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에볼라' 美中 무역협상에까지 영향 줬다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2019.05.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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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中서 발병, 이후 동남아 확산… 돼지고기값 급등, 세계 식량 사슬도 충격

치사율 100%, 백신 없는 돼지 전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덮친 중국. /AFPBBNews=뉴스1치사율 100%, 백신 없는 돼지 전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덮친 중국. /AFPBBNews=뉴스1


지난해 중국 동북부의 작은 돼지농장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세계 식량 사슬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치사율 100%, 백신 없는 바이러스가 아시아 주요국으로 퍼지면서 육류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진원지인 중국에서는 돼지고기 가격 급등이 전체 물가를 들썩이게 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세계 돼지 사육을 절반을 담당하는 중국에서 '돼지 에볼라'로 불리는 치명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African Swine Fever)이 발병한 건 지난해 8월이다. 중국 랴오닝성 성도 선양 외곽에서 380여 마리의 돼지를 기르던 농가에서 갑자기 47마리가 죽었다. 사인을 알아보니 ASF에 감염돼 있었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는 즉시 해당 농가 돼지를 매몰 처리하고 주변 지역 가축 이동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ASF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이러스는 이미 중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첫 발병 이후 9개월이 지난 현재 ASF는 중국 전역을 넘어 몽골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으로 확산했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약 100만마리의 돼지를 도살 처분했으며, 올해까지 추가로 1억마리 정도가 살처분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온다. 이는 미국 한해 돼지 생산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소비국인 중국에서 ASF로 돼지 대란이 발생하자 세계 식품시장도 충격을 받았다. 중국 내 돼지고기 가격은 이미 한 해 전보다 19% 정도 올랐으며,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 다른 나라 돼지고기 가격도 요동쳤다. 중국이 부족한 공급량만큼 돼지고기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 베이컨 가격이 지난 3월 20% 뛰었으며, 독일에서도 돼지어깻살 값이 17% 올랐다. 지난해 말 3.8달러 정도이던 미국 햄값도 최근 4.3달러로 13% 상승했다. 돼지고기 대신 다른 고기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소고기와 닭고깃값도 덩달아 급등했다.

블룸버그는 "돼지고기는 중국 물가 지표 산정의 가장 큰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라며 "돼지고깃값이 두 배 오르면 애초 2.6% 정도로 예상되던 올해 중국의 물가상승률이 5.4%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만약 물가상승률이 상한선인 3%를 넘으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돼지고기 가격 급등이 중국의 경기 침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ASF가 미·중 무역 협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ASF 확산을 막기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야 하는 중국 정부가 무역 합의에 조급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무역 협상이 타결되면 미국산 육류 수입도 늘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국제개발센터(CGD)의 아만다 글래스먼 최고운영책임자(CEO)는 "ASF는 전염병 확산에 대비하기 위한 국가적 투자 필요성을 보여준다"며 "인간과 동물 질병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 대해 모두가 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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