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경제, 유척(鍮尺)정신 그리고 추경

머니투데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2019.05.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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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사진=김창현 기자 chmt@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유척(鍮尺)’이란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와 함께 지니고 다니던 도량형이 표시된 20cm 크기의 놋쇠 금속막대이다. 이는 당시에 구휼미를 나눠줄 때는 정해진 것보다 작은 쌀 됫박을, 세금을 거둘 때에는 정해진 것보다 큰 쌀 됫박을 사용하여 백성을 괴롭혔던 탐관오리를 찾아내기 위한 도구였다. 곧 유척은 정확, 공정, 균형을 상징했다. 우리 선조들의 유척정신은 오늘 날 경제를 운용함에 있어서도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첫째,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정책처방을 마련함에 있어 이 유척정신이 관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바라보고 그 상황에 맞는 적확하고 균형감 있는 정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둔화되고 우리 경제가 지닌 구조적, 경기적 요인 등으로 투자․수출 등이 부진한 지금 상황을 정책당국은정확히 그리고 엄중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제심리지표가 조금씩 개선되고 고용․산업활동지표 등이 일부 긍정적 흐름을 보이는 측면도 함께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당국자로서 근거없는 낙관론을 경계해야 하지만 비관적 심리 확산으로 우리 경제가 실제보다 더 위축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대한 객관적인 상황 인식을 토대로 지금 투자활력, 수출대책, 산업혁신, 재정집행, 규제혁파 등 필요한 정책대응을 다각적으로 기울여 나가고 있다. 물론 일부 프로콘(pro-con)이 극명한 정책의 경우 최대한 관점의 균형, 이익의 균형이라는 잣대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둘째, 조세와 예산 등 국가재정을 운용함에 있어서도 유척정신은 커다란 준거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조세의 경우 그 규모를 최대한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를 부과․징수함에 있어서도 공정․형평의 가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큰 규모의 초과세수가 발생하였는데 세수의 과부족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코스트를 수반하기 때문에 세수예측은 유척만큼 정확한 잣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는 보다 정확하게 세수예측이 이루어지도록 세수추계 절차와 모형 개선작업을 진행중이며 아울러 공평과세를 위해 세율 조정, 감면 개편, 탈세 예방 등에도 적극 대응해 나가고 있다.



한편 예산의 경우도 한정된 재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선순위와 지원규모 등에 대한 정확한 판단잣대, 그리고 여타 분야, 사업과의 형평을 고려한 공정․균형잣대가 매우 중요하다. 곧 2020년 예산편성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앞으로 재정여건이 어려워 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단 한 푼의 국민세금이라도 아껴쓰기 위해 재정상의 유척이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이러한 경제인식과 재정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결과, 정부는 지난 4. 25일 6.7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무엇보다 미세먼지 저감과 경기 선제대응을 통한 민생안정이라는 두 가지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로서는 경제상황에 대한 정확한 진단 기초, 재정보강이라는 꼭 필요한 수단 동원, 그리고 재정여건과 재정역할을 균형있게 고려한 추경 편성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일각에서 추경규모가 작지 않느냐 하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과거 11~12조원 추경의 경우 지방교부금, 국가채무상환 등이 약 절반 정도 차지해 순 추경규모는 6조원 전후 수준이었다. 반면 금번에는 교부금, 채무상환 없이 순 사업추경 규모로만 6.7조원을 편성하였기 때문에 결코 작은 수준이 아니다. 특히 지난 해의 초과세수로 인해 지난 달(4월) 지자체와 교육청에 이미 교부한 교부금이 모두 10.5조원 이었으므로 과거와 같은 비교를 위해 이들을 합할 경우 17조원이 넘는 규모이기 때문이다.


미세먼지와 경기 선제대응을 위한 이번 추경예산은 그 어느 때보다 ‘타이밍’과 ‘속도’가 관건이다. 따라서 국회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내 추경안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여기에 더해 지방에 이미 교부된 추가재원이 지방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귀하게 쓰여지기를 또 기대한다.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정확, 공정, 균형의 유척 하나’를 늘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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