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럽과 북미 순방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각국 주요 정상들과의 면담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말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WTO의 분쟁해결 방법에 문제를 제기하며 "G20 의장국으로서 WTO 개혁에 공헌하겠다"고 말했다.
앞선 25일(현지시간)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회담한 뒤 "G20이 자유무역의 추진과 WTO의 개혁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져야 한다"며 WTO 개혁을 위해 EU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몽니'는 분쟁해결기구(DSB) 상소위원 임명 문제로 이어졌다. DSB는 WTO 분쟁의 최종심(2심)을 담당하는 '대법원' 역할의 기구다.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지난해 9월 스리 바부 체키탄 세르반싱 위원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현재는 최종심 재판부 구성에 필요한 최소인원인 3명으로 운영 중이다. 새 상소위원을 선임하려면 164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이 아예 신규위원 선임 절차를 '보이콧'하고 있어 임명이 어려워졌다. 올해 12월이면 위원 2명의 임기가 추가로 끝나 1명만 남는다. 그때까지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WTO의 분쟁 해결 시스템은 완전히 마비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일본-EU 정상회의를 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실제로 아베 총리는 WTO 개혁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이번 후쿠시마 수산물 관련 판정이 부당하다는 점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주로 문제삼는 상소위원 부족 문제는 미국의 위원 선임 반대에서 비롯된 결과다. 현재 상소위원 추가 선임이 막힌 상황이지만 판정에 필요한 최소인원인 3명의 위원이 남아있기에 재판부가 구성될 수 있었다. 그 재판부가 절차에 따라 판정을 내렸기 때문에 판정 결과에는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일본은 "WTO 회원국 사이에서도 타당성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국제 여론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미국등 강대국이 주장하는 WTO 무용론에 올라타 판정 결과에 트집을 잡으려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이 아닌 WTO 분쟁해결기능 전체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프레임을 바꿔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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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로선 후쿠시마 수산물 관련 분쟁에서 극적인 최종 승소로 웃었지만, 일본이 WTO 개혁 압박에 나선 이상 이를 손놓고 바라볼 수 만은 없게 됐다. WTO 체제는 신흥국 한국이 선진국 시장에 쉽게 안착할 수 있게 해 수출 주도 성장을 뒷받침했다. 최근 거세진 보호무역주의 공세를 견디기 위해서라도 WTO의 기능 회복은 중요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WTO 개혁 논의에 참여해 국제 무역질서 재정립 과정에 우리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WTO 분담금 4위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