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최종구 위원장이 옳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대표 2019.05.2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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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화살을 만드는 사람과 갑옷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화살을 만든다고 해서 그 사람의 품성이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더 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 사람을 죽이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갑옷이 화살에 뚫려서 사람이 다칠까 걱정한다. 병을 고치는 무당과 관을 만드는 장인도 마찬가지다. 무당은 병이 낫지 않을까 걱정하고 장인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서 관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맹자’에 나오는 얘기인데 만고불변의 진리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자리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판단하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이재웅 쏘카 대표와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타다’ 서비스를 둘러싼 설전을 보면서 맹자의 비유를 되새겨본다.



쏘카 이재웅 대표의 주장처럼 택시업계가 타다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것은 지하철 때문에 택시가 힘드니까 지하철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지금의 타다가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자율 주행차 시대가 오면 택시업계의 설자리는 훨씬 더 축소될 것인 만큼 타다 서비스를 못하게 할 게 아니라 택시업의 연착륙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게 정부의 역할이다. 택시업계의 문제는 단순히 친절 교육하고 요금을 올려서 될 일이 아니다. 택시기사의 분신이 안타깝지만 죽음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정치이슈화한다 해서 공유경제와 모빌리티 혁신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막을 수는 없다.

혁신과 타다 서비스에 대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지적도 온당하고 옳다. 디지털 전환과 혁신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런 사람들의 사회적 충격을 관리하고 연착륙을 돕는 것은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정부 정책이나 택시업계에 대해 거친 언사로 비난하고 비아냥거릴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상생 방안을 만들어 나가는 게 우선이다. 단적으로 우리보다 먼저 택시문제로 심하게 갈등하고 고민해왔던 미국 뉴욕시만 해도 우버 같은 공유 자동차업체들의 차량 공유허가를 1년간 제한하는 등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 시행에 들어갔다.



이재웅 대표는 “혁신에 승자와 패자는 없고, 혁신은 사회전체가 승자가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있을 뿐”이라고 모호하게 말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극소수의 승자와 절대 다수 패자들 간에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인공지능(AI)와 생명공학이 결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엄청난 긍정효과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1% 또는 0.1%의 플랫폼 소유주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한다는 게 유발 하라리 같은 석학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하라리는 부와 권력이 극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되는 것을 막으려면 근본적으로 데이터 소유를 규제해야한다고 까지 말한다.

이재웅 대표는 자신의 몸까지 던지는 늙은 택시기사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가 우리 사회에서 부와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함께 거머쥔 극소수의 플랫폼 소유주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상위 계층의 소득 집중도가 가장 심한 양극화된 나라다.

이재웅 대표는 물론 최종구 위원장을 함께 비난했던 이찬진 포티스 대표 등 IT업계 명망가들은 “혁신 사업자들이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자칫 혁신동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최 위원장의 지적을 새겨 들어야한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했다. 비타협적 엘리트주의는 위험할뿐더러 신구 산업간 갈등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총명하기도 어렵지만 어리석기는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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