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출근하고, 영화관 가고…"남들 처럼 사는게 꿈"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이해진 기자, 김영상 기자, 이원광 기자, 세종=최우영 기자, 세종=문영재 기자 2019.04.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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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동료 있나요?] (종합)

편집자주 스스로가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차별하지 말라. 그것이 국적이든 성별이든 피부색이든 장애든.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하지 말라는 외침은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에 앞서, 우리는 그들을 차별하고 있지 않은지, 주변 장애인 동료들을 둘러봤다.

장애인이 우리 회사에서 일할 수 있나?
[장애인 동료 있나요?]비용 취급하는 기업, 동료 불편한 인식에…장애인 고용률 제자리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3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장애인 인권헌장을 낭독한 조우준 군이 행사를 보며 박수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3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장애인 인권헌장을 낭독한 조우준 군이 행사를 보며 박수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직장인 이모씨(28)는 '이직의 신'이라 불린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취업한 뒤 두 차례나 다른 공기업으로 이직했기 때문이다. 공기업을 두 번이나 떠난 이유는 연봉이 적거나 업무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신장기능에 장애가 있어 일주일 중 사흘은 한나절 동안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업무량과 성과를 중시하는 회사 분위기상 병원에 가지 않는 날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밤11시가 넘도록 야근을 했다"며 "일주일 중 사흘 5~6시간 치료를 받고, 나머지 4일은 종일 일만 하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씨는 결국 교대근무를 하는 공기업을 찾았다. 낮밤이 바뀌는 교대근무에 아직 몸이 적응 중이다. 적성과 관심사를 우선하지 않았지만 눈치 보지 않으며 병원에 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한다.

이씨는 그래도 '신'으로 불린 직장인이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촉진 정책을 펴고 있지만 장애인 고용률과 근속률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장애인 근로자를 '비용'으로 보고, 기업 내에서는 장애인 동료를 불편해 하는 인식이 산재했기 때문이다.

[MT리포트] 출근하고, 영화관 가고…"남들 처럼 사는게 꿈"

◇여전히 낮은 장애인 고용률…"장애인 동료 불편 인식 낳는다" = 장애인을 불편해 하는 인식은 주변에 장애인 동료가 없는 근로환경 탓이 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000인 이상 대기업 중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한 곳은 23.9%에 그쳤다. 반면 장애인고용촉진기금 적립액은 2013년 2294억원에서 2017년 8796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장애인고용촉진기금 적립액은 의무고용비율에 못 미치면 내야 하는 고용부담금에서 의무고용비율을 넘기면 받는 고용장려금을 빼고 남은 액수다.

예를 들어 2017년 장애인고용부담금 1위를 기록한 A 대기업은 장애인 2800명을 고용해야 하지만 1500명에 그쳤다. 나머지 1300명에 대해서는 고용부담금 111억9100만원을 부담했다.

기업은 부담금을 내는 게 '남는 장사'라는 입장이다. 장애인 직원이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화장실·복도 등 편의 시설을 구축하는 것도, 생산성 타격 우려도 모두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고용부담금 자체가 너무 작다고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부담이, 장애인을 고용하는 데 필요한 비용보다 커야 의미있다는 얘기다.

이동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부장은 "의무고용률 상향과 '기업규모별 고용부담금 차등부과'를 추진하고 있다"며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대기업일수록 더 많은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직장에 적응 못하는 장애인 근로자들…"인식 교육 필요" =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직장 내 편견도 문제다. 장애인이 직장생활에서 겪는 애로사항 1위가 '따돌림'일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업에 다니는 지체장애인 B씨(28)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아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싫은 내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고용안정협회 상담센터에 고충상담을 한 장애인 근로자 350명 중 75%가 결국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호근 장애인고용안정협회 국장은 "지난해 장애인 근로자들이 상담한 고충 1위는 왕따 등 대인관계 문제였다"며 "장애인 근로자와 협업을 꺼리거나 점심시간에 혼자 남겨두는 등 직장 내 '장애인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촉진과 근속관리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고용 숫자 늘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지원하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국장은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용된 장애인이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고용노동부 제5차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기본계획에 명시된 '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 설치·운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이해진 기자

장애인 취미는 TV 시청뿐? "우리도 즐기고 싶다“
[장애인 동료 있나요?]최근 1년간 영화 관람한 장애인 4명 중 1명…"문화·예술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MT리포트] 출근하고, 영화관 가고…"남들 처럼 사는게 꿈"
#.직장인 안모씨(24)는 흥행하는 영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영화관에 가려하지만, 매번 포기하곤 한다. 안씨가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안씨는 "영화관 애플리케이션의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예매하기도 쉽지 않고 아무리 넉살이 좋은 사람이라도 현장에서는 직원의 서비스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으니 직원이 장애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안내가 어렵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여가 활동인 영화 관람에서조차 장애인이 배제된 게 현실이다. 일단 원하는 영화를 예매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표를 구하더라도 수어 통역이나 해설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장애인의 사회활동 및 문화·여가활동 실태와 정책과제'(2018)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영화를 관람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은 4명 중 1명꼴인 24%에 그쳐 국민 전체 응답자 중 같은 대답을 한 사람 61.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안씨처럼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장애인에게 문화나 여가 생활은 사치인 경우가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같은 조사를 보면 한 주간 즐긴 문화·여가 활동으로 TV 시청을 꼽은 경우는 96.6%(복수 응답)에 달했다. 장애인에게는 TV 시청이 유일한 취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다.

최근 몇 년간 TV와 온라인에서 먹방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역시 장애인들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전맹시각장애인 류모씨(29)는 TV에 나오는 유명 식당에서 눈치 보지 않고 식사하는 것이 소원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에는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주문하는 키오스크를 설치한 곳이 늘어나면서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 식당에 메뉴판이 있더라도 점자가 제공되지 않으면 류씨에게는 무용지물이다.

류씨는 "어쩔 수 없이 주변 사람이나 직원에게 눈치껏 부탁할 수밖에 없어 불편하다"며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스마트폰 앱과 연동할 수 있도록 해 접근성을 보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놀이공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놀이공원에서 보호자가 동승하지 않을 경우 일부 놀이기구 이용을 거절당했다는 내용의 사례가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보호자 동반을 강요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행위"라며 지난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장애인 영화관람환경 개선을 위한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장애인 영화관람환경 개선을 위한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은 이제 시작 단계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장애인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한국영화 중 일정 비율 이상 자막과 화면해설, 수어 통역을 제공하도록 하고 키오스크에는 음성, 점자, 화면 확대기능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추 의원은 "애초에 갈 수 없거나 화면을 볼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당연한 듯 배제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이 두텁게 보장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는 문화 향유권이 장애인을 포함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호소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장애인이 문화나 예술의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합의된 내용"이라며 "장애인이 겪고 있는 차별을 개인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상 기자, 이영민 기자

"문제는 예산" '장애등급제' 폐지됐지만…
[장애인 동료 있나요?]장애인단체 "복지 대상↑, 예산 증액 '소홀'"…정부·여당 "제도 변경 후 혜택 줄지 않도록 노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 관련 단체와 활동가들이 이달 15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역사 해치마당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법 제정, OECD 평균 수준 장애인 관련 예산 책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 관련 단체와 활동가들이 이달 15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역사 해치마당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법 제정, OECD 평균 수준 장애인 관련 예산 책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국회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법 개정을 마쳤으나 1인당 복지 지원 확대는 과제로 남는다. 중증장애인에게 집중됐던 복지 혜택이 사실상 모든 장애인에게 확대되면서 1인당 혜택은 줄어들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된다. 정책 성과를 위해선 예산 확보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1월 본회의를 열고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보건복지위원회가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6년 10월 발의한 법안 등 모두 10개 법안을 병합 심사해 위원회 안으로 제안했다. 법안 발의부터 법 개정까지 2년여가 소요됐다.

복지 제공의 법적 기준이 되는 '장애 등급'을 '장애 정도'로 변경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존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을 1~6급으로 분류하고 선택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행정 편의적인 등급 분류로 인해 다수 장애인이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도 지난해 12월 국회 본 회의 문턱을 넘었다.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은 복지위 소속 김승희‧남인순‧김상희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을 위원회 안으로 정리됐다.

장애인활동지원법은 복지부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토대로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하도록 법적 근거를 담았다. 활동지원급여는 △신체‧가사 활동, 이동보조 등 활동 보조 △요양보호사의 방문 목욕 △의료진의 방문 간호 등을 위해 지원된다. 활동지원급여의 신청 자격도 기존 '중증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일부 장애인단체는 정책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복지 서비스 대상은 넓어졌으나 예산은 크게 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12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 공투단)은 이달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정부가 올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예산이 전년 대비 25% 늘었다고 발표했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활동 지원 서비스 단가의 자연증가분 등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제로 1인당 복지 지원시간은 수년째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장애인 1명이 활동지원급여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간(급여량)은 2013년 118시간 이후 2017년까지 정체됐다. 이 기간 활동지원급여 신청대상이 1급 장애인에서 2‧3급으로 확대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정부·여당은 향후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예산 확보 등에 힘쓴다는 방침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8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제 3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장애인의 기존 혜택이 줄어들거나 불편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충분한 재원 마련이 전제돼야 실효성 있는 장애인 정책이 될 수 있다"며 "민주당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장애인단체와 소통하며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광 기자

"시각장애? 걱정하지 마세요…잘 가르칠 수 있어요“
[장애인 동료 있나요?]시각장애인 최초 일반학교 역사교사 류창동씨 인터뷰

시각장애인 최초 일반학교 역사교사 류창동씨./사진=이영민 기자시각장애인 최초 일반학교 역사교사 류창동씨./사진=이영민 기자
"선생님, 같이 내려가실래요?"

흰 지팡이로 계단을 짚으며 내려가던 선생님에게 학생이 다가 와 말했다. 학생은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손에 자신의 팔꿈치를 쥐어 주고는 한발 앞서 걷기 시작했다. 첫 수업 때 가르친 '시각장애인 안내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활용한 학생 덕분에 선생님은 하루 종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구 서연중학교 역사교사 류창동씨(29)를 만나면 학생들의 인사 소리는 좀 더 크고 길어진다. "안녕하세요! 몇 학년 몇 반 누구입니다"라며 인사 뒤에 자신의 반과 이름을 덧붙인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전맹시각장애인 류 교사에게만 하는 특별한 인사법이다.

올해 초 임용고시에 합격한 류 교사의 일과는 긴장과 설렘의 연속이다. 류 교사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아이들과 수업하는 건 처음이니 긴장되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면서도 "아이들과 소통은 항상 좋아하고 꿈꿔온 일"이라고 말했다.

류씨가 올 2월14일 중등 신규임용예정교사 직무연수를 받으러 온 모습. /사진=류창동씨 제공류씨가 올 2월14일 중등 신규임용예정교사 직무연수를 받으러 온 모습. /사진=류창동씨 제공
류 교사가 국내 첫 시각장애인 역사 교사가 되기까지는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점자책이나 컴퓨터 문서 등 '시각장애인 대체도서'가 필요한데, 역사교사를 준비한 시각장애인이 없다보니 대체교재도 전혀 없었다.

대체도서 제작 기관에 직접 교재를 맡기고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한자가 많은 한국사·중국사 '필독교재'는 대체도서 제작마저 불가능했다. 결국 첫 시험은 책도 못 펴보고 치렀다. 다음 해 늦여름이 돼서야 필요한 교재가 모두 완성됐다.

류 교사는 "대체도서가 없으면 직접 제작기관에 맡기고 기다리는 일이 익숙하다"며 "앞으로는 일반 학교 역사교사를 준비하는 시각장애인이 대체도서를 제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 교사는 중학교 3학년 학급 7개반에서 역사를 가르친다. 불편한 판서 대신 매시간 학습 내용을 정리한 학습지를 나눠준다. 학습 내용과 연관된 영상 시청도 필수다. 영상자료를 고를 땐 업무 지원인의 도움을 받는다.

시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업무지원인은 수업 자료 편집, 영상 상태 점검 등을 돕는다. 수업 시간에는 류 교사를 대신해 수업태도를 살피기도 한다.

여러 도움에도 교사생활은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업무포털의 낮은 접근성이다. 시각장애인은 컴퓨터를 사용할 때 화면 내용을 읽어주는 '스크린리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데, 업무포털에 스크린리더가 접근할 수 없는 작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류 교사는 "시각장애인이라서 할 수 없는 업무가 생기면 동료와 그 짐을 나눠야 한다"며 "하루 빨리 기술 개선이 이뤄져 업무를 하지 못할 때 느끼는 안타까움이 줄었으면 한다"고 했다.

장애를 걱정거리로 보는 인식도 아쉬운 점이다. 류 교사는 "새내기 교사라 하는 실수도 장애인이라 하는 실수로 비쳐질까 걱정이 크다"며 "장애 여부를 떠나 있는 그대로를 보고 인정해주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류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을 통해 장애인과 익숙해지기를 희망한다. 그는 "익숙한 공간에서 매일 시각장애인 교사를 만나면 시각장애인과 익숙해질 것"이라며 "저를 거쳐 간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훨씬 자연스럽게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이 익숙한, 나아가 장애를 '꼬리표'로 여기지 않는 사회. 류씨가 꿈꾸는 세상이다.

이영민 기자

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장애인 동료 있나요?]국가 복지 수급자를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기반 마련하는 최고의 수단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br>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9 장애인고용촉진대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br>
장애인에게 그 어떤 복지수당보다 큰 혜택을 주는 것은 일자리다. 일자리는 장애인이 단순히 국가의 복지수당을 받는 수혜자에 머무는 것을 넘어서 경제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장애인에 적합한 일자리의 부족과 사업주들의 무관심 등이 어우러져 장애인 고용률은 낮다. 지난해 전체 국민의 고용률이 66.6%였던 데 반해 장애인 고용률은 34.5%로 절반 수준이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장애인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맞춤형 고용정책을 추진 중이다. 우선 중증장애인의 기업 현장훈련과 채용 후 적응을 돕는 맞춤형 취업지원 대상을 지난해 2500명에서 올해 5000명으로 늘린다. 지난해 높은 취업 성과를 거둬 보건복지부 사업대상 1000명도 이관받아 수행한다.

현장 훈련기간은 최대 3→7주로, 적응지도기간은 최대 6→12개월로 연장해 안정적인 취업과 고용유지를 돕는다. 구직활동을 포기한 비경제활동 중증장애인에 대한 동료장애인의 상담과 자조모임 활동 등 효과적인 취업연계 서비스도 올해 9600명을 대상으로 제공해 경제활동 참가를 유도한다.

장애인이 장애를 딛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근로지원인과 보조공학기기 지원도 늘린다. 지난해 1200명이던 근로지원인은 올해 3000명까지 늘리고, 지원시간도 월 115→125시간으로 확대한다. 일대다 지원, 발달장애 지원 등 다양한 유형의 지원을 추진해 2022년까지 근로지원인을 1만명 확보할 계획이다.

지난해 8000점이 보급된 보조공학기기는 올해 1만점으로 확대하고, 차량용 보조공학기기 등 장애인이 직접 신청할 수 있는 품목도 늘린다.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근로장애인이 과도한 저임금에서 벗어나 적정수준의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장애인고용공단, 사회보장정보원, 장애인개발원, 특수교육원 등 고용부·복지부·교육부 시스템을 연계해 합동지원안도 마련한다.

구직연령에 들어서거나 처음 등록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취업 서비스'도 제공한다. 교육부에서 특수학교 졸업생의 재학 중 진로지도 정보를 받고, 복지부에서 연 2만명 규모의 생애 최초 장애등록자 정보를 받아 전국의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직원이 찾아간다.

아울러 직장 내 장애인 인식과 고용여건도 개선한다. 중소 사업체 2만5000곳의 교육비용을 무료로 지원한다. 장애인 강사의 장애 감수성이 담긴 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인식개선을 유도한다.

올해 9월까지 온라인 강의 수강, 교육 콘텐츠 이용, 교육기관·강사 데이터베이스 제공·교육 이수여부 관리 등이 가능한 교육관리 포탈 시스템을 만든다. 지방고용노동청과 장애인고용공단이 함께 홍보하고, 의무고용대상 사업체 중심으로 계도 및 행정지도를 실시한다. '장애친화적 기업 진단도구'도 개발해 올해 시범적용 및 보완한 뒤 2020년부터 장애친화적 기업을 선정한다.

장애인 직업훈련 인프라도 확충하고 프로그램을 강화한다. 현재 13곳인 발달·맞춤훈련센터를 올해 3분기까지 20곳으로 늘린다. 온라인 정보관리 등 신규 8종의 장애인 적합직무를 개발하고 융합소프트웨어를 포함한 4차산업 대비 신산업 훈련직종을 발굴하는 등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장애인의 국가자격 시험시간 연장·별도공간 제공 등 편의지원을 강화하고, 전자산업기사, 정보처리산업기사 등 장애인 수요가 많은 국가기술자격을 과정평가형으로 개설해 자격취득 기회를 확대한다.

장애인고용법상 근로자의 범위를 늘리고, 공공부문의 장애인 의무고용을 전면 적용하기 위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안도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일자리 접근이 힘들다보니 고용률이 낮고, 기초생활수급 등 국가가 주는 혜택에만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며 "장애인이 일자리를 통해 자립토록 하는 게 진정 장애인을 위한 정책일뿐더러, 사회 전체적으로도 장애인 복지에 드는 비용을 줄여나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우영 기자

[단독]장애학생 일자리 확대…대학·지역사회 등 6730명 채용
[장애인 동료 있나요?] 교육부, 오는 9월 '장애학생 진로직업 중장기종합대책' 발표

올해 6700명이 넘는 장애학생이 학교와 대학, 지역산업체, 공공기관 등에 취업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19년 장애학생 현장중심 맞춤형 일자리 사업' 등을 추진한다고 18일 밝혔다. 현장중심 맞춤형 일자리사업은 중증 발달장애학생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내 일반사업체에서 2~6개월의 현장중심 직업훈련(집합·현장 훈련) 후 취업과 연계해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모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장애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일자리 인원 수는 현장중심 맞춤형 일자리(430여명)과 학교·대학 내 일자리(1500여명) 등 모두 1930여명이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수교육-복지 연계형 일자리(1000여명), 고용노동부의 장애학생 취업연계 사업(3800여명)까지 합치면 6730여명으로 늘어난다.

교육부는 현장중심 맞춤형 일자리 사업에 예산 8억4500만원을 투입하고 5~7월과 9~12월 7개월 간 장애학생의 산업체 현장 직업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다. 장애학생이 직무를 정확히 습득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사업체 내에 참여 학생의 곁에서 주요 직무를 직접 지도하는 '훈련지원인'(1명당 학생 3~4명 담당)을 배치키로 했다.

장애학생의 취업 후 수행 직무는 대학도서관 사서보조를 비롯해 대학 내 카페 바리스타, 대학병원 행정보조, 세탁·청소·급식·통학버스 보조, 문서수발 업무 등이다.

현장중심 맞춤형 일자리 사업지역은 대구와 인천, 광주, 대전, 울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경북, 제주 등 11곳이다. 교육부는 오는 30일 시도교육청 등과 함께 장애학생 현장중심 맞춤형 일자리사업 발대식을 갖고 사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부는 오는 9월 '장애학생 진로직업 중장기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장애학생 일자리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기관이 장애인 고용수요가 있는 지역 산업체를 방문해 고용 창출을 유도하며 시도교육청 단위에서 통합서비스 협의체를 꾸려 직업평가·교육·고용지원·사후관리를 한 번에 지원한다.

진로교육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내년 3월부터 중·고교 과정을 운영하는 특수학교는 반드시 '진로전담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이에 따라 현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150명의 교사가 진로진학상담 연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자격 취득 후 특수학교에 각 1명씩 순차 배치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진로전담교사를 추가 충원해 2022년까지 모든 특수학교에 1명 이상씩 배치할 계획이다. 이달 현재 전국의 특수학교는 175곳이며 이 가운데 중등과정을 운영하는 특수학교는 166곳이다.

문영재 기자

국립대 부설 '예술·직업교육 특수학교' 국내 첫 설립
[장애인 동료 있나요?] 전국단위 모집·기숙사 운영…2021년 개교 목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국립대 부설 장애학생 '예술·직업교육' 특수학교 2곳이 지어진다.

18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부산대 부설 예술중·고교, 공주대 부설 직업교육 특성화고를 각각 설립키로 했다.

부산대 부설 장애학생 예술중은 9개 학급, 예술고는 12개 학급 규모다. 전국단위로 모집하며 기숙사를 운영할 계획이다. 개교 목표는 2021년이다.

국내에는 예술중 9곳과 예술고 29곳이 있지만 이는 모두 비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특수학급도 설치돼 있지 않다. 교육부는 장애학생을 위한 예술중·고교 설립을 통해 예술인재 조기 발굴과 전문 예술인 양성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한우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장은 "예술 분야에 재능이 있는 장애학생을 위한 맞춤형 예술 교육과정 편성·운영이 가능해 질 것"이라며 "예술대학과 연계(체험중심 통합교육)해 장애학생의 진로·취업영역을 문화예술 분야까지 확대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주대 부설 장애학생 직업교육 특성화고교(특수학교)는 18학급 규모로 2021년 개교 예정이다. 부산대 부설 특수학교처럼 전국단위로 모집하며 기숙사가 지어진다. 교육부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특성화고교가 만들어지면 장애학생들의 사회 진출시기를 앞당기고 단순 노무직인 제조업 분야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진출이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과장은 "고교를 졸업한 장애학생의 취업률은 최근 3년간 평균 24.5%에 불과하고 단순 노무직인 제조 분야 취업률이 31.4%"라며 "학생의 요구와 능력에 맞는 진로설계·취업지원으로 진로의 다양화는 물론 취업률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주대는 장애학생들에게 제한된 직종 중심의 직업교육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현장맞춤형 인력을 키워낼 것이라며 대학내 산업과학·예술·간호 분야 전공과 연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또 2022년까지 특수학교 26곳과 특수학급 1250개 학급도 신·증설키로 했다. 연도별 특수학교 신설 규모는 2018~2020년 각각 3곳, 2021년 10곳, 2022년 7곳이다. 신·증설 특수학급 수는 2018년 351개, 2019~2022년 각각 250개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설립할 때 특수교육대상자 수요를 고려해 특수학급 설치계획을 수립하고 △12학급 이하의 소규모·단일과정 특수학교 △특화된 분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특수학교 설립 등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해 4월 기준 특수교육대상자는 9만780명으로 이 가운데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학생이 6만903명(67.1%)으로 집계됐다.

문영재 기자

‘인싸' 시각장애인 3명이 미국 자유여행을 간다면?
[장애인 동료 있나요?] 미국 자유여행 다녀온 20대 시각장애인 3명 인터뷰

(왼쪽부터)박준범·류창동·안제영씨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구글 본사에 여행간 모습. /사진제공=류창동씨(왼쪽부터)박준범·류창동·안제영씨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구글 본사에 여행간 모습. /사진제공=류창동씨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입니다! 세 사람의 시각장애인이 안 보이는 눈과 흰 지팡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미국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류창동씨(29)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 오프닝 멘트를 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술 먹방(술 먹는 방송)이 이어졌다. 그는 "오늘은 이런 색깔의 술을 이렇게 생긴 과자와 함께 먹으려고 한다"며 화면에 술과 과자를 비췄다.

◇'고시생' 시각장애인 3명, 떠나기로 결심하다

올 1월24일 시각장애인 류씨와 안제영씨(24), 박준범씨(24)는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부에 지친 임용고시생이던 이들은 동기유발이 필요했다. 지난해 6월 말 "시험 끝나고 여행 가자"는 박씨의 제안에 류씨와 안씨는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보이지 않는 여행이지만 남들보다 더 필요한 건 점자라벨이 붙은 봉투 5장뿐이었다. 단위 상관없이 크기가 같은 미국 지폐를 구별하기 위해 봉투 5장에 각 돈 단위를 점자라벨로 표시해 나눠 넣었다.

두려움과 걱정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총기 소유가 가능한 미국에서 총을 맞진 않을까', '소매치기를 당하진 않을까' 등 어떤 여행자든 할 수 있는 걱정은 들었다. 오히려 주변인들의 염려가 더 컸다. 한 한국인 항공사 직원은 '보호자는 있냐', '괜찮겠냐'며 수차례 물었다.

이들의 여행에 대한 반응은 한국과 미국이 좀 달랐다. 류씨는 "한국 분들은 걱정한 반면 미국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멋있다', '놀랍다', '안전 여행을 빈다' 등 응원을 보냈다"며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한국과 미국의 인식 차이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셋 보단 보통 청춘 셋의 여행"

(왼쪽부터)안제영·박준범·류창동씨. 일정 대부분이 "맛있는 이야기와 마신 이야기"라는 이들의 여행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사진제공=류창동씨(왼쪽부터)안제영·박준범·류창동씨. 일정 대부분이 "맛있는 이야기와 마신 이야기"라는 이들의 여행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사진제공=류창동씨
여행지는 유흥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와 미식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였다. 여행 일정 대부분이 "맛있는 이야기와 마신 이야기"라는 이들의 여행 성격에 딱 맞았다.

세 사람은 먹은 식사와 마신 음료, 방문한 장소 등을 글과 사진·영상으로 꼼꼼히 기록했다. "사진 좀 찍어주세요"는 이들이 여행 도중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사격장에서 총을 쏘고, 놀이기구를 타고, 술잔을 부딪치고,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겼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은 이들의 눈과 발이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읽어주는 '보이스오버' 기능으로 '우버'를 켜 차를 부르고, 거리와 방향 정보를 들려주는 지도앱 '블라인드 스퀘어'로 맛집을 찾아다녔다. 박씨는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힘들었을 수도 있다"며 IT기술 발전에 고마움을 표했다.

"사진 좀 찍어주세요"는 이들이 여행 도중 가장 많이 한 요청 중 하나. 사격장에 가서 총을 쏘고,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을 현지인에 요청해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제공=류창동씨<br>"사진 좀 찍어주세요"는 이들이 여행 도중 가장 많이 한 요청 중 하나. 사격장에 가서 총을 쏘고,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을 현지인에 요청해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제공=류창동씨<br>
시각장애인이어서 '보는 관광'보다 '체험'을 선호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의 도움으로 구글 캠퍼스도 돌아보고, 샌프란시스코의 명소인 금문교도 들렀다. 다리 모형도 만져보고 점자 설명도 읽으면서 그들만의 방법으로 명소의 모습을 머리에 새겼다. 이들이 시각장애인으로서 다녀온 여행 코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시각장애인지원기관인 '라이트하우스' 뿐이다.

안씨는 "보이지 않아도 박물관이나 유적지처럼 눈으로 보는 관광을 선호하는 시각장애인도 많다"이라며 "보이는 분들도 각각 여행 성향이 다르듯이 시각장애인들도 성향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세 사람은 "사람이 여행을 가고싶은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며 "시각장애인들이 여행을 가고싶고, 실제로 가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영민 기자

"장애인 공연은 감동 필수? 예술하는 배우일 뿐이죠“
[장애인 동료 있나요?]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 연출가 서지원씨·활동가 진성선씨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 /사진=장애여성공감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 /사진=장애여성공감
배우가 무대에 오르자마자 관객이 눈물을 쏟았다. 연기가 시작되니 눈물은 더해졌다. 배우의 몸짓이 어떤 의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배우의 몸 자체만으로도 관객은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창단한 장애인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춤허리)의 초기 공연의 반응이다. 연출가 겸 배우 서지원씨(39)는 "우리 공연이 저렇게 슬프진 않을텐데, 왜 저렇게 울까 궁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요즘 공연을 보는 관객 중 우는 사람은 드물다. 공연은 처음부터 슬프지 않았다. 동정 혹은 감동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줄었을 뿐이다.

서씨는 "예전에는 '이런 몸으로 수고했다'며 장애인을 불쌍한 사람,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면서 "요즘 관객은 공연으로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알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여성극단 '춤추는 허리' 연출가 겸 배우 서지원씨(왼쪽)과 활동가 진성선씨.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장애인 여성극단 '춤추는 허리' 연출가 겸 배우 서지원씨(왼쪽)과 활동가 진성선씨.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춤허리는 인권운동단체 장애여성공감(공감)의 극단이다. 장애여성의 인권과 일상을 표현한다. 뇌병변 장애인 서씨를 비롯해 지체장애·언어장애·발달장애·정신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여성 6명이 함께한다.

춤허리는 매해 정기공연을 해왔다. 1년에 1~2번 할 때도 있었지만, 최근엔 인기가 높아져 찾는 곳이 많아졌다. 지난해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초청돼 3일 동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퍼포먼스와 전시를 진행했다. 미술관처럼 공적 공간에 들어갔을 때 장애여성이 느끼는 낯섦을 표현한 이들의 공연이다.

공연 연습은 보통 극단과는 조금 다르다. 장애에 따라 다른 어려움을 이겨낸다. 서씨는 "대사를 외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은 자기의 대사를 100번이고, 1000번이고 외워질 때까지 쓴다"며 "대사 낭독이 어려운 배우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그 대사를 반복해서 읽어보고 자기 언어로 소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 연습 모습 /사진제공=장애여성공감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 연습 모습 /사진제공=장애여성공감
공연에는 그들만의 몸짓과 언어를 만들려는 치열한 고민이 담겼다. 공감 소속 활동가 진성선씨(26)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저희만의 호흡이나 발성법, 몸짓을 찾는 과정이 있다"며 "우리 방식으로 어떻게 변화시키고 도전할지 고민하다"고 고충을 설명했다.

자기만의 표현법을 찾아가며 서씨의 인생도 크게 변했다. 서씨는 "어릴 때부터 남의 도움을 받다보니 항상 눈치를 보며 살아야했다"며 "상대방에게 동의하지 않거나 기분이 나빠도 솔직하게 표현하면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서씨는 기분이 나쁘면 화도 내고, 동의하지 않는 일엔 반대하기도 한다. 서씨는 "무대에 올라가면 내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나만 바라보는 게 좋았다"며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웃어보였다.

장애여성 개인의 치료가 춤허리 공연 목적은 아니다. '인권과 예술'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을 뿐이다. 서씨는 "춤허리 배우들은 치료의 대상이 아닌 예술의 주체"라며 "배우들의 치열한 고민으로 탄생한 몸짓과 언어는 저희만의 전문성이자 예술성"이라고 자신했다.

이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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