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향년97세)가 10일 별세했다. 사진은 1998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국민의례하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1922년 유복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이 여사는 이화여대의 전신인 이화여전 문과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에서 강의를 하는 등 당시 '엘리트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첫 인연은 맺은 것은 1951년이다. 둘은 학술모임에서 만나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았고, 관계를 이어가던 중 1962년 이 여사가 YWCA 총무로 있던 때 결혼식을 올렸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이어지던 시기, 이 여사는 항상 남편과 함께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열흘 만에 이 여사는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것을 봤다. 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이후 반복된 김 전 대통령의 옥살이에 이 여사는 석방 운동과 옥바라지를 했다.
특히 이 여사가 유학 시절 쌓은 영어 실력과 영문 타자 솜씨, 서구식 매너 등이 큰 자산이 됐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세계 각지의 유력인사들에게 유려하고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구명 운동을 펼쳤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 생활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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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김 전 대통령의 취임식 이후 이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앞장섰다. 결식아동을 위한 봉사단체 ‘사랑의 친구들’, 저소득층 여성을 돕는 ‘한국여성재단’ 등에서 활동했다.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이 외에도 국민의 정부에서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확대된 데 대해 "이희호 여사의 역할이 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김 전 대통령도 내가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여사 부부가 동교동 자택에 '이희호'·'김대중' 문패를 나란히 단 것도 김 전 대통령이 이 여사에 보이는 존경심과 애정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결혼 1년 뒤쯤인 1963년 4월 이희호와 김대중은 그때만 해도 변두리였던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작은 국민주택으로 이사했다. 이듬해 전세였던 집을 사들인 뒤 김대중은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새긴 문패 2개를 나란히 내걸며 동교동 시대를 열었다. 사진은 1982년 미국으로 망명을 떠난 부모를 대신해 동교동을 지키던 맏아들 김홍일의 문패까지 3개가 걸려 있던 시절이다. /사진=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이 여사는 생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며 "그리고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고 소원했다.
한편 이 여사는 올해 봄부터 노환으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에 마련될 예정이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따르면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4일 오전 6시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장례예배는 14일 오전 7시 신촌 창천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