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폐지하면 1400만가구 요금인상 불가피

머니투데이 권혜민 기자 2019.06.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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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확대해 여름철 요금부담 줄이고 혜택대상 많은 '1안' 유력…3가지 안 모두 한전 재무 부담 키워

누진제 폐지하면 1400만가구 요금인상 불가피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3일 공개한 '누진제 개편안'은 단일안이 아닌 세 가지 안으로 구성됐다. TF는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1안, 누진단계를 축소하는 2안, 누진제를 전면 폐지하는 3안을 제시했다.

누진제를 완화해 여름철 소비자들의 요금 부담을 줄이면서도 일부 가구에만 인하 혜택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1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지난해 사용량 기준으로 총 1629만가구의 전기요금이 가구당 월 1만142원(15.8%)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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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민청원이 잇따랐던 누진제 폐지는 실현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약 1400만가구의 요금인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사용량이 적은 가구에 요금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을 설득시켜야 하는 데다 정부도 줄곧 요금인상 자체에 부정적인 만큼 채택 가능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구간 확대' 1안·'단계 축소' 2안…전기요금 얼마나 싸지나=현행 주택용 전기요금은 △1단계 200kWh 이하 △2단계 200~400kWh △3단계 400kWh 초과 등 3단계로 구분해 매겨진다. 누진 단계별로 kWh당 요금(기본요금)은 △1단계 93.3원(910원) △2단계 187.9원(1600원) △3단계 280.6원(7300원)이다.

1안은 여름철에 요금은 고정하고 누진구간을 △1단계 300kWh 이하 △2단계 301~450kWh △3단계 450kWh 초과로 완화했다. 따라서 한달 사용량 450kWh 이하 구간의 대다수 국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사용량 기준으로 1629만가구가 가구당 월 1만142원(15.8%)을 할인 받을 수 있게 된다. 사용량이 450kWh가 넘는 다사용가구(약 400만가구)에게 혜택이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점이다. 즉 많은 국민의 여름철 에어컨 사용 부담을 완화하면서도 에너지 소비 효율화라는 누진제 취지를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2안은 여름철에 누진제 부담이 가장 큰 3단계를 폐지하도록 했다. 이 경우 누진체계는 △1단계 200kWh 이하 △2단계 200kWh 초과 구조로 간소화된다. 월 사용량 200kWh가 넘는 사용자들은 여름에 에어컨을 많이 써 누진 3단계에 진입해 요금이 급증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사실상 7~8월 두달간은 누진제를 폐지하는 것과 같은 효과다. 할인대상 가구당 월평균 할인금액도 1만7864원(17.2%)으로 비교적 크다.


하지만 실질적 혜택은 사용량 400kWh 초과 다소비 가구에만 돌아간다는 점이 문제다. 할인받는 가구는 지난해 기준 약 609만가구에 그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1안이 최종안으로 가장 유력한 것으로 분석된다. TF 위원장을 맡은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앞으로 3가지 안 모두에 대한 의견수렴을 거치겠지만 TF 내부에서는 여름철 소비자들 누진제 부담을 완화하면서 편중된 소비자들에게 편익이 되지 않는 안에 집중했다"며 "아마 한두 안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6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지역사업소에서 직원들이 가정으로 배부될 지난 7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분류하고 있다.  2018.8.6/사진=뉴스1 6일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지역사업소에서 직원들이 가정으로 배부될 지난 7월 전기요금 고지서를 분류하고 있다. 2018.8.6/사진=뉴스1
◇'누진제 폐지' 가능?…1400만가구 요금 올라야='누진제 폐지' 또한 3안으로 제시됐지만 채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3안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연중 내내 kWh당 125.5원의 전력량 요금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 경우 반복돼 온 누진제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 전기를 쓴 만큼 비례해 요금을 내기 때문에 요금 불확실성도 상대적으로 적다.

문제는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월 사용량이 300kWh를 넘는 887만가구는 월평균 9951원(17.1%) 요금이 내려간다. 하지만 300kWh 이하를 사용하는 나머지 1416만가구 요금은 월평균 4335원(23.9%) 오른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의 전력사용량이 많다는 가정 하에 '부자감세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약 1400만가구의 요금 인상 저항도 넘어야 할 산이다.

◇한전 수입감소 불가피…재무부담 가중 우려=3가지 안 중 어느 안을 채택해도 누진제 개편에 따른 한전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1안과 2안의 경우 총 요금할인 규모는 평년(2017년) 기준 각각 2536억원, 961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와 같은 폭염이 닥친다면 2874억원, 1911억원으로 액수가 더 커진다. 3안도 평년수준이라면 전체 할인규모는 0원이지만, 날이 더워 사용량이 늘어난 지난해 기준으로는 총 2985억원을 인하하게 된다.



이는 한전 수입감소로 직결돼 재무상황에 큰 부담을 준다. 한전은 올 1분기에 629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1분기 실적으로 사상 최악이자 최근 6분기 동안 5번째 적자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개편안 3가지 모두 국민 부담은 경감돼도 한전 영업이익에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며 "정부 재정이나 기금을 통해 한전의 추가적 재무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일부 재정지원 의사를 밝혔다. 박찬기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은 "소요 재원은 공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한전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도 관계 부처 협의와 국회 심의를 거쳐 소요재원 일부를 재정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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