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노래’ 귀에 안 박힌다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5.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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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기 급상승 중인 방탄소년단, 노래는?…멜로디 넘어 종합 예술적 측면 봐야

미국 로즈볼 스타디움 무대에 오른 방탄소년단(BTS).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br>
미국 로즈볼 스타디움 무대에 오른 방탄소년단(BTS).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1. “아무리 들어도 노래가 귀에 쏙 들어오지는 않네요.”
클래식과 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음악 애호가 A(36)씨는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음악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곡을 들을 때 쉽게 따라 부를 ‘후크’(핵심멜로디)를 발견하기 어렵고 감정선을 훑고 갈 어떤 구간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2. 고등학생 B(17)양은 BTS를 좋아하지만, 노래는 비투비나 세븐틴으로 향한다. 좀 더 ‘감성적’이란 이유에서다. 그는 “BTS 노래는 외국 트렌디한 느낌에 가깝고, 멜로디보다 리듬 위주의 곡이어서 꺼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어폰을 끼고 들을 땐 편안하게 다가오는 음악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주름잡는 BTS 노래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멋있고 트렌디하고 외국 팝 문법에 잘 들어맞는 노래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기존에 들어왔던 익숙한 문법의 정서, 즉 ‘듣는 음악’이 주는 ‘감성 터치’가 약해 노력하지 않으면 따라 부르기 만만치 않다는 것이 ‘불편러’들의 토로다.



물론 젊은 세대일수록 BTS의 곡 대부분을 새로운 패러다임의 음악으로 정의하며 현재 세계 팝 트렌드에 가장 적합한 노래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노래마다 주요 테마로 등장하는 힙합, 강한 비트에 실린 업템포 리듬감, 은근히 중독성 있는 후크, 반복할수록 깊이 있는 가사 등 숨어있는 매력도 넘친다.

지난 10년간 국내 대중음악 시장을 견인해 온 아이돌 그룹 음악 흐름에 익숙한 이들은 BTS 노래가 주는 신선한 포맷에 금세 빠지기 쉽지만, 그룹 인지도나 장르에 관계 없이 결이 좋은 멜로디 위주의 음악에 길든 이들은 여전히 난해하게 여기기 십상이다.

마치 국내에서 비틀스나 퀸 같은 음악에 열광하는 이는 많아도, 롤링스톤스나 U2 같은 그룹 음악에 쉽게 빠져드는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지만 국내를 벗어나 세계인의 시선에서 보면 롤링스톤스나 U2는 외국 감성에 제대로 들어맞는 그룹이라는 점에서 BTS 음악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는 있다.


국내 음원 차트에서도 음원의 강자는 주로 가슴에 쉽게 각인되는 멜로디 메이커들이었다.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신한류 10년간 온라인 음악 차트 멜론 월간종합 차트 ‘톱10’ 기록들을 추적해보면 빅뱅은 26곡으로 1위에 올랐고, ‘톱10’ 70%를 걸그룹이 싹쓸이할 정도였다.

쉽게 ‘꽂히는’ 멜로디를 생성해내는 그룹들이 상위권에 주로 포진된 셈이다. 마룬5, 볼빨간사춘기, 버스커버스커, 십센치, 잔나비 등이 ‘음원 강자’로 우뚝 선 것도 각인되는 멜로디 메이킹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CBS 스티븐 콜베어쇼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사진제공=CBS Scott Kowalchyk<br>
미국 CBS 스티븐 콜베어쇼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사진제공=CBS Scott Kowalchyk
BTS도 이 점을 의식했는지, 새 음반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에서 전보다 더 유연하고 말랑말랑한 팝 음악을 통해 불특정 대중과 소통하는 데 주력했다. 타이틀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힙합 베이스를 잊지 않으면서 각인되는 리프(riff·반복 악절)를 쉽고 간결하게 풀어 전 세대를 겨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귀에 쉽게 ‘꽂히지’는 않는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BTS 노래는 어렵고 복잡한 걸까, 아니면 음악을 느끼고 바라보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걸까.

BTS 노래가 귀에 쉽게 안 박힌다는 이들조차 어느 날 ‘광팬’이 된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이에 대한 자그마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실마리는 ‘영상’에 있다. 회사원 C(36)씨는 “노래만 들을 땐 어렵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새 음반을 포함해 과거 노래를 영상과 같이 보니 술술 넘어갔다”며 “특히 노래마다 포인트 있는 대목이 퍼포먼스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노래만 들을 땐 몰랐던 곡의 ‘해석’과 ‘설득’의 과정을 퍼포먼스와 작은 디테일의 ‘손동작’과 연결하면서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BTS 음악을 ‘단편’ 장르가 아닌 ‘종합’ 예술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음악을 ‘듣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종합엔터테인먼트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케이팝 문법 안에는 음악적 요소뿐 아니라 안무나 세계관 같은 요소도 음악만큼 중요하다”며 “즉각적인 노스탤지어 감성(멜로디)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최근 경향이 멜로디보다 비트 중심으로 이뤄지고 트렌디한 흐름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전형적’”이라고 설명했다.

데뷔 초 힙합을 무기로 한 BTS가 어린 층을 공략하다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몸을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트렌드를 입혀 다른 세대와의 접점을 넓힌 것도 세계 팝 문법을 따른 셈이다.

미국 CBS 스티븐 콜베어쇼에서 비틀스처럼 꾸민 방탄소년단. /사진제공=CBS Scott Kowalchyk<br>
미국 CBS 스티븐 콜베어쇼에서 비틀스처럼 꾸민 방탄소년단. /사진제공=CBS Scott Kowalchyk
김 평론가는 “시대가 변했는데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 음악은 도태될 수 있다는 방증을 BTS가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며 “무엇보다 단단한 팬덤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세계에 진출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BTS 음악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BTS를 좋아할 생각이 별로 없다고 볼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어떤 세대든 쉽게 따라 부를 보편적 감성의 멜로디나 ‘국민송’의 생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 그것.

중견 기획사 D이사는 “노래에 대한 ‘연모’ 이후에 가수(그룹)에 대한 ‘연대’가 이뤄진 전통적 패러다임이 순식간에 바뀐 것 같다”며 “조용필, 산울림, 서태지, 김건모 등이 자신의 존재보다 (국민) 곡으로 파란을 일으킨 전례를 떠올리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변화된 매체와 달라진 세대의 감각을 현실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워크맨 시절의 반복 재생하던 음악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며 “매체 환경이 달라지고,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진 현실에선 ‘무엇이 감각되는가’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BTS의 음악을 노래, 춤, 퍼포먼스 등으로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동급 최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그 음악은 사랑받는 것”이라며 “그들의 음악은 노래에 갇히지 않고 노래·춤에서 문학까지 뻗어 가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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