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피닉스’는 여성이 주인공과 악역을 모두 맡은 슈퍼히어로 영화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사이먼 킨버그는 이에 대해 “남성 팬이 다수인 주류의 히어로 영화에 강한 여성 캐릭터 주인공을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점은 악역 스미스를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이 출연을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다크 피닉스’는 연출적인 면에서 앞선 시리즈와 차별성을 두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 캐릭터를 중심 인물로 내세웠고, 여성을 향한 대상화를 경계했다. 미스틱(레베카 로민), 엔젤(조 크라비츠), 엠마(재뉴어리 존스) 등이 한껏 몸매를 강조한 의상을 입으면 카메라가 그들을 아래위로 훑는 식의 전형적인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진이 살모를 통해 해방되지도, 왕좌에 앉지도 못한 반면 자칭 ‘레이븐을 사랑했던’ 에릭과 행크(니콜라스 홀트)는 레이븐의 죽음을 계기로 진을 죽이기 위해 힘을 합친다. 주된 서사가 남성 캐릭터들에게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이성적이고 자상했던 행크는 사리분별 못하는 금수로, ‘엑스맨: 아포칼립스’를 통해 무자비한 살생이 복수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에릭은 모든 경험과 교훈을 잊은 철부지로 그려진다. 영화는 스스로 구축한 여성 캐릭터들을 온전히 믿지 못했고, 남성 캐릭터들의 일관성을 붕괴시키면서까지 주역의 자리에 배치하는 악수를 둔다.
끊임없이 내면의 다툼을 벌이면서 외부로부터의 통제와 적대를 견뎌내던 진은 마침내 억눌러왔던 커다란 힘이자 자신의 이면인 피닉스를 받아들이고, 다크 피닉스로서 해방되는 캐릭터다. 진의 생애는 ‘엑스맨’(2000)부터 시작된 돌연변이들의 커다란 역사와 같은 선상에 있다. 돌연변이들 또한 인간과 공존을 바라는 프로페서X/찰스와 인간을 지배하려는 매그니토/에릭(마이클 패스벤더)의 대립, 즉 돌연변이 사회 내부에서의 갈등을 겪어왔다. 동시에 돌연변이들은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배제를 일삼는 인간에 맞서, 존재에 대한 인정 투쟁을 벌여야 했다.
여성은 한동안 이해되지 않는, 이해할 필요가 없는 ‘미지의 존재’였고, 여성을 향한 생소함은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곧 적의가 됐다. 인종, 장애, 성소수자 등을 돌연변이에 빗댄 저항의 역사 끝에 여성 히어로 ‘다크 피닉스’가 놓인다는 사실은 19년간 투쟁해온 돌연변이들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여성까지도 주체성을 갖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왔음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는 여성 캐릭터들을 다루면서도 깊이 담지 않으려 하며, 강한 여성 히어로를 필연적으로 산화시킨다. 여성 히어로는 언제쯤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디즈니로 넘어간 ‘엑스맨’ 시리즈에서는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