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똑바로 들라"…이희호 여사가 여학생들에게 외쳤다

머니투데이 조해람 인턴기자 2019.06.1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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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길 낸 1세대 여성운동가…"국민의 정부 여성정책엔 이희호가 있다"

이희호 여사/사진=뉴스1이희호 여사/사진=뉴스1


"고개를 똑바로 들라!"

1940년대 중반 어느 모임 자리,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남학생들 앞에서 기가 눌린 여학생들에게 이희호 여사는 이렇게 외쳤다. 가게 사장에게는 "여학생들이 마실 수 있는 음료수도 따로 준비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다. 아직 '남존여비'의 유교적 가치관이 팽배하던 때였다. 당시 이 여사의 별명은 독일어 중성 관사인 '다스(Das)'. 행동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었다.

10일 97세 일기로 별세한 이 여사는 여성운동의 길을 앞장서 개척했다.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 치하에서 이화고등여학교(현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를 다닌 '엘리트'였지만, 힘든 처지의 여성을 위해 평생을 봉사했다.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한국전쟁에 휘말린 여성들을 위해 '대한여자청년단'을 조직했고 이듬해 '여성문제연구원'을 창립하며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여사는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에서 공부하다 1959년 귀국해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았다. YWCA에서의 첫 행보는 '혼인신고를 합시다' 캠페인이었다. 첩으로 들어온 여성 때문에 본처가 쫓겨나는 일을 막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 여사는 "축첩자(첩을 둔 남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 "아내를 밟는 자 나라 밟는다" 등 문구를 앞세워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적극 노력했다.

196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엔 독재정권의 모진 탄압을 견디는 '정치적 동지'이자 '여성인권 조언자'로 활약했다. 김 전 대통령 임기 때 처음으로 여성부가 설치된 데도 그의 영향이 컸다. 여성들의 공직 진출도 이때 크게 확대됐다. 뚜렷한 여권 신장을 두고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이야기도 돌 정도였다.



여성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해 싸워 온 이 여사의 공로는 생전에도 널리 인정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무엇이 됐을 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0년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중국 인민일보사가 발행하는 잡지 '스다이차오'는 "이 여사는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위한 노력을 평생 김 대통령과 함께한 만큼 노벨평화상의 절반은 부인 몫"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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