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가장 비참한 나라, 6년 더 집권하려는 대통령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5.06 07:00
글자크기

[세계人세계IN]
베네수엘라 마두로 집권 5년간 인구 10% 탈출
GDP 3분의 1 토막, 올해 물가 1000만%↑ 예상

편집자주 인물(人)을 통해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더 깊이있게(IN) 들여다 보려 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해의 폭도 그만큼 넓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먼 나라의 상관 없는 일이 아닌, 이웃 나라의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AFPBBNews=뉴스1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AFPBBNews=뉴스1


"나는 대통령이 되길 열망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말한 것을 존중한다. 우리가 이 직책에 있는 동안 겸손하게 입어야 하고 거리의 모든 남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2014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현 대통령(만 56세)이 영국 매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5년.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그의 재선에 부정을 의심하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AP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시작된 사흘 간의 반정부 시위에서는 15살 소년을 포함해 총 다섯 명이 숨졌고 200여명이 다쳤다. 올해에만 시위로 58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이 되길 열망한 적 없다던 그는, 국가 혼란 속에서 지난해 조기 대선을 이겨 2025년까지 임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2013년 취임했으니 12년의 집권인 셈이다.



◇운전수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 vs 운도 카리스마도 없는 엉터리 쇼맨=가디언은 이런 상황을 만든 마두로에 대해 "그의 전임자가 가졌던 가장 위대한 두 개 자산인 카리스마도, 행운도 없다"며 "마두로는 재정적 무능과 이데올로기적 허무함을 노출해 엉터리 쇼맨임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혹평했다.

가디언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 전임자 차베스를 떼어놓고 마두로를 생각할 수 없다. 2013년 마두로가 야당 후보를 1.5%포인트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는 차베스의 후광 효과도 분명 작용했다.

차베스는 군인 출신이자 쿠데타를 시도한 정치인이며 44살의 나이로 베네수엘라 최연소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오일머니'를 밑천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21세기 사회주의'란 이름의 개혁을 추진했다. 빈민이 정착할 집을 지어주고 무상 의료를 실시하고 싼 값에 식료품을 제공하는 국영 소매점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좌편향 정책으로 인해 일부 기득세력으로부터 반발을 부르기도 했지만 그는 1999년부터 2013년까지 4선에 연임, 무려 14년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2013년 그는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마두로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버스 운전기사로 취직했다. 노조활동을 하면서 정치권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차베스가 결성한 조직 'MBR-200(볼리바르 혁명운동 200)'에도 가입한 적이 있다. 운전기사 출신의 마두로는 어떻게 차베스와 연을 맺었을까?

차베스가 쿠데타에 한 차례 실패하고 투옥됐을 때, 마두로는 그를 직접 면회하고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적이 있다. 마두로는 그 때 차베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게 된다. 차베스 집권 이후 마두로는 제헌의회 의원, 국회 의장, 외교부 장관, 부통령 등에 오르는 등 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최측근의 길을 걷게 됐다.

마두로는 스스로를 '신(차베스)을 따르는 사도'라고 칭하는가 하면 2013년 대권을 쥔 이후에는 "차베스가 이끌었던 14년이 연장되는 것이다. 차베스여 영원하라"고 외치는 등 차베스의 후계자 역할을 이어갈 것임을 강조했다.

5년째 가장 비참한 나라, 6년 더 집권하려는 대통령
◇6년 새 GDP는 3분의 1 토막…생활고에 인구 10%는 '탈출'=베네수엘라 혼란은 마두로가 집권한 이듬해 유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시작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는 2014년 한 해에만 46% 떨어졌는데 이는 연간 기준 2008년 이후 최고 하락률이었다. 미국이 당시 셰일오일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미국 원유 생산량이 급증한 점 등이 영향을 끼쳤다.

베네수엘라는 국가경제의 90% 이상을 석유 수출에 의존해왔다. 유가 급등락에 상당히 취약한 경제구조인데도 호황에 취해 적절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알자지라는 "2000년대 치솟은 유가는 차베스가 복지프로그램에 국부를 이용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2014년 유가 급락 때 마두로 대통령은 그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마두로가 취임할 때쯤 이미 경기는 하향 조짐이 보여 복지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적자재정을 운영해야만 했는데 마두로는 후자를 택했다. 돈이 부족하면 국채를 더 발행하고, 화폐를 더 찍고, 최저임금을 주기적으로 올렸다. 이것이 실책이었다.

국가경제가 무너졌다. IMF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마두로가 집권한 2013년 2344억달러에서 지난해 985억달러로 60% 가까이 감소했다. 올해에는 765억달러로 취임 연도 대비 3분의 1 토막이 날 전망이다.

물가 역시 치솟으며 국민을 힘들게 했다.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인플레이션율은 169만8488%. 올해는 1000만%에 이를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예상한다. '커피값만 1년 새 3500배 오르는 나라'라는 말도 이처럼 미친 물가상승률에서 비롯됐다.

국민들의 생활고 속에도 마두로가 2017년 제헌의회를 꾸려 장기집권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그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잇따라 경제 제재를 가했다. 외환이 들어올 길이 좁아지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더욱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지난 4월 블룸버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5년째 '가장 비참한 국가' 1위를 차지했다. 블룸버그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등을 토대로 매년 '비참 지수(Misery Index)'를 산출한다.

극심한 생활고는 두 가지를 남겼다. 탈출 또는 봉기. UN에 다르면 베네수엘라에서 2014년 이후 300만명 이상이 탈출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약 10%에 달하는 수준이다.

마두로는 지난달 30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촉발된 지 사흘 만인 지난 2일 군 수뇌부를 대동하고 나타나 시위 진압에 일단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고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다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마두로의 반대편에 선 인사이자 베네수엘라 임시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의 정치적 멘토인 레오포드 로페즈 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시장은 "잠시 휴식이 시작됐다"며 "그러나 지난달 30일 시작된 분열은 더 큰 균열을 불러오고, 이 균열은 다시 제방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