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크루거 개인전 작품. /사진=김고금평 기자
미술을 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난해한 회화를 창조하기보다 명료하고 단순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융합’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창조 개념이 더 포괄적이고 집합적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조준은 시대를 읽는 새로운 창이 됐다.
그녀의 작품들은 얼핏 보면 낙서나 광고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시적 은유, 직설적 화법, 강렬한 경고 등이 섞인 텍스트는 흔들리는 시선을 확실히 고정하고, 여기에 곁들인 적확한 이미지는 어느 담배 경고 사진보다 강렬하다.
바바라 크루거 개인전 작품들. /사진=김고금평 기자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튼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는 자본주의 시대 우리의 현주소를 명확히 관찰해내는 시대어로, 여성의 몸에 대한 진정한 권리를 외치는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는 성을 둘러싼 남성 중심 사회에 전면적 반기를 든 사회어로 읽혔다.
'무제'(충분하면만족하라, 2019). /사진=김고금평 기자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크루거가 직접 작업한 한글 텍스트 설치 작품도 인상적이다. 로비 벽면에 적힌 ‘무제’(충분하면 만족하라, 2019)와 ‘무제’(제발웃어 제발울어, 2019)는 소비주의, 권력, 욕망에 대한 크루거식의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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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화제가 될 듯한 전시는 ‘무제’(영원히, 2017)라는 작품. 방 하나를 거대한 텍스트로 도배해 관람객이 텍스트 속을 거닐며 감상과 해석을 동시에 해야 하는 ‘능동적’ 태도가 요구된다.
'무제'(영원히, 2017). /사진=김고금평 기자
크루거의 이 같은 젠더 의식에 대해 김경란 큐레이터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구분법으로 전개되는 운동의 개념이 아닌, 남녀 문제를 인종이나 계층, 누린 자와 누리지 못한 자 사이에서 숨겨지고 잊힌 부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2월 29일까지.
'무제'(제발웃어제발울어, 2019). /사진=김고금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