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의 땅' 베트남? 서두르다가 넘어진다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19.04.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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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인터뷰] 2년만에 1명→18명 규모로 성장, 법무법인 세종 길영민·박영수·정종대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의 베트남 법인 변호사들. 왼쪽 두번째부터 정종대 변호사, 길영민 베트남 법인장, 박영수 하노이지사장 / 사진제공=법무법인 세종법무법인 세종의 베트남 법인 변호사들. 왼쪽 두번째부터 정종대 변호사, 길영민 베트남 법인장, 박영수 하노이지사장 / 사진제공=법무법인 세종


찬물도 급히 마시면 체한다. 대박 기대감에 섣불리 발을 들였다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다. '제2의 중국'으로 불리며 다국적기업들이 쇄도하고 있는 베트남에서도 이같은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등에 따르면 2014년 이후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한 건수는 연간 1300~2300여건에 달하고 투자규모도 21억5000만달러(약 2조4600억원)~30억6600만달러(약 3조5100억원)에 이른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이 선두에 서고 이들 대기업에 자재 등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들도 동반 진출하고 있다.

국내 대형로펌들도 잇따라 베트남으로 나갔다. 2009년 율촌을 시작으로 2015년 이후 광장·태평양·화우 등이 속속 베트남에 사무실을 냈다. 지난해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호치민에 사무소를 내면서 소위 '빅6' 로펌 모두가 베트남에 사무실을 두게 됐다.



법무법인 세종도 2017년 1월 호치민에 사무소를 낸 데 이어 2018년 2월에도 하노이에 새로 거점을 마련했다. 상대적으로 진출 시점이 늦었지만 현재 베트남 현지에서 활동하는 세종 사무소의 인원은 한국변호사 4명과 베트남 변호사 5명, 외국변호사(미국) 1명, 관세전문위원 등 전문인력을 더해 18명에 달한다. 이는 국내 대형로펌의 베트남 사무소 중에는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것으로, M&A(인수합병), 부동산, 금융을 비롯한 베트남 내 법률수요 상당 부분을 커버하고 있다. 진출 첫 해에 CJ대한통운이 베트남 1위 물류기업 제마뎁을 인수하는 딜을 자문한 것과 여러 금융, 부동산 투자 건들을 자문하는 데에는 세종 베트남 법인의 역할이 컸다는 평이다.

우리 로펌들의 잇딴 베트남 진출은 그만큼 현지에서의 법률적 이슈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세종 베트남 법인장인 길영민 변호사(41·사법연수원 33기)는 "한국기업들이 자본을 쥐고 있지만 베트남 투자를 할 때에는 철저히 '을'의 입장에 놓인 약자"라며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한국 변호사들은 제도·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기업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 일조한다는 점에서 공익적 활동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베트남에서 눈에 띄는 투자기회로는 공기업 민영화, 부동산 개발사업 등이 있다. 길 변호사 및 길 변호사와 함께 호치민 사무소에서 활동하는 정종대 변호사(35·변호사시험 2회), 세종 하노이 지사장인 박영수 변호사(38·연수원 37기) 등은 이달 중순 방한해 한국 기업 고객 등을 상대로 '베트남 공기업 민영화 및 부동산·금융 관련 법적이슈'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이번 세미나에서 베트남 투자기회를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베트남 법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한국에서보다 긴 호흡으로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한국기업이 베트남 민영화에 참가해 결실을 거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길 변호사는 "낯선 베트남 현지 제도가 한 이유이지만 민영화 시장이 전형적인 '셀러 마킷'(Seller Market, 매도자 우위 시장)인 데다 정보공개가 잘 되지 않고 매매 계약 체결 과정에서 협의의 폭이 좁다"며 "한국 내에서의 투자기간에 비해 훨씬 긴 호흡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점에서 한국 투자자의 베트남 공기업 민영화 성공사례가 나타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또 "일본 기업의 경우 처음 IPO(기업공개)나 경매를 통해 공기업의 소수지분을 확보한 후 공개시장에서 꾸준히 지분을 매입해 다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쓴다. 이 결과 일본은 베트남 은행과 운송, 정유 등 공기업 민영화를 상당수 성공한 경험을 거뒀다"고 했다.

부동산 사업 역시 쉽지 않다. 정 변호사는 "투자검토를 10건을 한다고 하면 7~8건을 도중에 취소하는 게 보통이다. 토지사용권이나 부동산개발권을 갖고 있는 베트남 당사자 쪽에서는 자기네 의사결정권자가 베트남전 참전군인이라거나 정부관료라는 점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알고 보면 토지출자가 제한된 땅이거나 사용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첫 단추를 잘못 꿴 후에 로펌을 찾고 법률검토 단계에서 비로소 안 맞는 점을 발견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한국 건설사들이 부동산 개발사로 프로젝트 참여하려는 건들이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싱가포르 등에 근거를 둔 동남아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이 강하다"며 "한국 회사가 진행을 하다가 도중에 드롭(Drop, 투자철회)한 개발사업을 동남아 기업이 받아서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도 종종 있다"고 했다.

이어 "베트남 현지법에 의한 토지사용권 현물출자 장애요소가 없는지, 부동산·금융 관련 텀시트(Term Sheet, 계약구조 세부사항)에 숨어있는 리스크는 없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며 "처음 단계부터 국제 거래 관행과 현지 법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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