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日수출규제는 자충수, 단기해결 가능성 높아"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19.07.0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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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타격 불가피 치명적이지 않을 것…반도체 디스플레이 재고소진 기회로 활용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와 관련해 증권가에서는 "국내 기업의 타격은 불가피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일본이 꺼내 든 카드가 강력하긴 하지만 대체재가 없지 않고, 시장에 반도체 재고도 넘치는 상황이라 영향력이 희석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일본이 이번 규제를 '으름장' 차원에서 들고 나왔을 뿐, 실제 시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日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실제 영향은



일본 정부가 규제 대상에 포함한 품목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가지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불소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과 강도 등의 특성을 강화한 폴리이미드(PI) 필름인데 플렉서블 OLED용 패널 핵심소재다. 국내 공급사가 없어 일본 스미토모에서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소재인데 일본에서는 스미토모, 신예츠, JSR, FFEM, TOK 등이 국내 업체들에 공급 중이다.

국내에서도 금호석유화학과 동진세미켐, 동우화인켐 등이 이를 생산하고 있어 대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핵심 레이어에서는 주로 일본 제품이 주로 적용되고 있다.

불화수소는 반응성이 매우 커 금속 뿐 아니라 유리나 실리콘도 녹일 수 있다. 반도체 식각 및 세정, 디스플레이 슬리밍에 쓰이는데 국내에선 솔브레인, 이엔에프테크놀로지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도 불화수소와 관련한 원재료는 일본의 스텔라나 모리타 등과의 조인트벤처를 통해 원재료를 수입한 후 합성 정제해 공급하는 구조라 실질적으로는 일본 업체들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포토레지스트와 불산은 국내 업체들이 일부 생산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퀄리티 등에서 분명 차이가 있고 일본의 원재료를 쓴다는 점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일본의 소재가 아니어도 생산은 가능하지만 적잖은 차질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대체재를 찾아도 문제다. 생산라인에서는 공정에 투입되는 물질이 조금만 바뀌어도 생산수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으름장 vs 장기전…증권가는 단기해결에 무게

증권가는 그러나 일본이 이번 조치를 실제 시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설령 행동에 들어가더라도 단기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이 타격을 받는 만큼 일본도 손실을 입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김양재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조치는 일본의 자충수로 판단된다"며 "오히려 국내 업체 제조사 및 소재 업체가 중장기 수혜를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이 단기 생산 차질을 입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그런데 현재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모두 공급이 과잉된 상태라 생산차질이 큰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오히려 국내 제조사가 과잉 재고를 소진하고 생산 차질을 빌미로 가격 협상력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또 2~3개월 수준의 원자재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의 반사 이익도 애매하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 (73,500원 0.00%), SK하이닉스 (189,200원 ▼6,500 -3.32%), LG디스플레이 (9,930원 ▼120 -1.19%) 등이 타격을 입으면, 이 물량을 일본 기업들이 가져가야 하는데 도시바, 샤프, JDI 등은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 상태라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

세계시장 메모리 반도체 생산설비(Capa)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53%, 일본은 21%에 불과하다. 디스플레이 역시 한국 25%, 일본 5%로 현격한 차이가 난다.

◇日, 국제분쟁 부담 이기기 어려워. 자충수 평가…

일본이 꺼내 든 카드는 정치적으로도 유리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한국발 부품 가격급등이 시작될 경우 일본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세트업체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라며 "특히 한국은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통한 의견수렴 과정도 전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유진투자증권의 이 연구원은 "한국 IT부품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 애플, HP, 델 등 미국 주요 업체들의 피해도 불가피해진다"며 "미국과 중국이 무역 갈등을 간신히 봉합한 상황에서 일본이 판을 깰 수 있다는 비난은 일본 정부에 막대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널리스트들은 오히려 이번 위기가 한국기업들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소재, 부품, 장비 국산화 필요성을 느낀 정부와 기업들이 연구개발(R&D) 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국산 대체기술과 소재개발이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은 반도체, OLED 및 전기차 분야에서 적용되는 핵심 소재 일부를 2020년부터 국산화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해외 의존도가 컸던 한국 IT 소재의 국산화를 가속화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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