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엄마, 저 인형 뭐야?"…학교 220m 옆 '성인 리얼돌샵'

머니투데이 조해람 인턴기자 2019.05.24 06:15
글자크기

초등학교 앞 '통유리' 성인용품점…규제는 피했지만 윤리 문제 남아

(좌) 오픈을 준비중인 성인용품점 (우) 가게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리얼돌들/사진=조해람 인턴기자(좌) 오픈을 준비중인 성인용품점 (우) 가게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리얼돌들/사진=조해람 인턴기자


#얼핏 보면 옷가게나 인형가게 같았다. 그러나 쇼윈도를 통해 보이는 '그녀들'은 마네킹이 아니었다. 여성의 신체와 성기까지 재현한 성인용품 인형인 일명 '리얼돌'이다. 초등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대로변의 한 가게, 리얼돌들은 옅은 미소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경기 김포 한 초등학교 통학로에 리얼돌을 판매하는 성인용품점이 들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택가&학원가에 성인 힐링돌샵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김포 **동 초등학교 주변 상가 건물에 무인성인샵이 가오픈했다"며 "투명 유리창으로 되어있으며 외부 간판과 문구도 선정적이다. 안전한 곳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해당 청원 서명자는 하루 만에 4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23일 오전 해당 매장에 가보니 실제로 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리얼돌들이 버젓이 전시돼 있었다. 성인용품 자판기가 있는 방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었지만, 리얼돌이 전시된 곳은 전면이 통유리였다. 가게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봤다. 정식 오픈은 아니었으나 가게는 거의 개점 준비를 끝낸 것처럼 보였다.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들 사이로 리얼돌 네 명(?)이 담소하듯 앉아 있었다. 자판기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물건'은 대부분 채운 상태였다.



기자도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음을 깨닫게 해 준, 무인 성인용품 자판기. 이 방엔 청소년 신분증 식별기기가 설치된다고 한다./사진=조해람 인턴기자기자도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음을 깨닫게 해 준, 무인 성인용품 자판기. 이 방엔 청소년 신분증 식별기기가 설치된다고 한다./사진=조해람 인턴기자


◇학교에서 5분 거리인데, 절묘한 규제 사각지대…당국 '골머리'
학교와 얼마나 가까운지 실감해보고 싶었다. 직선으로 뻗은 통학로를 따라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까지 걸어봤다. 초등학생과 키 차이를 고려해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가게에서 초등학교 문 앞까지 정확히 4분56초가 걸렸다.

초등학교가 코앞에 있지만, 이 가게는 '합법'이다. 성인용품 판매점 등이 들어설 수 없는 '교육환경보호구역'인 학교 반경 200m를 살짝 넘어선 약 220~230m 정도에 있어서다. 게다가 이 가게는 리얼돌을 직접 만들어 파는 '제조업·판매' 업종으로 분류돼 있어 현재 대법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리얼돌 수입의 합법·불법 여부에서도 자유롭다. 리얼돌 제조에 대해선 별다른 규제가 없는 상태다.

(좌) 해당 가게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까지 가는 길. 우측 상단에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가 있다. (우) 점심시간을 맞아 초등학생들이 그네로 달려가고 있다./사진=조해람 인턴기자(좌) 해당 가게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까지 가는 길. 우측 상단에 '어린이 보호구역' 표지가 있다. (우) 점심시간을 맞아 초등학생들이 그네로 달려가고 있다./사진=조해람 인턴기자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성인용품점에 당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김포시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조치를 고민하고 있다. 우선은 청소년 출입을 막는 신분증 식별기기 설치 전까지 오픈을 미뤄두도록 했다"고 밝혔다.

인근 초등학교 교무부장은 "인형 제품이 외부로도 보여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우려된다"면서 "시청 등에 공문을 보내 업종을 바꾸거나 내부가 눈에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지나가면서 '저 인형 뭐야?' 묻더라…"
인근 주민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편의점 주인 성모씨(53)는 "가게에 아이 엄마들이 자주 오는데, 아이들이 그 가게(성인용품점)를 지나가며 '저 인형 뭐야?'라고 물어봐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식당 아르바이트생 박모씨(25)도 "중·고등학교도 아니고, 초등학교 앞에 그런 가게가 있다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걱정은 더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했다는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 강모씨(42)는 "통학로는 물론이고 평소 아이와 함께 다니는 길에 가게가 있어 곤란할 때가 많다. 요즘은 아이와 함께 근처를 걸을 때 일부러 상점과 떨어져서 걷는다"며 "아이가 커가면서 부적절한 성관념을 가질까 걱정"이라고 속상해했다. 강씨는 이 이슈가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고민거리라고 전했다.

(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 (우) 점주의 해명 댓글/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 (우) 점주의 해명 댓글/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하지만 점주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교육환경보호구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영업이 가능하며, 국민청원의 주장처럼 '퇴폐업소'도 아니라는 것. 점주는 국민청원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 "가게는 통학로와 거리가 멀다. 야한 교복이나 간호사 복장도 없고, 글이 주장하는 '매장 내 강간'은 CCTV가 있어 아예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규제는 피했지만…'윤리' 문제 남아
실제 확인 결과 가게 주인의 말처럼 야한 옷을 입은 리얼돌은 없었다. 매장 구조도 도심의 '인형뽑기방'과 다르지 않아 불미스런 일이 우려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그러나 '통학로에서 벗어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인근 아파트와 주택 등의 위치를 종합해보면 이곳이 학생들의 통학로 중 하나임이 분명해 보였다.

교육환경보호구역의 최대반경은 200m지만 학생들은 200m를 벗어나 훨씬 많은 거리를 걷는다. 2015년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와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 초등학생의 평균 통학거리는 727.6m로 나타났다. 이 중 도보통행이 62.2%를 차지했다. 어린이보호구역(교통사고 위험에서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구역)인 학교 반경 300m 안에 사는 학생은 92%가 도보로 통학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법적 규제 영역을 무한정 늘리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교육환경보호구역 밖의 영역은 업주들의 자율규제와 윤리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