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지지율서 대권을 쥐다…반란 일으킨 '아싸'들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4.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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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세계IN]反부패 염원이 정치 아웃사이더들 대통령으로…"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부에 票 안준다"

편집자주 인물(人)을 통해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더 깊이있게(IN) 들여다 보려 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해의 폭도 그만큼 넓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먼 나라의 상관 없는 일이 아닌, 이웃 나라의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0.5%지지율서 대권을 쥐다…반란 일으킨 '아싸'들


△2019년 4월의 우크라이나 △2019년 3월의 슬로바키아 △2015년 10월의 과테말라.

이들의 공통점은? 대선 역사상 보기 드문 이변이 일어난 나라들과 그 일이 발생한 시점들이다.

수 십 년 간 코미디언으로 활동한 인사, 국민 배우, 싱글맘의 환경운동가 등 정치계 '아웃사이더'들이 돌풍을 일으키며 대선에 당선했다. 부패에 질린 국민들이 새로운 변화에 목말라 있었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국민의 종 되겠다" 드라마에서 현실로 나온 대통령=이번 한 주간 국제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당선인이다. 만 40세의 젊은 나이로 재선을 노렸던 현직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를 꺾고 당선을 확실시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인의 국민배우이자 코미디언이다. 그는 2015년부터 방영된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교사였던 평범한 남성이 부정부패한 사회를 뒤집고자 정치권에 입문해 대통령에까지 오르는 내용으로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드라마를 통해 투영된 대중들의 염원이 현실에도 통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정당명을 '국민의 종'이라 짓고 드라마에서처럼 "부패도 뇌물도 없는 사회"를 외쳤는데 CNBC는 그의 이러한 선거전략에 대해 "부패와 경제 불안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변화를 위해 싸우는 인물로 스스로를 위치시킨다"고 보도했다.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젊은 나이의 TV 스타에게 유권자들이 환호한 것은 부패가 답습되는데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2018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120위를 기록했다. 최하위국은 180위를 기록한 소말리아였다.

또 지난 2016년, 포로셴코 대통령은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은행계좌 예치금만 약 3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혀져 국가적 공분을 샀다. 직전 해인 2015년, 우크라이나는 국제금융기구로부터 175억달러(19조8975억원)의 금융지원을 결정받은 상황이었다.

젤렌스키를 지지했다는 우크라이나 한 대학생은 "5년간 집권해 아무것도 안한 정치인들에게 투표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젤렌스키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당선 이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는 아직 대통령 취임 전이지만 우크라이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비에트 연방국들에 우리를 보라 말할 수 있다"며 "무슨 일이든 가능하다"고 말했다.

◇슬로바키아의 '에린브로코비치', 사상 첫 여성대통령으로=비슷한 시기에, 젤렌스키와 함께 이목을 끈 신예 정치인이 이웃나라 슬로바키아에도 있었다. 바로 주사나 카푸토바다.

두 딸을 둔 싱글맘이라는 이력도, 대형 토지 개발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고향 페지노크의 불법 독성 폐기물 매립 문제를 갖고 장장 14년이나 싸운 끝에 승리한 경력도 독특했지만 정작 그를 대통령으로 이끈 결정적 사건은 따로 있었다.

지난해 2월, 정부와 마피아의 공생관계를 취재하던 한 언론인이 살해당하자 들불같은 시위가 일어난 것. '벨벳혁명' 이후 30년 만에 최대 규모 시위라는 분석들이 나왔다. 정부의 부패한 현실과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본 그녀는 대선 출마를 결심했고 구호 역시 "악에 맞서 싸우자"였다.

그녀를 지지했다는 한 시민은 "우리 모두는 우리나라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패한 정부에 맞설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카푸토바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20년 경력 정통 희극인, 지지율 0.5%→70%로 대선 '압승'=지미 모랄레스는 앞선 두 사람보다 4년이나 먼저 이색 경력을 뽐내며 과테말라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로서 당시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 역시 대통령 당선 전에는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산카를로스 데 과테말라 대학에서 경영학과 신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이후 코미디언으로서 20년을 살았다.

특히 코미디 TV 프로그램 '모랄스'에 15년 가량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2007년에는 영화 '솜브레로(큰 모자)를 쓴 대통령'에서 대통령이 될 뻔한 실수투성이 카우보이를 연기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 영화 때문에 그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일부 반대 진영은 영화 속 실수들을 현실에서도 되풀이할 것이라며 조롱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지지율은 0.5%에 불과했지만 막판 지지율은 70%에 달했다. 때마침 터진 과테말라의 부패 스캔들이 오히려 기존 정치기반이 없었던 그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2015년, 뇌물 비리에 연루된 오토 페레스 몰리나 당시 대통령이 면책 특권을 박탈당하고 구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 고위 공직자들이 줄줄이 수사를 받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가 들고 나온 선거 구호는 간단했다. "부패하지도 않았고 도둑질도 안한다"였다. 이 간단한 선거 구호가 기성 정치에 실망한 대중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또 대선 투표 종료 직전에 한 인터뷰는 현재까지도 회자된다. "20년간 국민들을 웃겨 준 만큼, 대통령이 돼도 절대 울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선거가 과테말라에 평화와 통합을 가져다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선 두 당선인은 아직 공식 취임 전이라 그들의 대통령으로서의 행보를 알긴 아직 어렵다. 그럼 3년간 과테말라를 이어온 모랄레스는 어떨까.

그는 현재, 대선 당시 집권 여당과 함께 불법으로 최소 100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해 말에는 수 천명의 시민들이 그의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지기도 했다. 전 정권의 부패를 밟고 대권을 쥔 그가 또 다른 부정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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