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2일 세종청사에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정부는 당초 3월 말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이날도 화재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전력이 필요할 때 방출하는 설비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쓰려면 꼭 필요한 장치다.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ESS 보급을 확대해 왔다.
정부는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올해 초 다중이용시설과 별도 건물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 공장용 ESS에 대해 가동중단을 요청했다. 현재 총 1490개 ESS 사업장 중 35%인 522개가 멈춰선 상태다. 나머지 사업장은 제조사별로 안전강화조치를 취한 뒤 가동 중이다.
정부는 이날 가동중지 권고를 받아들인 ESS 사업장에 보상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동을 중단한 기간 만큼 전기요금 특례제도를 이월하거나 REC(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 가중치를 추가 지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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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ESS 신규 설치 발주가 이뤄질 리 없다. 올 들어 국내 ESS 발주는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ESS의 핵심 설비는 배터리다. LG화학과 삼성SDI 등이 ESS용 배터리를 공급한다. 모두 1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전기차용 배터리 수출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가운데 실적을 받쳐줘야 할 ESS용 배터리 출하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정부가 사실상 ‘주홍글씨’를 새기고 있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한 대형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60여 차례나 관련 회의를 하고도 아직 화재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면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며 “잘못이 있으면 빨리 바로잡고 새로운 방향으로 생산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배터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한국산 배터리가 수출되는 모든 지역의 ESS에서 발화 사고가 발생하고,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서도 발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런 사례가 접수된 적 있느냐”며 “정확한 근거도 없이 정부가 배터리 업체들의 문제인 것 처럼 몰아가면서 해외 수출 물량도 뚝 끊겼다”고 주장했다.
ESS가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 시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무책임을 질책하는 목소리도 높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에 설치된 1490개 ESS 중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용 ESS 비율은 52%인 777개에 달한다. 사실상 ESS 시장은 신재생에너지 시장과 동반 성장하는 관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화재 원인을 입증해놓고도 발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 정부에서 집중 육성해 온 신재생에너지 설비 업체들의 구조적 결함이 확인될 경우 에너지정책 전반의 신뢰도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신뢰할만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면 정부가 앞장서서 신성장동력의 불을 끄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