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외평채 1.2조로…KIC '사회책임투자' 나선다

머니투데이 세종=박준식 기자 2019.06.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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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도 세계 첫 SRI 채권발행 뉴욕시장서 사실상 성공…국내는 국민연금, 해외선 KIC 통해 '사회적 투자' 본격화 "외평채 전용 지적 vs 한국 신용도 높일 계기"

 마흐무드 모히엘딘 월드뱅크 부총재가 17일 오후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18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국제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마흐무드 모히엘딘 월드뱅크 부총재가 17일 오후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2018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국제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정부가 10억 달러(약 1조1800억원) 규모 외평채를 미국 시장에서 발행하고 여기서 조달한 자금을 KIC(한국투자공사)에 위탁해 글로벌 사회책임투자에 나선다.

국부펀드인 KIC를 통해 환경(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 지배구조(Governance) 개선에 적극적인 기업에 투자하는 'ESG 투자'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다. KIC는 지난해 말 3억 달러(약 3500억원)를 이 분야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올해 기재부로부터 자금을 더 받아 ESG 투자를 증대할 계획이다.



이런 움직임은 국민연금이 최근 한진칼 경영권 분쟁 등 사례에서 사회책임투자에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투자에, KIC는 한국 국부펀드로서 글로벌 투자에 있어 사회적 책임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다.

12일 기재부는 10억 달러(약 1조1800억원) 규모 외화표시 외평채 발행을 위한 개시 발표(Deal Announcement)를 11일(뉴욕시각) 공식화했다고 밝혔다. 한국 시간 18시를 기준으로 수요예측 모집액은 이미 목표치를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최초 소버린 SRI 특수 외평채 발행

이번 외평채는 특별히 세계 최초로 일부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 형태로 발행된다. 국가(Sovereign)가 전면에 나서 자금조달 목적을 이른바 '사회책임투자(SRI)'로 한정한 첫 사례다.

우리 외평채는 국제신용평가기관(Moody's/S&P/Fitch)에서 Aa2/AA/AA- 등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신용등급에 준해 '안정적'이라는 지위다. 미국(AAA), 핀란드(AA+) 등 투자등급 내 1, 2순위 등급에 이어 3순위급이다.


기획재정부는 발행주관사에 이번 외평채를 그린본드(Green bond),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으로 자금 사용이 제한된 특수목적 채권으로 발행하는 방식을 검토시켰다. 투자 용처는 그린 90%, 지속가능성 분야 10% 수준으로 제시됐다.

주관사는 이로 인해 관련 노하우가 있는 씨티글로벌마켓증권(Citi)과 크레디아그리콜(CA-CIB), 홍콩상하이은행(HSBC), JP모간(JP Morgan) 등 4개사가 공동으로 맡았다. 주관사는 미국 달러화 표시 △만기 5년 그린&지속가능 채권과 △만기 10년 일반 채권을 벤치마크 규모로 발행할 예정이다.

외평채 전용 vs 세계 SRI 시장 선도 "한국 신용도 높일 계기"

외평채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약칭으로 환율 안정을 목적으로 조성되는 외국환 평형 기금 조달을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하지만 이번 외평채는 '사회적 투자 책임'만을 한정해 발행된다. 외평채를 본래 목적이 아닌 곳에 전용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외국환평형 기금은 원화 안정을 유지하고 투기적 외화 유출입에 따른 악영향을 피하기 위한 자금이다. 정부가 직접 혹은 간접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외환 매매조작을 실시하기 위해 보유·운용한다. 따라서 최저 필요액을 제외한 나머지 여유분은 한국은행이 아닌 KIC가 위탁받아 역외에 투자하고 자금을 불린다.

다만 KIC가 위탁 받은 자금을 외평채 이자보다 더 불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IC 지난해 전체 수익률은 -3.66%였다. 더구나 '사회적 책임 투자'로 용처를 한정해 수익률을 반전할지가 관건이다. 전문가 보강도 요원한 수준이다.

외평채를 발행하는 기재부 국제금융국 입장에서는 KIC 운용 결과와 관계없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성과가 있다. 국민소득이 GDP(국내총생산) 기준 일인당 3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한국이 선진국도 하지 못한 소버린 SRI 자금조달을 성공시킨 결과를 앞두고 있어서다.

김회정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올 초부터 정부 관계부처와 외국계 IB(투자은행)들이 협력해 ESG 자금조달을 계획했다"며 "현지 시장반응이 좋고 정부가 이 분야에 앞장서 앞으로 국내 민관이 이를 벤치마크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외평채 발행주관사인 씨티글로벌마켓 관계자는 "신용도가 높은 대한민국이 발행하는 코리안페이퍼(한국물 채권)로 투자자를 다변화하면서 좋은 가격에 장기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이라 차후 한국 신용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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