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구멍 뚫린 대한민국…'보급형 뽕의 시대' 눈앞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김영상 기자 2019.06.12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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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마약전쟁 24시 上]②1990년대 이후 한국 떠난 마약, 거대 자본·기술 타고 회귀

편집자주 연예인과 재벌3세 사건처럼 마약이 일상으로 침투, 마약청정국이었던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 시내 한복판 호텔에서 대량의 필로폰이 제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로 꼽히는 골든트라이앵글(태국 미얀마 라오스)에서 수입되는 물량도 급격히 늘고 있다. 쉼없는 마약과의 전쟁을 조명했다.

[MT리포트]구멍 뚫린 대한민국…'보급형 뽕의 시대' 눈앞


"…편의점에서 담배 사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의 대중화. 보급형 뽕의 시대…"(영화 '극한직업' 중)




올해 초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유명클럽 '버닝썬'에서 성폭력과 마약, 폭력 등 각종 범죄가 불거지면서 한 때 '마약청정국'으로 유명했던 한국의 마약 범죄 생태계도 재조명받고 있다.

20여년간 국내에서 종적을 감췄던 마약 조직은 2010년을 전후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일부 마약사범을 중심으로 소규모 마약을 거래하던 것과 달리 일정규모 이상 시장과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마약 범죄 '경고등'이 들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영화 대사에서나 나오던 '보급형 뽕(필로폰)의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잃어버린 마약 청정국 지위, 다시 한국 노리는 국제 마약조직= 국가정보원 국제범죄 담당 부서와 수사기관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전쟁 이후 마약 생산국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에서 마약 범죄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980~90년대 이후다.

일명 '범죄와의 전쟁'으로 대표되는 대대적 소탕으로 마약 사범은 음지로 숨어들었고, 제조업자들은 중국 동북 3성 일대로 근거지를 옮겼다. '마약 청정국 지위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출발한 화물은 세관 통과가 덜 까다롭다'는 인식으로, 마약 유통조직 역시 마약을 국내에 판매하기보단 일본과 호주로 보내기 위한 '경유지'로 활용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둘러싼 '마약 유통 지도'에 변화가 생긴 시점을 2010년 전후로 보고 있다.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위해 대대적인 범죄 단속에 나서면서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진행했던 '범죄와의 전쟁' 결과처럼 중국에서 활동하던 제조업자 등 마약 사범이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 국가로 거점을 옮겼다는 분석이다.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느슨한 사법체계 속에서 마약을 제조·수출하기 수월했다는 분석이다.

마약 제조 조직이 중국에서 제3세계 국가로 스며들고, 인건비 등 마약 제조 비용이 줄어들면서 한때 마약으로부터 청정국 지위를 확보했던 우리나라의 유통량도 늘어났다고 한다. 마약 유통 조직이 자본과 가격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갖추면서 보다 이익을 낼 수 있는 시장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선 셈이다.

한 국정원 국제범죄 담당 요원은 "동남아에서 거래되는 필로폰이 국내를 거치면 적게는 5배에서 7배까지 가격이 뛴다"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범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선택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20여년간 마약 범죄의 심각성과 거리가 있었던 한국은 2015년부터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통상 인구 10만명당 마약사범 20명 미만을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당국이 검거한 마약사범은 1만2613명으로 인구 10만명 당 28명 수준이다.

◇경유지에서 소비지로…강해지는 마약류 경고 신호= 국내 유입되는 마약류 증가는 단순히 국내를 거쳐 일본과 호주 등 최대 수요국으로 향하는 양이 증가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양이 늘어났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 이상 한국도 마약으로부터 깨끗하지 않다는 얘기다.

동시에 IT(정보기술)기기의 발달로 마약 유통 과정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사라진 것도 국내 마약 유입과 유통, 소비를 늘리는 요소로 꼽힌다.

과거의 마약 거래는 '사람 대 사람'이 직접 만나 은밀히 마약과 돈을 주고 받았지만 최근엔 스마트폰과 각종 메신저 프로그램 등으로 직접 접촉 없이 특정 장소에 마약을 갖다놓고 위치를 전송하는 '던지기' 수법이 일반화됐다는 설명이다. 마약 사범 소수가 모인 소규모 집단에서의 유통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량 유통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필로폰 상습투약혐의로 구속기소된 가수 겸 배우 박유천씨 역시 '던지기' 수법으로 마약을 거래하는 CCTV(폐쇄회로화면)이 수사당국에 포착돼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이미 한국은 마약 경유지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일정 수준 이상 마약을 소비하는 소비국이 됐다"며 "대량으로 마약을 공급하는 국제범죄 조직과 거래에 이용하는 IT기기 발달로 확산속도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가 지난해 10월15일 오전 나사제조기 속에 필로폰 90 kg분량(압수한 필로폰은 3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시세로 약 3,000억원 규모)을 숨겨 밀반입한 대만, 일본, 한국 3개 마약 조직원 일당 8명을 검거(구속 6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물. /사진=뉴시스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수사계가 지난해 10월15일 오전 나사제조기 속에 필로폰 90 kg분량(압수한 필로폰은 3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시세로 약 3,000억원 규모)을 숨겨 밀반입한 대만, 일본, 한국 3개 마약 조직원 일당 8명을 검거(구속 6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경찰이 압수한 증거물.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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