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판결 선고 마친 겁니다. 그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법정. 주문을 읽었음에도 피고인이 법정을 나가지 않고 서 있자 재판장이 건넨 말이다. 자신에 대한 선고가 끝났는지도 몰랐던 피고인은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판결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드문 풍경이 아니다. 판결 선고가 끝나고 나서도 '그게 무슨 뜻이냐'며 판사에게 묻다가 경위의 제재를 받고 쫓기듯 나가는 피고인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내용이 복잡하고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사건일 경우 이런 모습을 더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판결 이유의 요지를 '적절한 방법'으로 설명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맡아왔던 의뢰인 중 90%는 자기 사건의 판결문을 받아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대강 승소했구나 패소했구나 정도는 알지만 법리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나 세세한 법령해석은 전혀 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글로 써 있는 것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데 법정에서 판사가 하는 말은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겠냐"며 "다만 아주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해주는 재판장을 만나면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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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도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한 판사는 "개인적으론 피고인에게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대법원 차원에서도 전반적인 법정 언행에 대해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등 신경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판사의 언어는 어렵다. 몇십 년 법을 공부한 판사와 생전 처음 법정을 찾은 사람의 이해도가 같을 수는 없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에서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다면 억울한 감정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을 모르는 재판 당사자를 배려하려는 판사의 마음가짐은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모두 전해지기 마련이다.
사법 불신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초동에는 매일 자신에 대한 판결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재판장의 충분한 설명과 배려가 이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지나친 낙관일까.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판사의 노력도 사법부에 대한 믿음을 다시 쌓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