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법 바꾼 北…비핵화 방정식 더 꼬였다

머니투데이 오상헌 기자 2019.04.2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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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중러 지원사격, '체제보장' 요구 수면 위로...트럼프에 "연말까지 새 계산법", 협상 문턱 높이기 전략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전용열차로 향하고 있다. 2019.4.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뉴스1) 이재명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현지시각)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전용열차로 향하고 있다. 2019.4.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이 우방인 중국·러시아와 3각 협력을 지렛대로 비핵화 협상 틀을 바꾸겠다는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대북제재 완화·해제의 '경제' 문제 대신 미국의 군사 조치와 체제보장 등 '안보'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프레임의 전환이다.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은 '자립경제'로 정면 돌파하고, 협상 문턱을 더 높여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6∼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 문제를 논의했다. 로이터통신은 윌리엄 해거티 주일 미국대사를 인용해 "(두 정상이) 북한 제재 유지를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5~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정상포럼에서 만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포럼 후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시 주석에게 설명했다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구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중러 정상은 2017년 7월 △북한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 △북미·남북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동북아 다자안보 협정 체결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공동 구상을 발표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이런 로드맵과 비핵화 해법을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북러 정상회담 직후 "북한은 체제보장을 원한다"며 "보장 매커니즘을 논의할 때엔 6자회담 체계가 가동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자가 참여하는 북한 체제보장 이슈를 수면 위로 꺼내 든 것이다.



북한도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려는 중·러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고 북미 대화 판을 새로 짜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북한 대외선전매체인 조선신보는 28일 푸틴 대통령의 '체제보장' 발언을 거론하며 "미국이 조선의 행동에 상응한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했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미국의) 대조선 강경파가 '빅딜'이라고 부르는 일방적 핵무장 해제 요구를 배격한 것"이라고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해석했다.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해 미국의 핵군축 등의 군사 조치도 함께 다뤄져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북한 매체의 주장은 지난 2월 말 '하노이 노딜' 직후 리용호 북한 외무상 발언과도 정확히 포개진다. 당시 리 외무상은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라며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제재 완화가 미국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해 북한이 선의로 내놓은 보상 조치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협상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군사적 위협 해소 혹은 체제보장을 상응조치로 선회할 것"(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이란 전망이 나온다. 비핵화의 최종 단계에서나 미국이 검토할 수 있는 체제보장 카드를 선제 상응 조치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연말 시한'으로 미국에 '새 계산법'을 요구한 김 위원장의 발언에도 이런 셈법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 군사훈련을 부쩍 자주 비난하는 것도 협상 전략의 변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은 지난 25일 458일 만에 대변인 담화로 한미 연합편대 공중전투 훈련을 "배신적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북중러의 밀착과 북한의 군사·안보 상응 조치 요구는 가뜩이나 얽히고설켜 있는 북미 협상 방정식을 더 꼬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 문제에서 미국을 돕고 있는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힌 것도 북미 협상을 다자 대립 구도가 아닌 북미 '톱다운'(정상외교) 방식으로 풀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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