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일자리 연계고용제도가 해법…中企 부담 줄여야"

머니투데이 고석용 기자 2019.06.2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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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공생에서 찾는 행복 : 사회적기업 베어베터]이진희 대표 "의지만 있으면 모든 기업이 공존 현장"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인터뷰/사진=이기범 기자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인터뷰/사진=이기범 기자


지난달 28일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모토로 열린 민간축제 '소셜밸류커넥트(SOVAC)2019'에서 축제기획자인 최태원 SK 회장을 당혹스럽게 만든 기업이 있다. 김정호·이진희 공동대표가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고용 사회적기업 베어베터다.



김정호 대표는 행사에서 SK 계열사들의 장애인 의무교용율이 낮은 점을 지적하며 "SK가 장애인 고용이라는 전공필수 과목을 이수하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최 회장은 이같은 지적에 "당황했지만 맞는 말씀"이라며 "무조건 하겠다"고 화답했다.

베어베터는 230여명(직원의 80%)의 발달장애인이 일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사명부터 발달장애인을 상징하는 '곰'이 세상을 이롭게 만든다는 의미(Bear makes the world better)에서 따왔다. 인쇄·제본, 제과제빵, 꽃포장·배달 등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분야는 가리지 않는다.



베어베터의 공동창립자인 이진희 대표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베어베터는 발달장애인의 고용이 설립목표인 회사"라며 "발달장애인이 부족함 없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면 모두 베어베터의 업종"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이 만든 제품이어서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편견도 보란 듯이 깼다. 이 대표는 "명함, 꽃배달 등 베어베터가 제공하는 상품들은 한 번 사주고 말 물건이 아니다"며 "시장에서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품질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베어베터는 현재 네이버, 에르메스, 루이비통, IBM 등 400여개가 넘는 대기업·기관 등과 거래하고 있다.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인터뷰/사진=이기범 기자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인터뷰/사진=이기범 기자
베어베터의 두 대표는 모두 1세대 벤처기업 네이버 출신이다. 김 대표는 1999년 창립멤버로, 이 대표는 2008년 네이버에 입사했다. 회사가 정상에 오른 2010년 이 대표는 자폐판정을 받은 자신의 자녀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네이버를 그만뒀다. 이 대표보다 몇달 먼저 회사를 그만둔 김 대표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 등에 관심을 갖다 이 대표의 꿈에 투자했다. 그렇게 두 대표의 베어베터가 설립됐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뭘까요? '일자리'입니다. 처음에는 장학금 지원도 생각을 했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교육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어요. 성인기에 갈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 우리사회의 문제는 무엇일까를 공부하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베어베터에 경영동력을 준 것은 '연계고용부담금감면제도(이하 연계고용제도)'다. 현행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은 의무고용제도를 통해 50인 이상 공공기관·민간기업에 고용원의 3.1% 이상을 장애인으로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미이행 시 100인 이상의 기업은 미달인원당 월 104만원 이상의 부담금을 내야 한다. '연계고용제도'는 이런 기업들이 장애인표준사업장과 도급계약을 하면 거래금액의 50%까지 부담금을 감면시켜주는 제도다. 장애인표준사업장을 통해 장애인 고용에 간접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대표는 "연계고용제도는 현재로서 발달장애인 등 중증장애인 고용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로 경증장애인 고용은 늘릴 수 있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장애인 채용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지난해 경증장애인 고용률은 41.1%,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20.2%로 추산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일반기업에서 적합한 직무를 받지 못해 고생하느니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는 장애인표준사업장에 다니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기업입장에서도 아직 중증장애인을 직접 채용하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로선 중증장애인을 위한 장애인표준사업장을 늘리고 연계고용제도로 표준사업장의 운영을 돕는 게 해결책이 됩니다. 온종일 붙어있는 것만이 함께 사는 사회는 아닙니다. 이런 식의 공존도 해답이 될 수 있죠. 적어도 지금의 환경에서는요."

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인터뷰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진희 베어베터 대표 인터뷰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그러면서 이 대표는 연계고용제도의 부담금 감면율 상향을 강조했다. 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않아 부담금을 납부하는 기업은 8264곳(미이행률 56.6%)에 달하지만 이 중 연계고용을 이용하는 기업은 443곳(4.3%)에 그친다. 부담금 감면율(최대 50%)이 기업을 움직일만큼 크지 않아서다.

장애인 일자리 문제에 적극적인 독일의 경우 우리나라와 비슷한 방식의 연계고용 부담금 감면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감면한도는 무제한이다. 연계고용으로 부담금을 전액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해 기업들의 활용도를 높이고 우리의 표준사업장 격인 장애인공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한정해서라도 연계고용제도의 부담금 감면율을 상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모든 기업에 대한 연계고용 부담금 감면이 어렵다면 기업규모별로 차등화를 주는 방법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보다 장애인고용 부담이 큰 중소기업에는 연계고용의 혜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연계고용제도가 장애인 고용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현재로서 연계고용제도가 최선의 해결책이지만 결국 모든 기업이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며 "발달장애인과 일하는 게 어렵다고 하지만 의지를 갖고 발굴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아한형제들, 대웅제약, NHN 등의 '발달장애인 사내매점·사내카페' 등이 사례다.

"다들 못한다고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한 게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기업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살아야겠죠. 김정호 대표는 '베어베터의 목표는 발달장애인이 모두 기업에 채용돼 쓸모를 다하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도 우리 회사가 그렇게 아름답게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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