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대국(大國)… 너희도 부럽지?"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7.01 06:01
글자크기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③] 사회주의·공산주의 경험한 중국인과 영국 식민지배 하 합리적·민주주의 사회시스템 길들여진 홍콩인 간 간극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빅토리아하버 전경 /사진=위키커먼스빅토리아하버 전경 /사진=위키커먼스


"중국은 대국(大國)… 너희도 부럽지?"
내게는 한 광저우 출신 중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와 대화할 때면 내가 알던 상식이 사실이 아닌가 의심해봐야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홍콩인들은 다 본토 중국인을 부러워하거든. 본토 중국인은 대국인이고 홍콩인은 소국인이니까, 대국의 일부가 되고 싶은거야. 그래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을 때 홍콩인들이 정말 기뻐했어." 그러면서 친구는 "대만 역시 마찬가지야. 대만인들도 중국의 일부가 되길 바랐고, 그래서 중국 당국이 더 노력중이야"라고 말했다.

정말 이상했다. 내 주변의 모든 홍콩인 친구들은 다른 나라 사람이 '중국인'이라고 부르면 인상을 찡그리며 "나는 홍콩인"이라고 정정하고, 중국의 SNS, 미디어 규제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에 강한 열망을 보이는 등 중국 본토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 차례 중국인 친구에게 "정말 그래? 홍콩인들 얘기는 다른 것 같은데"라고 물었는데, 그는 "내가 광저우 사람이잖아. 홍콩이랑 가까워서 홍콩엔 영화보러도 자주 놀러가서 잘 아는데 정말 그래"라며 잘라뗐다.



그의 단호한 확신에 잠시 현실이 정말 그러한가 생각해야했지만, 다시 홍콩인 친구들과 대화한 뒤엔 그의 확신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온 일종의 '세뇌'였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훗날 "(상대적 소국민인) 한국인 역시 중국인을 부러워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중국인의 '대국'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로 막강한지, 또 그들이 얼마나 대국적 논리에 기반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일견 알 수 있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 붉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44m 높이의 시계탑으로, 1915년 구룡과 광둥 지방을 연결하는 기차역의 일부로 건립됐다. 지금은 기차역은 사라지고 시계탑만 남았다. /사진=위키커먼스영국 식민지 시절 붉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44m 높이의 시계탑으로, 1915년 구룡과 광둥 지방을 연결하는 기차역의 일부로 건립됐다. 지금은 기차역은 사라지고 시계탑만 남았다. /사진=위키커먼스
이처럼 홍콩인과 중국인 사이에는 엄청난 생각의 간극이 있다. 먼저 홍콩인은 영국 지배 하(1841~1997년) 156년 동안 영국식 사회 시스템에 오래 길들여졌다. 영국은 행정제도, 사회기반시설, 공공서비스 등을 그대로 홍콩에 이식했고, 홍콩은 세계 최고의 무역항으로 거듭났다. 경제적으로도 본토에 비해 매우 풍족해졌으며 민주주의 의식도 발달했다. (☞'천안문 사태' 강력대응 中, 홍콩엔 한발짝 물러선 이유 [이재은의 그 나라, 홍콩 그리고 反중국혁명 ②] 참고)

이는 단순한 차원의 차이가 아니었다. 일상 곳곳에서도 차이가 드러났다. 영국 식민 경험을 통해 홍콩인들은 다른 민족들과 다양한 교류를 해왔다. 자연히 국제적 감각도 높아졌다. 홍콩인들의 눈에 중국인은 국제적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하게 비춰졌다.

홍콩 경제는 세계자본주의 발전의 지표가 됐을 정도로 선진국 수준에 이미 도달했지만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 소비수준이 다르니 사용하는 제품도 달랐다. 홍콩의 중산층은 벤츠, BMW, 볼보, 아우디, 혼다, 도요타 혹은 마세라티, 롤스로이스 등 외제차량 브랜드에 익숙했지만 중국인은 상하이나 베이징에 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것들에 익숙지 않았다.


앞서 홍콩의 중국 반환 전 '중국인 정체성'을 강조하던 홍콩인들이 이젠 중국인과의 차이점을 강조하며 '홍콩인 정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의 일부 민족주의·민주주의 인사들은 영국이 센트럴 등 영국인이 다수인 지역만 개발시키고, 홍콩인 밀집지는 등한시한다는 등 영국 정부의 상대적 차별에 대해 항거하며 당시 이들은 영국인이 아닌 '중국인 정체성'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중국 반환 후 홍콩의 민족주의·민주주의 인사들의 항거 대상도 달라졌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말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우리는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중국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기저에는 공산주의 사회 중국 회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중국 반환을 전후로 당시 홍콩 인구의 10%인 65만명에 달하는 홍콩인들이 캐나다, 미국 등으로 해외 이민을 떠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홍콩에 남아 사회운동을 일으켰다.
지난 6월16일 저녁 8시 홍콩시민들이 모여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지난 6월16일 저녁 8시 홍콩시민들이 모여 시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의 홍콩에서는 사회운동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1997~2016년 20년 동안 홍콩에서는 6만4677건의 집회가 벌어졌다. 홍콩인들은 '중국 통합'에 대한 두려움을 집단의 연대와 통합으로 대응했으며, 또 이를 통해 '홍콩인 정체성'을 키워나갔다.

이전까지 홍콩인들에겐 국가 정체성이 크게 자리잡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오랫동안 중국과 분리되어 있었고, 이주민들로 구성된 다문화·다지역성의 사회였기 때문에 민족이나 국가 개념이 정체성으로 자리 잡을 공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식민지배 하의 자유무역항과 국제화된 도시사회의 발전에 따라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정치정체성은 홍콩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권 반환과 함께 홍콩의 역동성과 다원성이 침식당하고, 중국의 민족 국가와 애국주의로 대체당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이 같은 국가 정체성은 오히려 커졌다. 홍콩인들에게 하나의 중국이라는 정체성은 기획된 '신화'처럼 느껴져 받아들일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이 같은 정체성의 갈등은 정치적 시위 뿐만 아니라, 일상 곳곳에서도 빚어졌다. 홍콩인은 홍콩인 정체성을 키워나가며 이를 침범하려는 중국과 중국인에게 날카롭게 대응했다. 2004년 홍콩 피크트램(Peak Tram)에서 중국인-홍콩인 갈등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피크트램은 빅토리아 산 정상에 올라 홍콩 시내와 바다를 굽어볼 수 있어 외국인과 중국 대륙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관광지다.
빅토리아산 정상에서의 전경 /사진=위키커먼스빅토리아산 정상에서의 전경 /사진=위키커먼스
2004년1월24일 춘절연휴 중 중국 광둥성에서 온 중국인 관광객 캉모씨(25) 가족, 친지 10여명이 하산하는 길에 싸움이 붙었다. 캉씨 일행 중 두명이 길게 늘어선 줄에 살짝 끼어들었다가 홍콩인 황모씨 가족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황씨가 "대륙인들은 매너가 없다"며 비난하자 캉씨가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맞받아쳤다.

순식간에 패싸움으로 변해 네명이 병원에 실려가고 여섯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중국 대륙에서는 웬만한 새치기를 눈감아 주지만 홍콩인에게 줄서기는 몸에 밴 질서다. 이처럼 양측의 줄서기 문화가 달라 빚어진 갈등이기도 하지만, 황씨가 한 말에 기반해 홍콩인이 중국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고 또 이게 어떤 갈등을 빚는지 알 수 있다.

홍콩 언론이 중국인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연장선상에 있다. 홍콩 언론은 중국 관광객들이 명품 가게에서 싹쓸이 쇼핑을 하거나 대로에서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하는 꼴불견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보도한다. 거리에서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다가 벌금을 내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해서도 빈번하게 전한다.

2014년 4월에는 홍콩 공중화장실의 줄이 너무 길어 중국 여행객 부모가 거리 한복판에서 아이에게 소변을 보게 한 사건이 화제되면서 홍콩에서는 "중국인 관광객을 막아야한다"는 여론이, 중국에서는 "중국인 차별이 막심하니 홍콩 관광을 가지말자"는 여론이 급증하기도 했다. 칼럼 등에서도 홍콩에 취직 등을 위해 몰려오는 중국인들을 가리켜 (홍콩) 생태계를 파괴하는 '메뚜기떼'라고 언급하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014년1월 20일(현지시간) 관광객들이 홍콩에 위치한 명품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AFP=뉴스12014년1월 20일(현지시간) 관광객들이 홍콩에 위치한 명품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AFP=뉴스1
베리 사우트먼·옌하이롱은 '홍콩 본토파와 메뚜기론: 신세기의 우익 포퓰리즘'에서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홍콩은 약소집단으로 전락했고 홍콩의 대홍콩주의도 약화됐지만 여전히 의식 속에서 홍콩의 우월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홍콩이 중국을 적대시하고 이분법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홍콩의 중국에 대한 우월감이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에 따르면 홍콩의 우월감은 서구화된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발전 경험과 글로벌 시대에 맞는 세계 시민이라는 인식, 그리고 반중이 곧 민주의 수호라고 인식되는 것처럼 비록 제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를 경험했다는 자부심에서 기인한다. 사우트먼·옌하이롱은 "홍콩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본토주의를 형성한 조건은 '식민 현대성'과 '냉전에서의 승리'라는 두 요인"이라면서 중국을 상대화해 홍콩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지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홍콩인들이 중국 대륙인을 향해 우월감을 느끼고 있고, 또 시위를 통해 반중정서와 홍콩의 독립 요구가 부각되고 있지만, 이게 전체 홍콩인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수 시민은 '독립' 보다는 중국과의 '공존'을 원하고 있다.
【홍콩=AP/뉴시스】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현지시간) 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06.15【홍콩=AP/뉴시스】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15일(현지시간) 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06.15
2017년 3월에 있었던 홍콩행정장관 선거에서 캐리 람에 밀려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선거 기간 내내 50%가 넘는 높은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온건 친중파 존창(曾俊華) 전 재정사장은 선거 구호로 '개방, 조화, 포용, 공존의 홍콩'을 강조했다. 이런 가치들이 홍콩사회가 구성하고자 하는 홍콩의 집단 기억과 정체성인 것으로 보인다.

또 이 같은 집단 기억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홍콩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독립보다는 다양성의 존중과 중국과의 평화로운 공존, 즉 '일국양제 유지'로 추측된다. 2017년 6월7일에 실시된 '홍콩 민의와 정치발전'(15세 이상 1028명 대상 여론조사)에 따르면 2047년 이후에도 중국과 홍콩 간에 일국양제가 유지돼야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71.2%였다. 14.7%는 중국의 직접적인 통치를 지지했고, 11.4%만이 홍콩의 독립을 지지했다.

결국 홍콩과 중국은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제도로 통합될까. 혹은 차이를 인정하고 두개의 제도를 가진 하나의 국가로 남게될까.

참고문헌
홍콩의 집단 기억과 시위 그리고 정체성 정치, 중소연구, 이종화
홍콩 민주화 시위에 나타난 정체성의 정치 분석, 서울교대, 박서현
1997년 이후 홍콩인 정체성의 지속과 변화, 한국인문과학회, 홍석준
우리의 기억, 우리의 도시, 집단기억과 홍콩 정체성, 동북아문화연구, 장정아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