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가지 말라는데 왜"…여행자유 vs 공공안전 '딜레마'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최태범 기자, 백지수 기자, 강기준 기자 2019.05.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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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재외국민보호영사조력법(종합)

편집자주 해외여행 3000만명, 재외동포 300만명 시대가 코앞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국력 신장을 보여주는 지표지만 분쟁 지역 확대로 재외국민의 안전 우려도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자국민 보호는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다. 이에 앞서 개개인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수하라는데도…해외여행 3000만명 '안전책임' 어디에?
피랍 구출 한국인 '철수권고' 말리도 경유...'여행 자유vs공공 안전' 충돌 논란
신원미상의 한국인 여성 1명이 11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서부 부르키나파소의 무장단체 납치범들에게 붙잡혀 억류돼 있다 풀려나 프랑스 파리 인근 빌라쿠블레 군 비행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날 공항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마중을 나와 석방된 3명을 맞이했다. 함께 구출된 미국인 여성은 이들과는 별도로 미국으로 이송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스1신원미상의 한국인 여성 1명이 11일(현지시간) 아프리카 서부 부르키나파소의 무장단체 납치범들에게 붙잡혀 억류돼 있다 풀려나 프랑스 파리 인근 빌라쿠블레 군 비행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날 공항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마중을 나와 석방된 3명을 맞이했다. 함께 구출된 미국인 여성은 이들과는 별도로 미국으로 이송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스1


“국가의 의무는 국민이 어디에 있든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군인이 숨졌다. 정부의 여행 관련 권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파리 근교 빌라쿠블레 프랑스 공군 비행장.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프랑스군에 구출된 피랍자(프랑스인 2명·한국인 1명)들이 도착한 후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이 회견에서 한 말이다.



재외국민 보호는 국가의 당연한 의무지만 위험 지역 여행을 자제하라는 정부 권고를 무시해 애꿎은 생명이 희생됐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이번 작전 과정에선 프랑스 특수부대원 2명이 사망했다. 프랑스에선 피랍자들의 무사 귀환엔 안도하면서도 이들의 위험천만한 모험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국내에서도 논란이 한창이다. 재외 국민의 안전과 권익 보호를 위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의 범위를 두고서다. 한국인 장모씨는 지난 달 12일 부르키나파소 남부 베냉 국경지대에서 미국인 1명과 납치됐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프랑스인들과 함께 가까스로 구출됐다.



억류된 지 28일 만에 구출될 때까지 정부가 장씨 소재와 신변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대로 장씨가 스스로 위험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적잖다.

장씨는 세계일주를 위해 약 1년 반 전인 2017년 말 출국했다고 한다. 지난 1월 유럽에서 모로코로 이동해 아프리카 여행길에 나섰다. 세네갈과 말리를 거쳐 부르키나파소에서 베냉으로 버스로 이동하다 피랍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리카는 정정이 불안하고 내전을 겪는 국가들이 많아 중동 지역과 함께 대표적인 여행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 이번 피랍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카티바 마시나’처럼 민족적·종교적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무장세력도 많다.
[MT리포트] "가지 말라는데 왜"…여행자유 vs 공공안전 '딜레마'

장씨가 들른 경유국들도 대부분 여행경보가 발령된 국가들이다. 부르키나파소의 경우 북부 4개주는 적색경보인 ‘철수권고’(3단계), 나머지 지역은 황색경보인 ‘여행자제’(2단계) 지역이다. 말리 전역엔 ‘철수권고’ 경보가 적용돼 있다.

세네갈은 남색경보인 ‘여행유의’(1단계) 국가다. 모로코의 경우 수도인 라바트와 카사블랑카는 ‘여행유의’, 남부는 ‘여행자제’ 지역이라고 한다. 긴급 용무가 아니면 철수하고 가급적 여행을 취소해야 하는 말리까지 경유했던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장씨가 주관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했는지는 확인해봐야 한다”면서도 “상당히 위험한 지역을 통과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맞다”고 했다. 외교부는 이번 사건을 인지할 만한 정보도 사전에 전혀 접수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장씨 가족과 주변 지인의 신고, 정보기관 첩보, 공관 민원 접수, 해외 외신 보도 등이 전무해 사전 인지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납치한 무장세력도 전혀 연락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론의 책임론도 정부보단 개인의 ‘안전불감증’에 더 가까운 흐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재외공관은 첫째도, 둘째도 재외국민의 안전과 권익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여행 3000만명, 재외국민 300만명, 해외 사건·사고 연 2만건 시대를 맞아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국회도 지난해말 영사 조력 범위와 한계를 반영해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2021년 발효된다.

문제는 연인원 3000만명에 달하는 재외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부가 일일이 파악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재외국민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개입은 국민의 기본권과 사생활 보호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외교부 당국자는 “거주 이전의 자유와 여행의 자유라는 기본권 부분과 공공의 안전이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며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외교부는 부르키나파소 동부지역의 여행경보를 2단계 ‘여행자제’에서 3단계인 ‘철수권고’로 상향하고, 베냉엔 여행경보 발령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중동 등 위험지역의 여행경보 수준도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프랑스 등 위기관리 선진국과 공조체제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며 “이번에 공조한 프랑스와 한-프랑스 의향서(LOI)를 채택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상헌 기자

'철수권고·여행자제' 방문해도 '여행금지' 아니면 처벌 안돼
정부 재외국민 보호위해 '여행경보제도' 운영...4단계 여행금지 위반시에만 형사처벌

[MT리포트] "가지 말라는데 왜"…여행자유 vs 공공안전 '딜레마'
한국인 장모씨가 서아프리카 '철수권고' 지역인 말리를 경유해 '여행자제' 지역인 부르키나파소 남부에서 피랍됐다 가까스로 구출되면서 정부가 권고하는 '여행경보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여행경보는 특정국가 여행·체류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국가·지역에 대한 경보를 지정해 위험수준을 경고하고 이에 따른 행동지침을 안내하는 제도다. 해외 주재원·출장자, NGO, 선교사, 여행자 등 해외에 체류하는 모든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민 안전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수시로 여행경보 단계를 변경한다"며 "짧게는 월, 길게는 반기별로 이미 지정된 여행경보 단계의 적정성을 검토해 변경한다"고 말했다.

여행경보 지정은 재외 공관의 상시 모니터링과 검토 의견서 제출, 국가정보원 등 관련기관의 검토, 외교부 본부 종합 검토 등을 통해 결정·조정한다. 해당 국가의 치안정세와 테러위협, 자연재해 및 기타 위험요인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정한다.

여행경보는 △여행유의(남색경보) △여행자제(황색경보) △철수권고(적색경보) △여행금지(흑색경보)의 4단계로 구성된다. 여행유의 지역의 해외 체류자는 신변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여행자제 지역에선 신변안전에 특별히 유의하라는 권고가 내려진다. 철수권고는 긴급 용무가 아닌 한 철수, 여행금지 지역은 즉각 대피·철수가 필요하다.

현재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리비아, 필리핀 일부 지역 등 7개 국가가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여행금지 지역 권고 위반은 여권법상 금지돼 있다. 이들 지역 여행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행정 제재도 따른다. 하지만 1~3단계 여행경보 위반에 따른 처벌은 없다. 장모씨의 경우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외교부는 여행경보에 지정되지 않은 국가들에 대해서도 여행자 스스로의 충분한 안전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는 “여행경보가 지정돼있지 않다고 해서 특정국가나 지역이 반드시 안전하다는 사실과 직결되는 것은 아님을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행경보 지역은 ‘알고 챙기고 떠나고’(www.0404.go.kr)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오상헌 기자

12년 전 '샘물교회' 선교사 탈레반 피랍 사건 '판박이'
개인 여행자유 vs 정부 보호책임…정부 영사조력은 ‘제한된 범위’

[MT리포트] "가지 말라는데 왜"…여행자유 vs 공공안전 '딜레마'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피랍 구출 사건처럼 개인의 여행 자유와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 책임 문제는 해묵은 단골 이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샘물교회 사건’은 이번 부르키나파소 사건과 닮아 있다. 선교 활동을 갔던 봉사단이 탈레반 무장 세력에 피랍됐다가 2명은 사망하고 21명은 40여일 만에 풀려난 사건이다.

개인의 안전사고와 관련해서도 정부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해 말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년에서 추락사고를 당한 20대 한국인 청년에 대해 정부가 병원비·이송비를 지원해야 하는지를 놓고 청와대 청원이 제기되며 사회적 논쟁이 뜨거웠다.

정부는 태풍·지진 등 재해 재난을 비롯해 살인·강도·상해·절도·납치·테러 등 범죄 피해에 대한 ‘영사조력’을 제공한다. 영사조력이란 재외공관들이 해외체류 중인 우리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공하는 영사 서비스다.

지난해 10월 사이판을 강타했던 태풍과 인도네시아 강진으로 우리 국민들의 발이 묶였을 때 정부는 군 수송기를 투입 국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송한 것이 대표적인 실례다.

영사조력이 정부의 '무한책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권분실 여행객의 여권 재발급 △현지 의료기관·사법체계 정보 제공 △긴급 상황 발생시 우리 국민의 안전확인 및 피해자 보호지원 등으로 한정된다.

조력의 범위를 넘어선 업무도 정부의 영사조력에 해당되지 않는다. △벌금대납·비용지불(의료비·변호사비 등) △예약대행(숙소·항공권 등) △병원과 의료비 교섭 △사건·사고 관련 보험회사와의 보상교섭 △구금자 석방·감형을 위한 외교적 협상 등이다.

해군 청해부대가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했던 ‘아덴만 여명작전’의 경우 영사조력이 아닌 군 작전이었다.

정부의 영사조력 책임 범위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에 따라 해외 우리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책무가 법률로서 규정됐기 때문이다. 영사조력법은 2021년 1월 16일 시행된다.

이와 맞물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안전을 지키려는 인식 변화도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여행경보가 지정돼있지 않다고 해서 특정국가나 지역이 반드시 안전하다는 사실은 아니다"라며 "여행자 스스로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 강조했다.

10년 만에 탄생한 '해외여행자보호법'…구호 비용은 누가?
지난해 말 국회 통과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서아프리카 피랍 구출 한국인에게는 미적용
[MT리포트] "가지 말라는데 왜"…여행자유 vs 공공안전 '딜레마'
#해외여행을 간 한국인 A씨. 여행지에서 테러 피해를 당했다. 정부는 '법에 따라' 구호 책임을 져야 할까? 2019년 5월 현 시점에서 답은 '아니다'다.

2년 후 2021년 1월16일부터 답이 바뀐다. 지난해 마지막 국회 본회의(2018년 12월27일)를 통과해 지난 1월 공포된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이하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이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되기 때문이다.

◇국가는 '무조건' 책임진다? NO!=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은 이민이나 해외 파견 거주·해외여행·출장 등으로 출국했다가 해외에서 각종 재난에 휘말린 대한민국 국적의 '재외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이를 위한 정부(외교부)가 재외국민의 신체·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하는 한편 적용될 수 있는 '영사업무'의 범위를 구체화했다.

다만 국민들이 정부의 영사 서비스를 '무조건'적 의무로 간주하고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국민이 영사 조력을 남용하거나 공무원들에 대한 폭행·협박 등을 할 경우 정부가 먼저 영사 조력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기본적으로 재외국민 본인이 부담하게 했다. 다만 재외국민이 정말 지불 능력이 없거나 정부가 재외국민을 강제로 대피시킬 경우 발생하는 비용 등에 한해서만 정부가 부담하도록 명문화했다.

이번 서아프리카 한국인 피랍 구출 사건이나 지난해 말 미국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년 사고 당시 '귀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지만 앞으로 법이 시행되면 관련 법 조항에 따라 판단할 근거가 생긴다.

◇'영사콜센터'는 있는데 법이 없었다= 법이 이제 막 만들어졌지만 외교부는 그동안 헌법에서 규정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지키기 위해 영사 서비스를 해왔다. 지금도 해외에 도착한 우리 국민에게는 외교부 영사콜센터에서 안전여행 안내 문자가 도착한다.

여권 분실부터 질병·부상, 재해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당하거나 긴급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영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는 모두 외교부 행정규칙('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지침')에 따른 행정 서비스다. 영사콜센터가 2004년 이라크 무장단체의 한국인 피살 사건(김선일 사건) 이후 세워져 운영된지 올해로 15년째인데 법 제정이 미뤄진 탓이다. 이를 두고 ‘위헌’이라는 지적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헌법 제2조 2항이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지만 정작 이 의무를 규정한 ‘법’이 없어서다.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정부로서도 관련 예산 확보나 영사조력 업무 확대에 어려움이 뒤따랐다. 2017년 3월13일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록 중 김완중 당시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의 발언에서 애로사항이 읽힌다.

김 당시 국장은 "각 공관 1명 또는 0.5명의 영사 인력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제한된 정부 예산과 인력을 활용해야 하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한편으로는 법이 제정될 경우에도 난색을 나타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영사조력 업무에 필요한 예산이나 인력·인프라 확보가 미진할 경우 위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였다.

◇'첫 등장' 14년 만에 국회 문턱 넘은 법= 이런 우려 속 관련법 제정은 계속 미뤄졌다. 첫 발의부터 통과까지 14년이 걸렸다. 17대 국회 초기인 2004년 8월 이성권 한나라당 의원이 '재외국민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의한 후 17대 국회에서 권영길(민주노동당)·김성곤(민주당)·김정훈(한나라당) 등 의원이 여야 없이 법 제정을 제안했다. 이후 19대까지 재외국민보호법이 매 국회마다 여러 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중 김정훈 의원은 18~20대까지 매번 같은 법을 발의하다 20대 국회 후반기에 와서야 법 통과를 볼 수 있었다. 국회를 통과한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은 김 의원안과 설훈·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등 3건이 합쳐진 대안이다. 이중 이석현 의원이 '재외국민보호법'을 철회하고 '재외국민보호 영사조력법'으로 재발의한 뒤 기존 두 개 안과 병합심사된 결과물이다.

재외국민보호법이 좀 더 정부의 의무와 책임을 더 강하게 담고 있던 반면 '영사조력법'으로 법안 명칭이 바뀌며 법 성격이 실제 영사조력 업무에 대한 근거 규정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영사조력 거부권이나 국민의 영사비용 상환 의무 등을 인정한 부분이 그 예다.

이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당시 기존 법안에 대해 외교부가 '인프라 구축이나 인원을 더 써야 해서 예산이 많이 들지 않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정부 측과 조율해 법안을 내면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 시행까지 2년이 남은 가운데 국회에는 벌써 '개정안'이 등장했다. 기존 안에서 담지 못한 영사협력원제도(재외공관이 없는 지역의 민간인에게 영사 업무를 돕도록 하는 제도)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 대표발의 개정안이 지난달 발의돼 계류 상태다.

백지수 기자

딜?노딜? 전세계가 '인질 몸값' 딜레마
일본 과거 전국민적 인질 구출 공감대서 "왜 갔느냐" 비판으로...'노딜' 미국은 오히려 몸값 주고 구출해달라 청원
/사진=로이터통신./사진=로이터통신.
프랑스가 지난 10일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4명의 인질을 구출한 뒤 비난 여론으로 들끓고 있다. 구출 과정에서 2명의 특수부대 대원이 전사하면서다. 프랑스 외무장관은 "왜 위험한 곳에 갔는지 설명하라"고 질타했다. 정치권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인질을 영웅처럼 맞이해서는 안된다"고 했고, SNS에서도 "구출 비용을 물어내라"는 등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았다.

위험한 여행지에서 피랍된 이들을 향해 동정보다는 비난 여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무장단체들이 선진국 국민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는 인질극이 끊이질 않는 곳에 왜 제 발로 걸어들어가 국가와 국민에게 폐를 끼치냐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본은 과거만 해도 자국민 인질들에 대한 몸값 등 구출비용을 지불하는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엔 비판론이 더 세지고 있다. 통신은 "과거에만 해도 일본 정부는 납치단체와 자국민 모두에게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알렸지만, 최근에는 더 조심스럽게 변했다"고 전했다.

일본은 1999년 키르기스스탄을 비롯해 북한, 필리핀 등에서 납치된 자국민에게도 몸값을 지불하자는 분위기였다. 본인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근거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에는 시리아에서 피랍됐다가 40개월만에 풀려난 언론인 야스다 준페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가 시리아를 피난 권고 지역으로 지정했음에도 야스다가 이를 무시해 국가에 큰 피해를 끼쳤다는 비판이었다. 당시 카타르가 몸값 3억엔(약 30억원)을 지불하고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지불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2015년에는 일본인 2명이 이슬람 무장 세력에 납치돼 이중 한명이 참수됐는데, 아들의 죽음에도 아버지는 "피해를 끼쳐 죄송하다"고 전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반면 미국은 테러단체들에게 인질 몸값은 절대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수년간 몸값을 지불해서라도 자국민을 구해오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2014년 테러단체 ISIS는 미국인을 납치한 후 1억달러가 넘는 몸값을 요구하다 미국이 끝내 거부하자 참수했다. 당시 프랑스는 몸값을 주고 인질을 구출했다. 지난 4월엔 우간다에서 테러단체가 미국인 여성 관광객을 납치한 후 몸값 50만달러를 요구했는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피랍자 가족에게 "몸값 지불도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를 더 할 명분만 준다"며 "우리는 그런 위험을 용납할 수 없고, 우리에게 그런 요구를 해선 안된다"고 강경한 원칙을 재확인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테러단체가 몸값으로 받은 금액은 1억6500만달러(약 2000억원)에 달하며 ISIS는 2014년 한해에만 4500만달러(약 534억원)를 몸값으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에서 받는 돈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인이 납치되는 경우도 훨씬 적다"고 말했다.

강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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