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사흘에 한번꼴로 교수갑질 제보…가장 많은 갑질은?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김지성 인턴기자 2019.06.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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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특권층-교수]시민단체 대학원생119, 5개월 동안 접수된 갑질 사례 125건…전문가들 "교육당국 감독 강화해야"

편집자주 직위는 하나인데 하는 일이 수십가지인 직업군이 있다. 장관, 수석비서관, 사외이사, 각종 단체의 요직을 하다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자리가 있는 대학 정교수다. 1년에 논문 1편 안써도 자리를 유지하고, 대학원생들에게 갑질하며 각종 혜택을 누리는 '한국 최고의 직업' 대학 교수 사회를 짚어봤다.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집 이사나 짐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갑질'을 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이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라인'을 잘 타야 하는 한국 대학의 채용 시스템과, 한번 정교수가 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신분이 보장되는 한국 대학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자신의 집 이사나 짐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갑질'을 하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이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라인'을 잘 타야 하는 한국 대학의 채용 시스템과, 한번 정교수가 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신분이 보장되는 한국 대학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삽화=김현정 디자인 기자


#1.대학원생 A씨는 매일 차를 끌고 지도교수 자녀의 유치원으로 간다. 지도교수가 자녀의 운전기사 역할을 요구한 탓이다. 가끔은 교수의 요구로 자녀의 숙제를 봐주기도 한다. 운전기사, 교사 업무를 해도 대가는 없다. A씨는 "무사히 졸업하려면 지도교수의 요구에 불만이 있더라도 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대학원생 B씨의 지도교수는 본인 명의의 인터넷 기사를 B씨에게 쓰라고 시켰다. 이사회에 제출할 본인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 작성을 시키기도 했다. B씨는 "다음 수업 평가 때 영향이 있을 것 같은 어조로 부탁을 해 싫은 티를 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2~3일에 1번꼴로 지도교수 '갑질'에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을 한 교수 10명 가운데 1명은 연구비와 학생 장학금을 가로챘다는 조사결과다. 학생들은 부당함을 알아도 논문 심사나 졸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교수나 학교 측에 문제제기를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일부 몰지각한 교수들의 이 같은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일단 정교수(Tenure: 종신재직권)가 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외국과 달리 최소 65세까지는 철저한 신분보장이 뒤따르는 '신의 직장'이기 때문이다.

6일 교수 갑질 근절을 위한 시민단체 '대학원생119'에 따르면 올해 1월7일부터 지난 5일까지 최근 5개월 동안 접수받은 '교수 갑질' 제보는 61차례, 125건에 달한다.



올해 1월7일 출범한 대학원생119는 교수의 갑질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시민단체다. 네이버 밴드를 통해 실명 가입신청을 받은 학생들에게 제보를 받는다. 이날 기준 대학원생119 밴드에 가입한 대학원생 수는 288명이다.
[MT리포트]사흘에 한번꼴로 교수갑질 제보…가장 많은 갑질은?
유형별로 살펴보면 접수된 갑질 사례 중 연구비 횡령과 연구성과 가로채기, 금품요구 등 비위 문제가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구체적 사례로는 연구비 횡령·페이백이 18건(14.4%)으로 가장 많았고, 연구부정·연구저작권강탈 13건(10.4%), 금품요구 7건(5.6%) 등이 뒤를 이었다.

페이백은 '랩장'이라고 불리는 연구실 반장이 연구실 대학원생들에게 통장과 비밀번호를 받아 장학금이나 인건비를 모은 뒤 교수에게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페이백을 당한 대학원생 C씨는 "연구실에서 국가기관이나 기업에서 발주한 연구에 참여하면 나오는 인건비는 다시 교수에게 돌아간다"며 "선배들이 다 이렇게 하고 졸업했다고 말하니까 어쩔 수 없이 통장과 비밀번호를 제출했다"고 하소연했다.


C씨는 "교수가 프로젝트를 따오는 것이고, 연구가 학생 개인의 논문 준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기부 명목으로 돌려달라는 것"이라며 "쉽게 납득하기 힘든 관행이지만 졸업 때문에 참아야 했다"고 말했다.

금품이나 연구성과 갈취 외 직접 대학원생을 괴롭힌 사례도 있다. 괴롭힘 사례는 △폭언·폭행 16건 △논문투고 방해·졸업지연 15건 △(단순) 괴롭힘 9건 △성폭력·성희롱 7건 △업무배제 7건 △따돌림 4건 △지도교수 변경거부 3건 등으로 나타났다.

노동착취 역시 △무급노동 9건 △사적업무지시 7건 △일방적 해고 3건 △장시간근무 3건 △체불임금 2건 △최저임금 미달 2건 등 제보가 접수됐다.

대학원생119를 운영하는 직장갑질119의 최혜인 노무사는 "학위를 받을 때까지 교수의 지도를 받아야하는 약점을 이용해 교수들이 왕처럼 군림한다"며 "갑질 대다수가 법적 입증이 어려워서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교수사회의 갑질과 비리를 없애기 위해선 교육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학원생119 측은 "연구비 갈취, 자녀숙제 대필 등 교수 갑질이 최소 15년 이상 계속됐지만 학교와 당국은 이를 방치해왔다"며 "대학원생 신원을 보호하면서 익명 제보를 받고 기습 감사, 무기명 설문조사 등을 벌여 갑질·비위 문제를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노무사도 "교수와 대학원생의 권력관계를 잘 아는 교육당국이 나서서 학교에서 자정작용이 잘 일어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며 "대학교의 연구윤리위원회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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