가 대부분 대기업인 반면 우리는 중소기업이거나 영세한 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이 노린 것도 이런 약점이다.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된 에칭가스, 포토리지스트는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쓰이는 핵심 재료로 일본의 의존도가 절대적인 소재다.



에칭가스는 독성이 강한데다 부식성이 있는 기체인 고순도 불화수소로 반도체 제조공정 가운데 회로의 패턴대로 깎아내는 식각(Etching)과 세정(Cleaning) 작업에 사용된다. 포토리지스트는 빛에 노출되면 화학적 성질이 변하는 물질로 반도체 제조과정 중 웨이퍼 위에 회로를 인쇄하는 노광(Photo) 공정에 쓰는 감광재다.

두 제품 모두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70~90% 달한다. 그러다 보니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 SK하이닉스 (177,800원 ▲7,200 +4.22%)도 사용 물량의 90%를 일본 업체들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에칭가스는 솔브레인 (50,600원 ▼200 -0.39%), 이엔에프테크놀로지 포토리지스트는 금호석유화학, 동진세미켐, 동우화인켐 등이 국내 업체들이 생산하고 있지만 품질 면에서 일본산과 차이가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최첨단 공정에 맞춰 일본산 소재를 써왔는데 수출 규제로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공급선을 다변화한다고 하지만 당장 전세계에서 일본제품 만큼의 품질을 맞출 수 없어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지연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소재·장비는 하루 아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기술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시장규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면 역전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최대 70% 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설비투자 역시 세계 최대 규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비전 2030' 전략아래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이 같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반도체 생산업체와 국내 소재·장비 업체간 협력을 강화할 경우 일본에 역전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반도체산업협회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손잡고 소재 및 장비 성능 검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우애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고 후방산업의 연쇄효과를 개선하기 위해 반도체 소재·장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정부·학계·산업계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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