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 40%, 허상인가 실상인가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2019.05.2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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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채무비율 논란 A-Z…'적정규모 정부론' 제시한 참여정부 이후 건전재정 논쟁 본격화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세종시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우리의 국가재정이 매우 건전한 편이기 때문에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라며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은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개선을 위한 선투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2019.5.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세종시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우리의 국가재정이 매우 건전한 편이기 때문에 좀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라며 "혁신적 포용국가를 위한 예산은 우리 경제·사회의 구조개선을 위한 선투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2019.5.1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 40%.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6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마지노선 40%는 정치권을 달궜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보수 야당과 확장 재정을 선호하는 여당이 부딪혔다. 국가채무비율 40%는 넘어선 안 될 절대 기준일까.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 아닌 40%대 초반 관리
사실 확인부터 하면 홍 부총리는 내년 국가채무비율을 40% 내로 유지하겠다는 보도가 정확하지 않다고 했다. 23일 기재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다. 그러면서 국가채무비율 40%는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이 수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처음 제시된 게 아니다. 기재부는 지난해 8월 내놓은 '2018~2022년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2020년 국가채무비율을 40.2%로 예상한 적 있다. 기재부가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수정한 2020년 국가채무비율은 40.3%다. 올해 국가채무비율은 39.5%로 전망했다.

홍 부총리 보고의 요지는 2022년까지 국가채무비율을 40%대 초반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40%든 40%대 초반이든 기재부는 앞으로 재정이 여유롭지 않은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경기 하강으로 내년부터 세수 사정이 넉넉지 않다. 정부로 들어오는 수입(세금)이 줄어 빚(국채)을 내 모자라는 지출을 메워야 한다. 빚이 늘면 국가채무비율도 오를 수밖에 없다.
2018~2022년 주요 재정건전성 지표 추이/자료=기획재정부2018~2022년 주요 재정건전성 지표 추이/자료=기획재정부
◆재정건전화법, 마지노선 45% 명시
40%대 초반이 국가채무비율 관리에 있어 기준점이 된 건 최근 일이다. 오랜 기간 확고하게 자리 잡은 재정 규율이 아니다. 2002년만 해도 국가채무비율은 17.6%로 40%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가채무비율은 2003년 20%, 2009년 30%를 돌파했다. 이 때문에 40%대 초반을 단순히 심리적인 저항선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기재부가 2016년 8월 발표한 '재정건전화법'은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같은 해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처음 꺼내 만들어진 법이다. 국가채무비율 한도를 45%로 설정했다. 유럽연합이 1992년 가입조건으로 제시했던 국가채무비율 한도 60%를 참고했다.

당시 기재부는 고령화, 복지지출 증가, 통일 등을 고려해 국가채무비율 한도를 EU보다 낮췄다고 밝혔다. 국가채무비율 한도는 5년마다 재검토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악어 /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악어 /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재정건전성 vs 확장재정 논리는
기재부 설명처럼 국가채무비율을 낮게 관리하려는 이유는 미래에 돈 들어갈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료들이 자주 인용하는 표현은 '악어입 그래프'다. 쓸 돈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크게 증가하지 않으면 악어입처럼 쩍 벌어진 그래프가 발생하게 된다.

대외신인도 악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신용등급을 매기는 국제신용평가사는 국가채무비율을 중요한 평가지표로 본다. 국가채무비율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신용등급이 강등당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나랏빚이 늘더라도 경제가 더 성장하면 국가채무비율을 중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기재부 내에선 정책 라인이 이런 인식을 강하게 하고 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한 에브시 도마 MIT 교수의 1944년 논문도 이 반론을 뒷받침한다.

주 전 대표는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도마 교수는 경제성장률, 국가채무비율, 관리재정수지 간 연관성을 입증했는데 이 이론이 적정 국가채무비율을 계산하는 공식은 아니다"라며 "재정적자가 있더라도 경제성장률이 그보다 높은 수준이면 국가채무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논문의 요지"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국노총 노동절 마라톤대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9.5.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서울=뉴스1) 구윤성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국노총 노동절 마라톤대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9.5.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권으로 번진 국가채무비율 논란
국가채무비율 40% 마지노선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인 2015년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40%가 깨졌다"고 한 발언을 소환했다. 청와대는 4년 전과 경제 상황이 달라 확장 재정 정책을 써야 할 때라고 반박한다.



40% 마지노선을 둘러싼 여야 공방과 별개로 보수는 재정건전성, 진보는 확장 재정을 추구한다. 보수는 작은정부, 진보는 큰 정부를 지향해서다. 가령 2012년 재정전략회의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게 역사적 소명"이라고 발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같은 회의에서 "재정을 쓰는 입장에서만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관가에선 재정건전성 논란이 본격화된 시기를 참여정부로 본다. 전직 예산 관료 모임인 재경회·예우회 중심으로 2011년 발간한 책 '한국의 재정 60년'에 따르면 참여정부는 작은 정부론에 대응해 적정규모 정부론을 주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필요하면 정부가 적자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재정을 최후의 보루라고 여긴 보수파는 노 전 대통령 입장에 반발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국가채무비율은 20.4%로 전년 17.6%에서 2.8%포인트 올랐다. 참여정부 집권 말기인 2007년 28.7%로 올랐다. 보수정권 기간 동안 국가채무비율은 28.0%(2008년)→38.2%(2017년)로 상승했다.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추경 등 경제현안 관련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있다. 2019.5.2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추경 등 경제현안 관련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있다. 2019.5.2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증세 빠진 반쪽짜리 논쟁
국가채무비율 논쟁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세 논의가 빠져서다. 세수가 크게 늘지 않아 모자라는 재정을 국채 발행으로 메운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일각에선 증세를 통해 세수 증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금을 더 걷으면 국가채무비율 상승 속도는 낮출 수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구조적으로 보면 재정을 꼭 국채로만 채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세입도 적절하게 확충돼야 한다"며 "하지만 현 정부는 증세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로서 증세는 부담이 크다. 경기가 하강하고 있는 데다 내년엔 총선까지 있다. 여권은 증세가 자칫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홍 부총리는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적극적인 재정기조가 필요한데 증세는 아직 검토한 적이 없다”며 "세수를 정확히 예측하는 노력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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