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출산 하루 전 낙태가 하고 싶어졌다?"

머니투데이 이해진 기자 2019.05.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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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그후 한달]③헌재, 22주 이후 낙태 원칙적 금지…성폭력 임신 늦게 안 경우는?

편집자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지 11일로 한달째다. 정국경색으로 내년 말까지 만들어야 할 대체입법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그 사이 현장에선 의사들도, 임신여성들도, 하물며 행정처분을 해야 하는 보건복지부도 혼란에 빠져 있다.

[MT리포트]"출산 하루 전 낙태가 하고 싶어졌다?"


#.성폭력상담센터 간호사 A씨는 임신 23주차에 센터를 찾은 10대 피해자에게 제휴병원을 소개해줬다. 성폭력에 의한 임신으로 합법적인 낙태가 가능하지만 병원은 임신기간이 너무 길어 위험하다며 거절했다. 배가 불러가던 피해자는 결국 종적을 감췄다. A씨는 "결국 음성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낙태를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 허용 임신기간(주수)을 22주 이내라고 명시했다. 임신 22주는 WHO(세계보건기구)가 태아의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기다.



관련법 개정안도 '22주 허용' 기조에 발맞춰 진행 중이다. 지난달 15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은 모체 건강에 위협이 없는 한 22주 이후 낙태를 금지했다. 성폭력에 의한 임신도 금지다. 위반 시 의사에게 과태료 500만원 처벌 규정을 뒀다.

이에 대해 여성계와 일부 보건의료계에서는 낙태 가능 임신기간을 법에서 제한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후기 임신중지는 위험하기 때문에 원하는 여성이 드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외과적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 682명의 95.3%가 임신 12주 안에 임신중지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기간 임신과 위험성에도 후기 임신중단을 원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이 여성계의 주장이다.

제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은 "후기임신 중지를 두고 '그럼 출산 하루 전 아이를 꺼내 죽여도 되냐는 것이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후기까지 잘 유지해오던 임신을 갑자기 중지하려는 여성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기 임신 중지를 필요로 한다면 지역·연령·장애· 질병 등에 따라 (낙태를 선택할) 시기가 미뤄지는 경우"라며 "처벌이 아니라 후기 임신중지를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요건을 줄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물지만 후기임신중지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함성 여성건강권수호협회 활동가는 "10대 뿐 아니라 성인 여성 가운데도 22~23주에서야 임신 사실을 알고 성폭력상담센터를 찾는 경우가 있다"며 "법적으로 성폭력에 의한 임신을 인정받으려면 수사를 거쳐 재판까지 몇 개월씩 걸린다"고 지적했다. 후기 임신 원천봉쇄시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해외 역시 기준 임신기간 이후라도 의료진이 임신중절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시술할 수 있도록 한다.

프랑스는 기준인 임신 14주 이후에도 의사 2명이 '임신 유지가 여성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길 우려가 있다'는 진단서를 정부에 제출하면 임신중지가 가능하다. 스웨덴은 보건당국 위원회 심사로 '출산 후 태아 생존 불가능시' 24주 이후 낙태가 허용된다.

후기 임신중지 허용이 생명 경시 풍조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도 있다. 하지만 임신중단에 대한 기간 제한이 없는 캐나다의 임신중단은 대부분 초기에 이뤄진다. 2017년 캐나다의 전체 임신중절 2만2087건 가운데 12주 이내가 1만4585건으로 66.03%인 반면 21주 이상은 706건으로 3.19%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관련법 개정 방향이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후기임신 중지는 국가가 아닌 여성이 의료진과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정부는 후기 임신중지 때 여성에 가해지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출산 후 입양 등 다른 방법은 없는지 등 당사자가 정보를 충분히 얻고 결정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법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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